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쌍용자동차 본사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
“우리가 ‘와’ 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할 줄 알았던 것 같아요. 그 모습을 촬영하면 그림이 되겠다 싶었겠죠.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다들 멍해졌거든요. 곧 정신을 차리고 유일하게 남편이 회사에 돌아가게 된 이웃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더니 그분이 울음을 터뜨리더군요. ‘우리 남편만 돌아가면 어떡하느냐’ 하면서요.”
이씨를 만난 곳은 평택역 광장에 설치된 쌍용차 해고노동자 천막농성장이었다. 그는 “이번 조치로 쌍용차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무급휴직자는 전체 해직자 가운데 일부일 뿐”이라고 말했다.
시계를 4년 전으로 돌려보자. 쌍용차는 2009년 4월 8일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했다. 경영난을 이유로 당시 전체 노동자의 37%에 이르는 인원을 내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노조가 이에 거세게 반발하면서 파업이 시작됐고, 공장을 봉쇄한 채 ‘결사항전’한 이른바 ‘옥쇄(玉碎) 파업’은 그해 8월까지 77일간 이어졌다.
환호성보다 울음 터뜨려
이 기간 평택에서 벌어진 ‘대결’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졌다. 현장에 투입된 경찰특공대원만 1154명. 파업 노동자를 진압하는 데 사용한 물대포 양이 228.8t에 이른다. 해고 통보를 받은 이들과 계속 회사에 남게 된 이들 사이에 ‘노노갈등’이 생기면서 볼트와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 지난한 싸움 끝에 노사가 합의한 건 퇴직자 일부를 무급휴직, 일부는 희망퇴직하게 하고, 이후 경영이 정상화되면 복직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당시 회사를 떠난 무급휴직자는 455명, 희망퇴직자는 1904명에 이른다. 노조 지도부 등을 포함한 159명은 정리해고됐다.
이번 합의를 통해 3월 1일부터 회사에 출근하게 된 무급휴직자 이모(50) 씨는 “무척 기쁜 한편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함께 회사를 떠난 동료 2000여 명을 뒤에 두고 복귀하게 돼 마음이 무거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령의 아버지와 두 아들은 그의 복직 소식에 뛸 뜻이 기뻐했다고 한다.
쌍용차에서 21년간 재직한 이씨는 휴직기간에 평택시 근처 산에서 벌목 일 등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월급은 안 나와도 쌍용차 직원이다 보니 다른 회사에 취업할 수가 없었다. 다른 무급휴직자도 대부분 일용직이나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복직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는 “파업 이후 온갖 모진 일을 겪고 회사에서 쫓겨난 뒤 1년 정도는 그쪽으로 오줌도 안 눌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마음 상처가 조금 치유돼 2년쯤 전부터는 회사에 남아 있는 동료들과 연락을 하기 시작한 상태”라며 “다시 돌아가면 어서 회사를 정상화시켜 회사 밖에 있는 동료들이 하루빨리 복직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2009년 구조조정 당시 쌍용차의 한 해 판매량은 3만4000대. 16만1000대를 판매한 2002년과 비교해 1/5 수준으로 추락한 상태였다. 이후 2010년 8만 대, 2011년 11만3000대 수준으로 차츰 회복한 쌍용차는 지난해 내수(4만7700대)와 수출(7만3017대)에서 모두 12만717대를 팔았다. 올해는 14만 대 판매 목표를 세운 상태다.
곽용섭 쌍용차 홍보팀장은 “아직 회사 경영이 정상화되지는 않았다. 자동차산업에서는 공장이 주야 2교대로 24시간 풀가동할 때 ‘정상화’라고 표현하는데, 현재 쌍용차 평택공장의 가동률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무급휴직자들을 더는 기다리게 해선 안 되겠다는 데 노사가 합의해 복직을 결정한 것이다. 현재 한 명 한 명에게 복귀 의사를 타진하는 등 복직을 위한 실무 작업을 시작했다. 3년여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바뀐 만큼 먼저 한 달가량 업무 관련 교육을 시킨 뒤 현장에 투입할 예정이다.”
이런 회사 측 행보를 바라보는 노조원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1월 15일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만난 한모 씨는 “2009년 나는 파업에 동참하지 않았고, 비참가자들에 대한 당시 노조원들의 공격과 일방적 비난에 큰 상처를 받았다. 감정의 앙금이 다 풀리지 않은 선후배들과 다시 만나는 데 대한 심적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동자는 “무급휴직자들이 회사에 돌아와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아직 일도 많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받아들였다가 회사 재정 상태가 악화돼 또다시 구조조정의 빌미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쌍용차 평택공장은 조립1팀, 조립2팀, 조립3팀 등 3개 생산라인 체제로 운영된다. 현재는 이 가운데 내수용 렉스턴W와 코란도 스포츠, 수출용 카이런과 액티언 등을 생산하는 조립3팀 생산라인만 풀가동되며 잔업과 특근이 이뤄지는 상태다. 코란도C 등을 생산하는 조립1팀 생산라인의 잔업은 주1~2회. 반면 체어맨과 로디우스 등을 생산하는 조립2팀의 경우 하루 4~6시간씩 가동이 중단될 만큼 작업량이 적다. 기본급이 적은 대신 특근 및 잔업 수당이 높은 생산직 특성상 업무량 감소는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회사를 떠났던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 455명의 복귀가 결정된 1월 10일 평택공장 직원들이 웃으며 작업하고 있다.
1월 8일 이곳에서 노동자 류모 씨가 자살을 시도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현재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 치료를 받는 그가 남긴 편지에는 “돈을 빌리고 또 빌리며 살아도 쌀독에 쌀이 떨어져 아이들에게 라면 먹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치권의 (쌍용차) 부실매각만 없었어도, 정부에서 제대로 지원만 했어도, 정리해고된 동료들의 투쟁 방향만 올발랐어도…”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조립2팀 노동자들은 추가 노동력 투입이 달가울 리 없다. 이에 대해 곽용섭 팀장은 “올 1분기 말 출시될 새로운 승합차 코란도 투리스모를 조립2팀에서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곧 생산라인 상황이 개선될 거다. 당장 1월 15일부터 파업 후 처음으로 잔업과 특근이 재개됐다”며 “코란드 투리스모의 연간 생산 목표를 2만2000대로 잡고 있는 만큼 무급휴직자가 복직한다고 해서 기존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이 저하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도 “사측과 근로 시간 및 업무 내용을 협의해 기존 노동자와 복직자 모두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는 방법을 찾겠다”는 태도다. 또 파업 당시 ‘살아남았던’ 이들과 복직자 사이에 생길 수 있는 ‘노노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조가 먼저 복직자들을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헤아리겠다. 우리 대신 고생한 것을 잘 안다고 마음을 열고 대화한다면 소통의 길이 열리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이런 노사 움직임을 보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해고 노동자들이 주로 활동하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성명을 통해 “무급휴직자의 기나긴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끝내는 계기가 될 수 있어 환영한다”면서도 사측이 정리해고자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을 비판했다. “이미 복직됐어야 할 무급휴직자 복귀로 마치 쌍용차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국민을 현혹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이들이 지적한 ‘쌍용차 문제’는 쌍용차 구조조정 이후 해직자와 가족 가운데 23명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면서 불거진 사회적 논란을 가리킨다. 쌍용차 해고자들과 일부 시민사회단체 등은 당시 구조조정이 ‘회계조작’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는 등의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상태다.
이 주장이 지난 대통령선거(대선) 과정에서 쟁점으로 등장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민주당) 모두 국정조사를 약속했지만, 무급휴직자 복직 합의가 발표된 뒤 정치권 기류가 변하고 있다. 쌍용차 노사가 한목소리로 “경영정상화에 방해가 된다”며 국정조사 반대를 외친 뒤 새누리당 내에서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 “이미 국정감사와 청문회 등을 거친 쌍용차가 다시 국정조사를 받을 경우 혼란이 지속되고 대외 신인도가 하락해 기업 경영정상화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를 바탕으로 국정조사에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해고자와 희망퇴직자 복직 요구
새누리당 이한구 원대대표(맨 왼쪽)와 원유철 의원 등이 1월 4일 경기 평택시 쌍용차 평택공장을 찾아 김규한 노조위원장(맨 오른쪽)과 인사하고 있다.
1월 15일 이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현장을 찾았으나 이들은 ‘주간동아’의 취재를 거부했다. 이들을 지지 방문한 것으로 보이는 한 남성은 “일부 언론사들이 쌍용차 노사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전달하며 문제를 호도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평택역 앞 쌍용차 천막농성 현장에서 만난 이정아 씨 역시 “보수 언론은 쌍용차 사태가 해고노동자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몰아간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내쫓긴 게 우리 잘못은 아니지 않나”라며 “우리가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것은 기업이 왜 갑자기 그렇게 부실해졌는지, 정말 부실해졌던 게 맞는지, 노동자 파업을 경찰이 그렇게 가혹하게 진압한 이유가 뭔지 등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밝혀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쌍용차 희생자 추모 및 해고자 복직 범국민 대책위 등에서는 이와 더불어 해고자의 현장 복귀 역시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장에서 내몰린 쌍용차 해직자들이 3년 이상 아무런 조치도 없이 방치되면서 각종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부소장은 “프랑스와 독일 등은 해고노동자가 비슷한 임금 수준의 일자리로 ‘수평적 이동’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설계돼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부실한 사회안전망을 질타했다.
이문호 한국노동혁신연구소장은 “지금 정치권이 논의할 것은 국정조사를 할지 말지가 아니라, 무엇이 쌍용차와 노동자 양측에게 최선의 길인지를 찾아내는 것”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그는 “국정조사를 놓고 쌍용차 노사와 해고자 노조, 여야 정치권이 극한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조사가 진행된다 해도 정치 논리에 휩쓸려 온전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공감할 수 있는 해법을 찾도록 정부와 각계 대표, 관련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중립적 기구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 소장은 “쌍용차의 최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이 앞으로 4~5년간 쌍용차에 9억 달러를 투자해 신차와 엔진 등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안다. 쌍용차는 분명히 되살아날 저력을 지닌 회사”라면서 “정부와 시민사회가 쌍용차 정상화에 대한 확신을 갖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만난 한 노동자는 “돌아보면 2002년 렉스턴이 ‘대한민국 1%’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한창 잘나갈 때가 최고 시절이었다. 그때는 2교대가 풀로 돌았고 성과급도 많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 동료들과 함께 즐겁게 일하는 게 내 꿈”이라고 말했다. 쌍용차가 지금의 진통을 딛고 다시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명가’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