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
한국을 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가 권고문 ‘복음의 기쁨’을 통해 밝힌 교회의 목표다. 세계적으로 록 스타 못지않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인기 비결로는 소탈함, 겸손함, 친근함 등이 꼽힌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 매력’이 드러나기 전, 교황이 대중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교황명으로 그때까지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던 ‘프란치스코’를 택했다. 청빈의 대명사인 이 성인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은 이유는 교황의 발언을 모은 책 ‘교황 프란치스코,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말들’(소담출판)에 소개돼 있다.
이 책에 실린 지난해 3월 16일 연설에서 그는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 당시를 떠올린다. 그때 자신의 옆에 막역한 친구 클라우디오 후메스 추기경이 있었다며 “(내가 교황이 되는 것으로 결정되자) 그분은 나를 포옹하고는 입을 맞추면서 나한테 일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잊어버리지 마시오!’ 그 말마디가 여기로 들어왔습니다. 그다음 즉각 가난한 사람들과 연관시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생각했습니다”라고 했다. 또 “아, 나는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를 얼마나 바라는지 모릅니다!”라고 덧붙였다.
교황으로서의 직분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처럼 ‘가난’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은 교황은 이후에도 지난해 5월 12일 바티칸 시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가난한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 병자들, 소외된 사람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살입니다”라고 연설하는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끊임없이 드러냈다. 7월 25일에는 트위터에 “한 사회가 얼마나 위대한지는 그 사회가 가장 어려움에 처한 이들, 가난밖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알 수 있습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겸손하게 소박하게 가톨릭 변화
교황은 실제 삶에서도 가난을 실천하려 애쓴다. 그가 바티칸 시의 오래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중고차나 버스를 즐겨 타고, 주교 시절부터 사용한 철제 가슴 십자가(pectoral cross)를 여전히 목에 걸고 다니는 일화 등은 널리 알려져 있다.
교황의 이런 태도는 우리나라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방한 첫날 공항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새터민, 외국인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이웃들의 손을 잡았고 이후 소형차 ‘쏘울’을 타고 주한로마교황청대사관 내 거처로 향했다.
그는 평소 다른 성직자들에게도 가난한 이들과 함께할 것을 주문한다. 지난해 7월 그는 바티칸을 순례하러 온 신부들과 함께 한 세미나에서 “사제나 수녀들이 새 차를 가진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며 “자동차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사제 여러분은 더 많이 봉사하고 많이 움직이되 검소한 차를 갖기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가톨릭 성직자들의 사치 풍토를 꼬집은 것이다. 이후 가톨릭 교계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후 주교들이 목에 걸어 착용하는 가슴 십자가를 황금 재질에서 은이나 다른 금속 재질로 바꾸고, 각종 비용도 줄여나가기 시작한 데 이어 사치스러운 대형 차량도 평범한 것으로 교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교황 방한이 우리 종교계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이가 많은 건 이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부 종교 지도자가 교세 확장 등 외형적 성장에만 관심을 쏟고 정작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등의 임무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교계의 양적 팽창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르게 이뤄졌다. 개신교의 경우 신자 수가 1950년 60만 명에서 2005년 861만 명으로 급증했다. 재적 신자 수가 75만 명에 이르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형 교회도 서울에 집중돼 있다.
해외 선교사 파송도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세계 169개국에 파송된 한국 개신교 선교사는 총 2만5745명.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인원까지 더하면 3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에 따라 세계 각종 기독교 관련 기관들은 한국인 선교사 수가 세계 2~6위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가 채 150년이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양적 팽창이 질적 성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 한국교회연합은 2012년 종교개혁 495주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작금의 한국 교회 현실은 495년 전 부패와 오만, 달콤한 죄악에 빠져 있던 당시의 교회와 다르지 않다”며 “교회 지도자들의 도덕적 타락과 금권만능주의는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이고 “이로 인해 사회적 지탄과 기독교 안티 세력이 확산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지난해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는 5점 만점에 2.62점을 기록했다. 시민들이 교회를 신뢰도 불신도 하지 않을 경우 받게 되는 3점보다 더 낮은, 사실상 낙제 수준이다.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 남겨
불교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아시아판은 지난해 한국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한국 불교의 바보 같은 짓(monkey business)’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조계종 일부 승려의 도박 및 음주 논란을 보도했다. 또 종단에서 이 추문 이후 승려의 대형 승용차 사용, 고급 레스토랑 출입, 주식 투자 등을 자제하도록 하는 쇄신안을 내놓았다고 보도하며,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승려 사이에서 갈등이 인 배경에 연간 330억 원의 예산 등 이권이 자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의 행보는 많은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다. 주지할 것은 이미 우리나라에도 낮은 자리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종교인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1988년 11월 최일도 목사가 서울 청량리역 광장에서 굶주려 쓰러진 노인에게 라면을 끓여 대접한 것을 계기로 시작된 ‘밥퍼 운동’은 26년째 이어지고 있다. 다일공동체에 따르면 그동안 봉사자들이 한 끼 식사가 절실한 이들에게 제공한 밥은 700만 그릇이 넘는다.
1987년 8월 가톨릭 평신도 고(故) 선우경식 씨가 노숙인과 부랑자 등을 위해 서울 영등포에 세운 무료 병원 ‘요셉의원’도 현재까지 연인원 56만여 명에게 ‘사랑의 의술’을 베풀고 있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울 수송 보현의 집 등 불교계의 복지 시설들 역시 전국 각지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런 가난과 나눔의 실천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것은 차별과 분열, 폭력과 갈등을 넘어서는 진정한 평화다.
일찍이 예수는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사야서’ 58장 7절)이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석가모니도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며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것’ 등 7가지 나눔의 지혜를 설파했다. 그리고 오늘, 교황은 “가난한 이들 가운데 더 가난한 이들 곁에 서면 주님께서도 당신 곁에 계실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 곳곳에서 이 말씀들을 직접 실천하고 있는 이들을 통해 우리 곁에 한 걸음 가까워진 평화를 만나보자.
한국을 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가 권고문 ‘복음의 기쁨’을 통해 밝힌 교회의 목표다. 세계적으로 록 스타 못지않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인기 비결로는 소탈함, 겸손함, 친근함 등이 꼽힌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 매력’이 드러나기 전, 교황이 대중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교황명으로 그때까지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던 ‘프란치스코’를 택했다. 청빈의 대명사인 이 성인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은 이유는 교황의 발언을 모은 책 ‘교황 프란치스코,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말들’(소담출판)에 소개돼 있다.
이 책에 실린 지난해 3월 16일 연설에서 그는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 당시를 떠올린다. 그때 자신의 옆에 막역한 친구 클라우디오 후메스 추기경이 있었다며 “(내가 교황이 되는 것으로 결정되자) 그분은 나를 포옹하고는 입을 맞추면서 나한테 일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잊어버리지 마시오!’ 그 말마디가 여기로 들어왔습니다. 그다음 즉각 가난한 사람들과 연관시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생각했습니다”라고 했다. 또 “아, 나는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를 얼마나 바라는지 모릅니다!”라고 덧붙였다.
교황으로서의 직분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처럼 ‘가난’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은 교황은 이후에도 지난해 5월 12일 바티칸 시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가난한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 병자들, 소외된 사람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살입니다”라고 연설하는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끊임없이 드러냈다. 7월 25일에는 트위터에 “한 사회가 얼마나 위대한지는 그 사회가 가장 어려움에 처한 이들, 가난밖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알 수 있습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겸손하게 소박하게 가톨릭 변화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4일 오전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화동들에게 꽃을 받는 모습.
교황의 이런 태도는 우리나라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방한 첫날 공항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새터민, 외국인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이웃들의 손을 잡았고 이후 소형차 ‘쏘울’을 타고 주한로마교황청대사관 내 거처로 향했다.
그는 평소 다른 성직자들에게도 가난한 이들과 함께할 것을 주문한다. 지난해 7월 그는 바티칸을 순례하러 온 신부들과 함께 한 세미나에서 “사제나 수녀들이 새 차를 가진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며 “자동차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사제 여러분은 더 많이 봉사하고 많이 움직이되 검소한 차를 갖기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가톨릭 성직자들의 사치 풍토를 꼬집은 것이다. 이후 가톨릭 교계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후 주교들이 목에 걸어 착용하는 가슴 십자가를 황금 재질에서 은이나 다른 금속 재질로 바꾸고, 각종 비용도 줄여나가기 시작한 데 이어 사치스러운 대형 차량도 평범한 것으로 교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교황 방한이 우리 종교계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이가 많은 건 이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부 종교 지도자가 교세 확장 등 외형적 성장에만 관심을 쏟고 정작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등의 임무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교계의 양적 팽창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르게 이뤄졌다. 개신교의 경우 신자 수가 1950년 60만 명에서 2005년 861만 명으로 급증했다. 재적 신자 수가 75만 명에 이르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형 교회도 서울에 집중돼 있다.
해외 선교사 파송도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세계 169개국에 파송된 한국 개신교 선교사는 총 2만5745명.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인원까지 더하면 3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에 따라 세계 각종 기독교 관련 기관들은 한국인 선교사 수가 세계 2~6위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가 채 150년이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양적 팽창이 질적 성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 한국교회연합은 2012년 종교개혁 495주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작금의 한국 교회 현실은 495년 전 부패와 오만, 달콤한 죄악에 빠져 있던 당시의 교회와 다르지 않다”며 “교회 지도자들의 도덕적 타락과 금권만능주의는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이고 “이로 인해 사회적 지탄과 기독교 안티 세력이 확산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지난해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는 5점 만점에 2.62점을 기록했다. 시민들이 교회를 신뢰도 불신도 하지 않을 경우 받게 되는 3점보다 더 낮은, 사실상 낙제 수준이다.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 남겨
8월 14일 오후 청와대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의 행보는 많은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다. 주지할 것은 이미 우리나라에도 낮은 자리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종교인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1988년 11월 최일도 목사가 서울 청량리역 광장에서 굶주려 쓰러진 노인에게 라면을 끓여 대접한 것을 계기로 시작된 ‘밥퍼 운동’은 26년째 이어지고 있다. 다일공동체에 따르면 그동안 봉사자들이 한 끼 식사가 절실한 이들에게 제공한 밥은 700만 그릇이 넘는다.
1987년 8월 가톨릭 평신도 고(故) 선우경식 씨가 노숙인과 부랑자 등을 위해 서울 영등포에 세운 무료 병원 ‘요셉의원’도 현재까지 연인원 56만여 명에게 ‘사랑의 의술’을 베풀고 있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울 수송 보현의 집 등 불교계의 복지 시설들 역시 전국 각지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런 가난과 나눔의 실천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것은 차별과 분열, 폭력과 갈등을 넘어서는 진정한 평화다.
일찍이 예수는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사야서’ 58장 7절)이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석가모니도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며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것’ 등 7가지 나눔의 지혜를 설파했다. 그리고 오늘, 교황은 “가난한 이들 가운데 더 가난한 이들 곁에 서면 주님께서도 당신 곁에 계실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 곳곳에서 이 말씀들을 직접 실천하고 있는 이들을 통해 우리 곁에 한 걸음 가까워진 평화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