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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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위기의 보수

냉전반공주의 넘어서야 보수가 산다

이념 빈곤으로 패권화 … 건강한 자유주의도, 성숙한 민주주의도 아니다

  •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pjyoon@hs.ac.kr

    입력2017-06-23 16: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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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현재 한국 보수는 궤멸의 위기에 처했다. 19대 대선에서 최다 표차로 정권을 내줬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선 패배는 보수 몰락의 현상적 지표에 불과하다. 현실정치 세계에서 승패는 병가상사다. 현 상황에서 보수 위기의 최대 핵심은 한국 보수가 수구 기득권 집단과 동의어로 여겨진다는 데 있다. 심지어 사회적 놀림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건국과 산업화의 주역이라 자임해온 보수 세대의 처지에서 볼 때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현상이다.

    보수가 맞닥뜨린 위기의 본질은 보수의 목소리가 한국 사회에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는 데서 발견된다. 한국 보수는 자신의 논리를 우리 사회 공론영역에서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자유한국당 대권주자였던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의 막말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갓 출범한 문재인 정부를 ‘주사파 운동권 정부’라 부른다. 정통성과 합법성을 갖춘 민주정부를 ‘빨갱이’로 규정한 극언이 아닐 수 없다. 홍 전 지사의 논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 다수 국민이 국가반역죄를 저지른 셈이다. 패권 보수의 ‘현실 도착(倒錯)’이 얼마나 병적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보수집단의 이념적 빈곤

    군대와 경찰 같은 물리력이 국가 경영의 필요조건이라는 건 국가론과 정치학에서 상식이다. 하지만 공권력이 국가 운영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런 사정을 우리는 정치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통찰을 빌려 국가 헤게모니라고 부른다. 국가의 존속과 재생산에 필수적인 헤게모니의 두 원천은 물리력과 시민적 동의다. 구조적으로 보수 우위인 한국 사회에서 보수의 물리력은 여전히 강대한 데 비해 패권 보수의 담론에 대한 시민적 동의는 크게 줄었다.

    자발적 동의 창출 경쟁에서 보수가 진보에 형편없이 뒤지고 있는 형국이다.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적 행태와 시대착오적 국정농단을 옹호한 소수 극단세력이 보수라고 자칭하던 게 생생한 증거다. ‘촛불과 태극기’의 담론 경쟁에서 태극기 세력은 일방적 열세를 면치 못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조롱까지 감수해야 하는 궁박한 처지에 몰렸다. 이는 특정 정당의 정치적 실패만으로 국한되지 않는 중대 사태다. 보수 패권집단의 이념적 빈곤이 근본 배경이기 때문이다.



    패권 보수가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워왔지만 박근혜 정권 시절 친박(친박근혜) 집단의 무도한 행태나 홍 전 지사의 막말에서 보듯, 그들의 모습은 건강한 자유주의가 아니었으며 성숙한 민주주의로부터도 거리가 멀었다. 이런 패권 보수는 시민을 통제와 관리 대상으로 여겨 자유민주주의를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도구로 악용했을 뿐이다. 한국의 패권 보수가 휘둘러온 전가의 보도가 바로 냉전반공주의에서 나온 ‘종북 타령’이다.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거역하는 것이 패권적 안보 보수의 특징이 된 데는 특정한 역사적 맥락이 있다. 6·25전쟁과 남북분단이 강제한 반공규율사회가 냉전반공주의의 모태였기 때문이다. 세계사적 냉전에서 자유주의 진영 안에 편입된 한국은 냉전의 전진기지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대립하는 두 체제 사이의 생사를 건 싸움이 한반도에서는 열전으로 폭발했다. 그 결과로 생긴 반공규율체제가 엄혹한 방식으로 우리의 전 존재를 규정한 것이 1987년 체제 이전의 한국 현대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사독재의 이데올로기적 금제(禁制) 장치가 자유민주주의를 진영 논리 속 냉전반공주의와 일체화시켰다.

    권위주의적 발전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시민 기본권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언론·출판·결사·집회의 자유, 법치주의와 삼권분립, 입헌주의적 견제와 균형의 원리 같은 자유민주주의 핵심 가치를 국가 안보라는 미명 아래 유린한 게 냉전반공주의다. 냉전반공주의는 자유민주주의에 고유한 생활세계의 가치와 윤리도 변질시켰다. 그 결과 권력과 금력을 독점한 패권 보수의 책략적 기회주의나 출세 지상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동일시되는 가치 전도현상이 생겼다.

    유구한 냉전반공주의의 아비투스(habitus)는 1987년 체제에서도 패권적 안보 보수에 의해 주기적으로 재현되기 일쑤였다. 한국인에게 깊숙이 내면화된 레드 콤플렉스를 패권 보수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악용해온 것이다. 친박의 횡포와 홍 전 지사의 막말에서 보듯, 오늘날에도 이런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런 시대착오적 행태야말로 보수 헤게모니 위기의 핵심이다. 물론 냉전반공주의는 한국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가장 악명 높은 사례는 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 중반까지 미국을 휩쓸었던 매카시즘 광풍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냉전반공주의는 냉전체제 안에서도 그 강도가 매우 심한 것이었다. 그 결과 한국인의 문화 정체성과 정치적 상상력도 피폐해졌다. ‘태극기 집회’에서 횡행한 극단적 논리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실천이 과제

    보수는 사회·정치세력으로서 우익집단의 한계를 넘어서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이념과 철학을 갖춘 한국 보수주의로 진화해가야 한다. 냉전반공주의 극복과 자유민주주의 회복이 그 요체다. 입헌주의적 견제와 균형의 원리, 삼권분립, 법치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 언론·출판·결사·집회의 자유 같은 시민 기본권도 자유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다. 공정한 시장경제는 한국 보수주의의 또 다른 기둥이다.

    시민 기본권은 자유민주주의가 양보할 수 없는 이념이며, 그 가운데서도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가장 중요한 자유주의적 가치다. 그런데 패권적 반공 보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짓밟는 독소조항으로 가득 차 있는 국가보안법의 개폐 논의에서도 유보적 태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야기하지 않는 내면적 사상의 자유조차 용인하지 않는 국가보안법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이가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자처하는 것은 형용모순에 가까운 일이다.

    냉전반공주의가 왜곡한 자유민주주의와 천민자본주의가 굴절시킨 시장질서의 복원이야말로 현 한국 보수주의의 최대 과제라 할 수 있다. 북한 핵 위협에 직면한 대한민국 안보는 철통같이 지켜야 하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탄압하는 냉전반공주의만으로 그 목표를 달성하기란 불가능하다. 6·25전쟁의 참화와 보릿고개의 절대빈곤이 한국 보수의 원형적 기억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냉전반공주의는 미래지향적인 21세기 보수주의와 같이 갈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실천을 통해서만 한국 보수주의의 재구성이 가능한 이유다. 냉전반공주의를 넘어서지 않고 한국 보수의 미래를 꿈꾸는 건 망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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