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해가 갈수록 진화했다. 1980~90년대에는 단순히 거주 편의성에 치중했던 반면, 2000년대 들어 고급화 바람이 불었다. 건설사들은 저마다 아파트 브랜드를 선보였고 래미안, 자이, 롯데캐슬 등 이름도 공들여 지었다. 아파트 외부 디자인과 단지 내 조경, 지하주차장, 주민 공동 편의시설 등 각종 부대시설에도 신경 썼다. 소비자 눈높이도 점차 높아져 최근 몇 년 새 10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는 수영장과 실내골프장, 독서실, 게스트하우스 등 다양한 주민 공동 편의시설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재건축을 끝내고 9월 입주한 서울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반포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스카이라운지 카페와 하늘도서관, 실내수영장과 사우나, 비즈니스룸과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관심을 끌었다. 인근 재건축아파트조합에서 해당 아파트를 벤치마킹하고자 무리 지어 투어를 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아크로리버파크반포에 사는 30대 전문직 종사자 최모 씨는 “출퇴근하는 데 2시간 넘게 걸리는데 퇴근 후 운동하러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돼 편리하다. 특히 사우나에서 피로를 풀고 스카이라운지에서 한강 야경을 보며 차 한 잔 마시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유치원생 두 자녀를 둔 30대 주부 박모 씨는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낸 뒤 실내골프장에서 레슨을 받고, 오후에는 GX룸에서 큰아이 발레 레슨을 시킨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운영하기 때문에 부담이 적고, 생활수준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녀들끼리도 친해져 여러모로 만족한다”고 평했다.
주민 공동 편의시설의 고급화 바람은 재건축 사업의 영향이 컸다. 여천환 대림건설 커뮤니케이션팀 과장은 “재건축 설계를 할 때 조합 의견이 크게 반영된다. 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조합원이 많기 때문에 요구가 다양하다. 대체로 편의시설의 질을 최대한 높이는 걸 좋아하고 결과적으로도 입주 만족도가 크다”고 설명했다.
접근성 따라 1억 원까지 집값 차이 나는 경우도
재건축아파트조합은 대부분 주민 공동 편의시설에 공을 들인다. 고급화된 시설은 아파트 이미지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 실제로 재건축 후 2008년 입주한 반포동 반포자이는 실외에 카약 물놀이장을 마련해 관심을 끌었다. 당시 인터넷에 오른 사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면서 화제가 됐고, 일명 ‘워터파크 놀이터’로 불리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최근 재건축 심의를 통과한 서울 서초구의 한 재건축아파트조합원 김모 씨는 조합이 진행하는 사업설명회에 매번 참석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을 키우는 처지에서 키즈카페나 실내수영장, 그룹수업 공간 등 필요한 편의시설들이 압축적으로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향후 집값도 편의시설이 없는 단지보다 높게 형성될 것 같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부동산업계에선 주민 공동 편의시설을 학군, 입지 등과 함께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기도 한다. 서울 강남구의 한 부동산중개업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명문 학군인지가 집값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다음으로 입지, 교통여건 등인데, 요즘은 실수요자 위주로 주민 공동 편의시설에 관심이 높아졌다. 매매를 결정할 때 선호하는 편의시설의 유무를 따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주민 공동 편의시설의 유지 및 관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는 “학군, 입지가 좋은 아파트일수록 오래 거주하는 주민이 많은데 대부분 주민 공동 편의시설에 대한 주인의식이 높아 관리에 신경 쓰는 편”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이런 시설이 아파트 매매가에 영향을 미친 단지도 있다. 반포동의 한 대단지 아파트는 총 28개 동 가운데 4개 동이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각종 주민 공동 편의시설이 위치한 동에서 떨어져 있다. 지하주차장마저 분리돼 편의시설을 이용하려면 주민들이 건널목을 건너거나 차로 이동해야 한다. 같은 이름을 쓰는 아파트지만 편의시설 접근성이 떨어지다 보니 동일 면적이라도 평균 1억~1억5000만 원 차이가 난다. 해당 지역의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는 “편의시설 때문에 집값 차이가 나는 경우는 드문데 이 아파트단지는 특이하게 도로로 나뉘어 가격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운영비용 등 주민 갈등 생길 수도
하지만 주민 공동 편의시설은 입주민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운영비용이 고스란히 입주민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 이런 이유로 건설사들은 주민 공동 편의시설을 무조건 고급스럽게 집어넣지 않는다. 여천환 과장은 “게스트하우스나 수영장 같은 시설이 모든 아파트에 들어갈 수는 없다. 운동시설, 독서실 등 초기비용은 들지만 운영비용 부담이 적은 시설은 기본적으로 마련된다. 그 밖에 고급화된 편의시설은 운영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단지 아파트 위주로 들어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주민 공동 편의시설 운영비용을 두고 아파트 주민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보통 편의시설 운영비용은 가구별로 매달 2만~3만 원씩 부과된다. 그런데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적은 맞벌이부부나 편의시설 이용에 적극적이지 않은 입주민의 경우 일괄 지출되는 편의시설 유지비가 부당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 가구별 가족 수가 많게는 3~4명까지 차이 나는데 인당 납부비용을 계산하면 공평하지 않다. 이 때문에 일부 입주민은 “일괄 지출되는 운영비용을 가구별 가족 수 혹은 아파트 평형에 따라 차등 납부할 수 있도록 바꾸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밖에 크고 작은 문제도 발생한다. 보통 주민 공동 편의시설은 단지 중앙에 위치한 1개 동에 들어가는데, 출입구가 분리되지만 입주민의 왕래가 잦기 때문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져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또 편의시설 인근 거주민은 소음에 시달리기도 한다. 아크로리버파크반포의 주민 공동 편의시설인 스카이라운지 카페는 30층에 위치해 있는데 최근 29층 입주민이 층간소음에 시달린다며 뛰지 말아달라는 안내문을 부착했다.
가장 큰 문제는 고분양가의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건설사들은 고급화된 주민 공동 편의시설을 설계하고 이를 앞세워 분양가를 올리려 한다. 수요자들이 마냥 반길 일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 처지에서 경제성을 따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주민 공동 편의시설이 들어가면 고급화 이미지가 생기지만 그만큼 분양가가 올라간다. 그럼 집값이 당연히 오를 수밖에 없다.
또 이런 시설들이 들어서면 아파트 전용률이 낮아지기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3~5년이면 노후화로 보수·교체비용이 드는데 이것도 부담이 된다. 결국 긍정적 효과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매매할 때 잘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