류상우 차의과학대 강남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교수가 난임부부를 상담하고 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만 틀어박힌 지 5개월째. 남편과의 대화도 거의 없고 연락하는 사람은 친정부모뿐이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끊은 지 오래다. 혼자 있기를 고집하는 이씨는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이 상처가 된다”고 말한다.
이씨의 우울증 원인은 난임(難姙). 29세에 결혼했지만 6년째 아기가 없다. 처음 2년은 배란일에 맞춰 자연임신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왜 아직까지 아기가 없느냐”는 시댁의 성화에 31세 때 서울에 있는 한 유명 산부인과를 찾았다. 이씨와 남편을 검사한 병원에서는 “임신을 위한 부부의 신체 조건이 정상”이라고 했다. 희망을 품고 의사의 말을 따랐다. 하지만 인공수정 3번, 체외수정(시험관 아기) 3번을 했음에도 임신이 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체외수정을 4번째 시도했을 때 기적처럼 찾아온 태아는 4주 만에 심장이 멈췄다. 이씨에게 남은 건 망가진 몸과 마음, 2500만 원의 빚.
이씨 어머니는 “내가 몸이 약할 때 너를 낳은 탓”이라며 자책했다. 육아에 한창인 친구들은 상처 주는 말을 쉽게 내뱉었다. “애 없을 때가 편해. 왜 굳이 낳으려고 하니?” 시누이, 동서들의 임신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몰래 울었고, TV에 육아 관련 예능프로그램이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신혼 때는 이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이씨는 지금 임신을 포기한 상태다.
알고 보니 정자 탓? 남성 환자 급증
‘임신이 어렵다’는 뜻의 ‘난임’은 건강한 신체를 가진 부부가 1년 동안 피임 없이 정상적인 성생활을 했음에도 임신이 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한 해 20만 명이 넘는 난임 환자가 병원을 찾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박윤옥 의원이 2월 20일 보건복지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7년 17만8000여 명이던 난임 환자는 2014년 20만8000여 명으로 약 17% 늘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남성 환자의 증가세다. 여성 환자는 14만9000여 명에서 15만6000여 명으로 약 4.7% 늘었지만, 남성 환자는 2만8000여 명에서 4만4000여 명으로 57%가량 증가했다.
난임의 가장 큰 원인은 여성의 노산(老産)이다. 지난해 산모의 평균 연령은 만32.04세로 2005년(30.22세) 처음 30세를 넘긴 이후 계속 올라가고 있다. 35세 이상인 ‘고령 산모’의 비율도 21.6%로 전년보다 1.4%p 올랐다.
류상우 차의과학대 강남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교수는 “난임의 주된 원인은 만혼(晩婚)”이라며 “여성의 연령이 높아지면 난소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고 유산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이 밖에 환경호르몬, 스트레스에 따른 여성의 배란장애, 생리불순도 주요 요인이다. 성별 원인은 여성 질환 40%, 남성 질환 30%, 남녀 질환 동시 존재 10%, 원인 불명 10% 정도로 파악된다.
남성의 경우는 흡연과 음주, 비만, 전자파, 스트레스 등이 정자 운동성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보인다. 류상우 교수는 “수십 년 전에 비해 남성 정자의 운동성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20, 30대 남성들이 이전 세대에 비해 심리적 스트레스가 높아지면서 전체적인 생식 기능이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 난임을 여성만의 책임으로 인식하는 시대는 지났다. 남성도 난임에 대해 절반의 책임을 져야 한다. 불임이 의심되면 비뇨기과에 가서 정액 검사를 받는 게 최우선이다. 이형래 강동경희대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유전적 요인이나 내분비계 질환, 사정 관련 질환, 정계정맥류 등이 남성 난임의 원인”이라며 “특히 흔하게 발생하는 정계정맥류 질환은 수술적으로 교정이 가능하고, 수술하면 임신 가능성을 40% 정도로 높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남성 난임 환자가 급증한 이유는 남성의 난임 질환 증가 자체도 있지만, 남성의 의식이 변화한 이유도 크다. 자신이 난임의 원인일 수 있음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치료 받으려는 남성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다. 류상우 교수는 “예전에는 임신이 안 되면 여성이 모든 검사를 다 받고 ‘정상’이란 결과가 나와야 남편이 마지못해 검사를 받는 식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부부가 동시에 검사를 받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난임은 여성 책임’이라는 기존 시각이 변하고 있다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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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고 싶어도 돈 없어”
한 여성이 난임 환자 정부 지원 안내서를 보고 있다.
문제는 인구절벽(인구통계 그래프에서 급격하게 하락을 보이는 지점)을 코앞에 둔 시점에 우리 정부가 해마다 급증하는 난임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저출산 관련 예산은 8조7866억 원이었지만 이 중 보육교육비 지원 확대에 5조935억 원(58%), 양육수당 지원 확대에 1조8870억 원(21%)이 들어갔다. 난임부부 지원 확대에는 전체 저출산 관련 예산의 1% 수준인 857억 원이 배정됐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국내의 보조생식술 기술에 대한 연구비 지원이나 법적 지원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영국이 난자의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된 여성의 임신을 돕는 ‘세 부모 아기’ 시술을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 법적으로 허용한 반면, 우리는 그보다 더 뛰어난 기술을 가졌으면서도 사회적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가짜 줄기세포 복제 파동에 깜짝 놀란 정부는 윤리성 문제가 걸리면 무조건 고개를 가로젓는다(22쪽 참조).
이 때문에 전문가 사이에선 정부가 난임문제만 적극적으로 해결해도 저출산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한 해 난임 환자 20만 명의 절반인 10만 명만 임신, 출산에 성공해도 출생아 수는 현재의 43만5300여 명 수준에서 53만5300여 명 수준으로 약 23% 늘어날 수 있다. 국회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남인순 의원은 “정부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총 66조 원이 넘는 예산을 저출산대책에 투
입했지만 우리나라는 초저출산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난임 문제를 해결하면 초저출산 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이며 아이 낳기를 원하는 부부에게 건강한 임신 및 출산을 지원하는 것이 초저출산 극복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아이를 낳고 싶어도 못 낳는 국민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을까. 지금까지 난임부부에 대한 정부 측 지원은 인공수정 및 체외수정 시술비의 일부 보조가 전부였다. 인공수정은 1회 50만 원으로 3회까지, 체외수정은 1회 180만 원으로 4회까지 지원한다.
그러나 난임 환자들은 “정부의 시술비 지원이 턱없이 적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보통 인공수정은 60만~90만 원, 체외수정은 400만~500만 원이 들기 때문에 환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저소득 계층은 꿈도 못꿀 만큼 시술비 지원이 적다. 게다가 지원제한 횟수가 넘어버리면 더는 지원을 받을 수조차 없다.
난임 환자라고 모두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국 가구 월평균소득 150% 이하, 여성 연령 만 44세 이하여야 한다. 전국 가구 월평균소득 150%는 2인 가족 기준 약 554만 원, 3인 가족 기준 약 616만 원이다. 이에 따른 건강보험 납부금액이 일정치 이하인 환자만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 중상위 이상 소득계층은 100% 자비로 치료해야 한다.
또한 한방치료는 난임 환자 지원에서 제외된다. 한의원에서는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 시술을 하지 않지만 생식기 건강에 중요한 오장육부의 건강을 한약, 침, 레이저 등으로 관리한다. 턱관절 마사지나 척추 교정도 하고 있다.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적정 체온을 유지함으로써 임신 가능성을 높이는 여러 치료 방법을 시도하는 것이다. 강명자 꽃마을한방병원 원장은 “체외수정 시술시 한방치료를 병행하면 임신 성공률이 훨씬 높아질 수 있다. 한의학이 지향하는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방법의 진료도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태어났어야 할 아이들부터 지키자
정부의 선별 지원에 대한 환자들의 불만도 하늘을 찌른다. 5년째 난임치료를 받는 정미진(가명?35) 씨는 “인공수정, 체외수정시술 모두 지원 횟수가 넘었고 몸의 안정을 찾기 위해 한의원도 다녔지만 전혀 지원받지 못했다”며 “나같이 임신이 오래 걸리는 경우는 사회적 지원이 끊겨 외톨이가 된 기분이다. 저출산대책을 세울 거면 아기를 낳고 싶은 여성을 충분히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보건복지 관련 단체 일각에선 “시술 지원금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렵게라도 임신한 태아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유산(流産)율과 저체중아 출생률, 조산아 비중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남인순 의원이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출생자 및 임신출산 진료비 지원 현황’에 따르면, 2008년부터 5년 동안 진료비를 지원받은 임산부 수(239만3383명)가 출생자 수(218만6948명)보다 9.4%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에는 출생자 수(41만5589명)에 비해 임산부 수(46만8769명)가 12.8%나 많았다. 남 의원은 “임산부 10명 중 1명 정도가 유산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령 임신 증가와 임산부의 과로,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라며 “유산과 저체중아, 조산아 출산을 최소화하도록 산모 건강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난임 시술을 하면 다태아 출생률이 높고 이 중 상당수가 조산아 또는 저체중아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난임 시술 결과 체외수정 임신의 경우 다태아가 43.6%, 인공수정 임신의 경우에는 31.1%에 달했다. 저체중아는 다태아가 54.5%에 달했다.
산모의 건강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보건복지 전문가는 “난임 시술 의료기관이 제대로 된 장비나 시설 관리를 하지 않고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개인이 그런 정보를 다 알 수 없어 입소문으로 병원을 선택하는 편”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의료기관의 운영 실태와 시술 실적, 출생아의 건강 정보 등을 점검하고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 3월 현재 정부 지원을 받는 전국 체외수정 시술기관은 140여 곳, 인공수정 시술기관은 400여 곳에 달한다. 하지만 상당수 기관이 실제로는 시술을 전혀 하지 않거나 한다고 해도 임신 성공률이 매우 낮은 편이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인공수정 시술 실적이 없는 지정 병원이 110곳이었고, 시술 실적이 있는 270곳 중 93곳은 임신율이 0%였다. 실제 난임 시술이 출산으로 이어졌는지 확인도 어렵다. 난임 시술기관이 대부분 분만병원과 분리돼 있기 때문이다. 전체 난임 시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상위 10개 시술기관 중 분만 병원이 함께 있는 곳은 강남차병원, 분당차병원, 제일병원 등 단 3곳에 불과하다.
출산 건강 위한 장기 대책 필요
박춘선 사단법인 한국난임가족연합회 대표.
유명무실한 저출산 정부 정책기구도 차제에 손을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5년 당시 출산율이 1.08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하자 정부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발족했다. 하지만 이 기구는 이름만 존재할 뿐 한 일이 없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이 위원회를 보건복지부 장관 산하로 격하했고, 후에 다시 대통령 직속으로 복귀시켰지만 단 한 차례 회의를 열었을 뿐이다. 지난해 말 위원들의 임기가 만료돼 올해 2월 위원을 새로 뽑고 회의를 한 차례 한 것이 전부다. 또 다른 사회복지 전문가는 “정부가 저출산 문제 해결에 진정성이 없다. 여론에 떠밀려 위원회를 발족했을 뿐 거시적 시각과 미시적 정책 수립 어느 쪽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연구센터장은 “난임 문제는 예산을 갑자기 대폭 늘리거나 빨리 해결하기 힘든 과제”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중 하나로 여성 건강에 대한 의식 강화를 주장했다. 이 센터장이 지난해 낸 보고서 ‘이상(異常)출산의 동향과 정책과제’에 따르면, 한국 임산부의 44.1%는 임신 건강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카페 게시글에 의존하고 있다. 의료서비스 기관에서 정보를 얻는 비율은 단 17.2%.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에 대한 신뢰도는 14.9%에 불과했다. 또 임신 전 3개월 동안 복용한 약품의 임신 안정성을 알고 있는 비율(35%)에 비해 모르는 비율(65%)이 훨씬 높았고, 이에 대해 전문의와 상의하지 않는 경우도 32.3%나 됐다.
이상림 센터장은 “우리나라의 모자보건 관련 인식이나 정책은 임신 전이 아닌 임신 후 및 출산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출산 건강은 전체 인구 차원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청소년기부터 이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제도, 의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를 키우기 어려워 아예 낳지 않으려는 ‘무자식 상팔자’ 시대가 왔지만 정부의 저출산 지원 대책은 구호에 그치고 있다.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를 낳고자 안간힘을 쓰는 난임 환자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미래 세대는 국가 존속의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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