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런 말을 들어봤는가. ‘세상에 좋은 주식, 또는 주식시장은 없다. 좋은 시간과 나쁜 시간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좋은 타이밍을 딱 찾아 들어가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대충 찾아 들어가는 것도 상당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생업으로 바쁜 개인투자자가 그런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다. 개인투자자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자산배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포트폴리오를 주식과 채권으로 구성한 뒤 자신의 상황에 맞춰 바꿔주면 된다. 이처럼 주기적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인하고 관리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실행이 말처럼 쉽지 않다. 다행스러운 점은 당신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게으른 투자자는 너무너무 많다.
이런 게으른 투자자를 위한 상품 가운데 하나가 TDF(Target Dated Fund)다. ‘라이프 사이클 펀드(Life Cycle Fund)’라고도 한다. 미국의 경우 지난 2~3년간 이 상품이 급속히 증가했다. 30개 넘는 금융회사에서 판매 중이며 연 30~40%씩 성장하고 있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수수료 역시 지난해보다 평균 15%가량 떨어졌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이 상품의 인기가 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은퇴 시점에 맞춘 펀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펀드 가운데 하나인 뱅가드(Vanguard)의 TDF 자산배분 상황을 예를 들어보자. 지금 만 45세이고 2030년에 은퇴할 사람의 포트폴리오를 현 시점에서 보면 미국 주식 48.15%, 미국 외 국가 주식 32.10%, 미국 채권 13.82%, 그리고 미국 외 국가 채권 5.92% 등이다. 이 포트폴리오는 2020년 주식을 줄이고 채권을 늘릴 것이다.
TDF를 만드는 회사마다 다른 글라이드 패스를 갖고 있다. 어떤 글라이드 패스가 정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모든 글라이드 패스에 공통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은퇴 시점이 가까워지면 주식보다 채권의 비중이 높아진다. 둘째, 국내 주식의 비중이 해외 주식에 비해 높아진다. 셋째, 수익률이 높고 만기가 긴 채권의 비중이 줄고 수익률이 좀 낮더라도 만기가 짧은 채권의 비중이 높아진다. 넷째, 물가연동채권(미국은 TIPS), 원자재, 그리고 부동산 같은 자산이 은퇴 시점부터 많이 포함된다. 개인투자자가 직접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도 고려해야 할 것들이다.
갈수록 주식보다 채권 비중 높아져
TDF 투자 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수수료다. 미국 TDF의 평균 수수료는 약 0.7%로 주식, 채권 펀드의 평균 수수료보다 높다. TDF가 대체로 장기투자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이 수수료의 차이는 훗날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주식투자 비중의 차이다. 주식의 비중이 클 경우 장기투자를 할 때 더 많은 수익을 올릴 개연성이 높기는 하다. 하지만 만약 펀드가 끝나는 시점에 2008년 금융위기 같은 일이 닥친다고 상상해보라. 1년에 50% 가까운 손실을 내는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TDF를 장기투자한다 해도 좋은 수익률을 올릴 방법이 없다. 이 손실의 크기는 주식의 비중이 클수록 더 커진다. 또한 일반적으로 주식의 비중이 높은 TDF는 수수료도 높다.TDF 자체도 금융의 이노베이션이었다. 최근에는 다양한 TDF를 선보이고 있다. 미국, 유럽시장에 나와 있는 TDF의 이노베이션은 투자자의 리스크 수용 여부에 따라 다른 상품으로 펀드를 구성하는 방법,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펀드를 구성하는 방법 정도로 나뉜다. 글라이드 패스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각각 다른 직업(이를 휴먼캐피털(human capital)이라 한다)을 가진 사람들이 똑같은 글라이드 패스로 같은 위험을 부담할 이유도, 각각 다른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글라이드 패스를 가질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투자자의 위험 선호도 차이를 글라이드 패스와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자산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말 시작된 미국의 블랙록(Blackrock)은 TDF를 세 가지로 분류해 내놓았다. 인덱스펀드, 액티브펀드, 스마트베타 ETF를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방식 등이다.
우리는 지금 월급 받아서 열심히 저축만 해서는 미래를 대비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투자는 인플레이션과 엇비슷한 이자를 주는 저금과는 달리 항상 위험을 지니고 있다. 긴 시간 이 위험의 대가를 충분히 치를 만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이제 더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최소한 자신에게 맞는 상품을 지속적으로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영주 닐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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