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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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자가 풀 뜯으면 염소는 뭘 먹으란 말인가”

전직 의원들의 잇단 청와대 하향 입성에 민주당 내 대기자들 ‘부글부글’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7-06-09 17: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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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한 세 축이 집권 여당, 정부, 그리고 청와대다. 이 가운데 오롯이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돕는 보좌기구가 대통령비서실이다. 일반적으로 ‘대통령비서실=청와대’로 여겨진다. 대통령비서실장을 청와대 비서실장이라 부르거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을 청와대 수석으로 부르는 식이다.

    청와대 직제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크게 변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을 대통령비서실장, 경호실장, 정책실장, 국가안보실장 등 실장 4명이 보좌하는 구조로 개편했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김기춘 비서실장 아래 수석 10명을 둬 직제상 ‘왕실장’ 체제를 만든 일을 반면교사 삼은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근무하면 선거에 유리

    4실장 체제로 바뀌었지만 대통령비서실장의 소임은 결코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정무직 행정관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한다. 장관급 실장 4명과 차관급 수석비서관 9명, 그리고 40여 명에 이르는 1, 2급 비서관의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그러나 3급 이하 정무직 행정관은 대통령비서실장이 임명장을 준다. 형식상 인사권자가 대통령비서실장인 셈.

    중앙정부 각 부처에서는 청와대와 협의해 비서관 또는 행정관으로 ‘늘공’(직업 공무원)을 파견한다. 청와대 측에서 특정인을 요구하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부처에서 업무 능력이 뛰어난 에이스를 청와대로 파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청와대가 인재 산실로 여겨지는 것은 역대 정부의 이 같은 청와대 인사 패턴과 무관치 않다.



    그에 비해 정무직 행정관은 주로 집권 여당 당직자 또는 여당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채워진다. 대선캠프 또는 선거대책위원회에 참여한 인사들도 정무직 비서관 또는 행정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한다. 청와대에 파견된 ‘늘공’ 출신 비서관 또는 행정관이 청와대와 정부 부처 간 가교 구실을 담당한다면, 정무직 비서관 또는 행정관은 청와대와 집권 여당, 또는 청와대와 국회를 연결하는 일을 한다.

    문 대통령이 당선해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소속 당직자와 의원 보좌진의 상당수가 청와대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향후 선출직에 나설 뜻을 가진 이들이 특히 그렇다. ‘청와대 근무 경력’은 당내 경선은 물론 본선에서도 위력을 톡톡히 발휘하기 때문이다.

    각 당은 공천심사 때 여론조사 결과를 대부분 반영한다. 이때 ‘청와대 경력’은 다른 후보와 차별화할 수 있는 강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이후 실시된 각종 전국선거에서 노무현 정부 내각 또는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이가 대거 선출직에 당선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로 노 전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졌거나 참여정부 시절 노 대통령을 보좌한 인사들에게 호감을 보인 결과다. 2010, 2014년 두 차례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 결과와 2012년 19대, 지난해 20대 총선 결과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가 선거 표심에 얼마나 뚜렷이 반영됐는지를 잘 보여준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좌희정-우광재’로 통하던 안희정, 이광재 두 사람이 각각 충남도지사와 강원도지사에 올랐고, 리틀 노무현이라 일컬어지던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도 경남도지사가 됐다. 그뿐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전 장관은 당시 국민참여당이란 신생 소수 정당 소속이었음에도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제1야당이던 민주당 김진표 후보를 꺾고 경기도지사 후보로 본선에 진출했다.

    2010년 지방선거 때 처음 당선하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과 염태영 경기 수원시장, 김만수 경기 부천시장 등도 모두 ‘노무현 청와대’ 출신 인사다. 채인석 경기 화성시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꾸려진 노무현재단 기획위원 출신이고, 2014년 지방선거 때 기초단체장에 입성한 이창우 서울 동작구청장은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제1부속실 선임행정관을 지냈다.

    지난해 20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강병원(서울 은평을), 황희(서울 양천갑), 권칠승(경기 화성병), 전재수(부산 북강서갑) 의원 등도 모두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점점 좁아지는 청와대 취업 문

    문 대통령이 당선한 후 민주당 소속 인사들과 의원 보좌진 가운데는 내심 ‘청와대 입성’을 노리는 이가 적잖다. 그러나 취임 한 달 만에 이들의 기대는 차츰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돌아가는 모양새가 자신들에게 좀처럼 ‘청와대 입성’ 기회가 찾아올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한 국장급 당직자는 “대통령 당선 직후 청와대에 파견 나갔던 인원이 복귀했고 ‘청와대 근무 희망자’ 몇 사람을 뽑아 다시 청와대로 보냈다”며 “현재 근무는 청와대에서 하고 있지만 아직 신원조회가 끝나지 않아 최종 발령이 나기 전까지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당직자 출신 청와대 근무자는 10명 정도에 불과하다”며 “특히 전직 의원들을 비서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신호가 돼 대부분 기대하던 직급보다 한두 단계 낮춰 가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당의 또 다른 인사도 “사자가 풀을 뜯어 먹으면 염소는 먹고살 게 없어진다. 형님들이 동생들 밥그릇 빼앗는 것 같아 모양새가 썩 좋지 않다”며 차관급 의원을 지낸 전직 의원들이 1급 비서관으로 한 단계 낮춰 청와대에 입성한 것을 에둘러 비판했다.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인사는 “문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직무를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국정 참여 경험이 있는 인사를 우선적으로 뽑아 쓴 것이라 볼 수 있다”며 “내각이 구성되고 청와대가 안정되면 당이나 국회에 포진한 인재를 발탁하지 않겠느냐”고 기대를 표했다.

    그러나 문재인 청와대는 행정관급 인원을 대폭 줄여 운영할 것으로 알려져 당직자나 의원 보좌진 출신 인사의 ‘청와대 입성’은 그만큼 더 어려워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최근 청와대는 정원 외 파견 인원으로 운영하던 국가안보실을 정원 내 인사들로 채울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되면 정무직 인사의 청와대 입성 폭은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다. 국가안보실 근무자 수만큼 정무직 인원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근무자 수가 432명가량이었는데, 이 가운데 기능직을 빼고 순수하게 정무직 행정관 수는 130여 명이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 취임 초 청와대 인력은 정무직 행정관 수가 70명으로 크게 줄어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선거운동 과정에서 ‘나라다운 나라’를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 대통령 당선을 위해 몇 달 동안 휴일도 반납한 채 뛰던 이들에게 국정 참여 기회가 얼마나 고르게 주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대통령 스타일 따라 달라지는 청와대 조직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2월 29일 대통령비서실과 대통령경호실을 ‘대통령실’로 통합, 운영했다. 대통령실은 다시 정무 기능을 주로 담당하는 대통령실장과 정책을 주로 관장하는 정책실장 등 2실장 체제로 나뉘어 운영됐다. 대통령실장 휘하에는 외교안보수석, 정무수석, 민정수석, 사회통합수석, 홍보수석 등이, 정책실장 휘하에는 경제수석, 사회복지수석, 교육문화수석, 미래전략기획관 등이 자리했다. 한편 대통령경호실은 대통령실 산하 경호처로 한 단계 급을 낮춰 처장 1명과 차장 1명, 그리고 기획실·경호본부·지원본부 및 감사관 등으로 편성, 운영했다.

    그러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경호실을 별도로 신설했고, 대통령실도 다시 대통령비서실로 개편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은 장관급인 대통령비서실장과 차관급인 10명의 수석비서관으로 구성됐으며 대통령비서실장 직속으로 총무비서관, 부속비서관, 의전비서관, 연설기록비서관을 뒀다. 이명박 정부 때 정책을 총괄하던 정책실장을 폐지하는 대신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는 정책조정수석을 둬 정책실장 임무를 대신하도록 했다.

    박근혜 정부 대통령비서실의 특징은 대통령 인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고자 대통령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사위원회를 뒀다는 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인사위원장인 대통령비서실장이 공직사회에 ‘왕실장’으로 비치는 부작용을 낳았다. 또한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는 대통령의 친족 및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자를 대상으로 감찰업무를 수행하는 특별감찰관을 뒀다. 청와대 직제만 놓고 보면 대통령 인사 전횡과 대통령 친·인척의 국정 개입을 막기 위한 장치를 모범적으로 설치한 정부가 박근혜 정부인 셈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등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파문으로 국회에서 탄핵되고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인용해 파면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비서실 조직과 직제를 어떻게 구성하느냐보다 그 조직을 어떻게 운용해 애초 의도하던 목적을 달성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는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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