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창업자이자 186만 주(18.6%)를 보유한 대주주다. 인터넷보안주로 분류되지만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말을 빌리자면 ‘정확한 실체’는 없다. 실제 코스닥 상장 후 드라마틱한 실적 개선을 보인 적이 드물다. 전형적인 ‘대선 테마주’로 통한다. 안철수 테마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랩은 실제 2011년 중반까지만 해도 2만∼3만 원대에서 게걸음 치던 흔한 ‘중형주’ 가운데 하나였다. 2010년 10월 이후 증권사 애널리스트 수익분석보고서에 단 한 차례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 정도다. 대선 테마주라는 말은 2012년 18대 대선 이후 붙었다. 지금처럼 안 후보가 유력 대선후보로 급부상하면서 덩달아 얻게 된 수식어다.
실체 없는 테마주의 전형
당시 유력 대선주자이던 안 후보가 주인이라는 이유로 안랩은 현 삼성전자급 주가 행보를 걷는다. 재야의 주식고수로 불리는 세력들이 비공식 채널에서 ‘대표 대선 테마주’라며 전례 없는 안랩 주가 띄우기에 한창이던 때다.안 후보의 대권 광폭행보와 함께 2012년 1월 6일 주가는 16만7200원까지 올라선다. 대선 테마주란 이유 말고는 어떤 재료도 없는데 넉 달여 만에 8배 폭등한 셈이다. 안랩 주가가 역사상 최고치를 찍는 동시에 ‘개미(개인투자자를 이르는 말) 지옥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대선 테마주로만 부각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안랩은 그해 2월 ‘안철수연구소’에서 지금의 ‘안랩’으로 사명을 바꿔 안철수라는 이름을 뺐다.
그러나 증시에선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안랩 인기가 쉬이 꺾이지 않았다. 개인투자자가 불나방처럼 더 많이 꼬였다. 안 후보 지지 여부와는 상관없었다. ‘큰돈 한번 만져보자’는 물욕 가득한 ‘묻지마’ 투자자가 대부분이었다. 정보에 뒤처진 개미를 상대로 투기세력들은 맘껏 농간을 부렸다. 안 후보와 관련된 소식이라면 소문이든 의혹이든 사실이든 가리지 않고 퍼뜨렸다. 그럴 때마다 안랩 주가는 등락을 거듭했다. 안 후보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2012년 9월 중순 안랩 주가는 13만 원대를 정점으로 내림세로 돌아섰다.
유력 대선후보라는 호재가 힘을 잃기 시작한 때였다. 급락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사달은 두 달 뒤 났다. 그해 11월 27일 안 후보는 18대 대선후보에서 사퇴했다. 대선 테마주 소멸과 함께 안랩 주가는 3만7000원까지 곤두박질쳤다. 수천억 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14개월간 멀미 나던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야 하는 순간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끝까지 안랩 주식을 쥐고 있던 개인투자자들만 폭탄세례를 맞은 지옥의 날이기도 했다.
안랩의 요즘 주가를 보면 2012년 대선 초반과 판박이다. 안랩 주가는 국민의당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된 3월 15일부터 느닷없이 튀어올랐다. 하루 거래량도 평소 3배인 149만 주였다. 올해 초 5만∼6만 원대에 머물던 안랩 주가는 3월 셋째 주 19.31% 오른 것을 시작으로 넷째 주 46.56%, 다섯째 주 26.98% 급등했다. 3주 새 2배 가까이 오르며 3월 31일 14만7300원까지 치솟았다.
4월 들어서도 안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다음 날인 5일엔 20.28% 급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치원 공약 발언과 딸 관련 의혹이 불거진 뒤 급락한다. 4월 첫째 주 11.27%, 둘째 주 29.15% 떨어졌다. 17일 잠시 16.96% 오르는 반등을 살짝 보이더니 다시 미끄럼틀을 타 4월 27일 현재 7만 원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특히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 1%p내로 근접한 4월 초와 달리 TV토론 등이 진행된 중순 이후엔 지지율 10%p까지 벌어지면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유력 대선후보로 부각된 3월 중·후반 이후 상승세를 타다 의혹들이 잇따라 제기된 4월 내림세로 돌아선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문 후보에 비해 불리하게 나타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실체 없이 급등락을 반복한 2012년 초반과 거의 유사한 흐름이다. 안랩 측은 그때나 지금이나 “주가 급변동과 관련해 별도로 공시할 중요한 정보가 없다”고 공시를 내고 있다.
허나 고삐 풀린 주가를 진정시키는 데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투기세력이 달라붙은 대선 테마주의 한계다. 특히 대선후보 등록 마감과 함께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 4월 17일 안랩 주가의 움직임은 전형적인 대선 테마주임을 재확인케 했다. 안랩 주가는 이날 오전 개장 직후 3.45% 하락한 8만9400원으로 출발했다.
이후 상승 반전하면서 10시 30분 10만9000원까지 올라 17.8% 급등했다. 이후 등락을 반복하다 전날보다 16.95% 오른 10만8300원으로 마감한다. 이날 하루 동안 안랩 주가는 8만8400~10만9100원을 오가며 22% 진폭을 보였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전날 안 후보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논란이 4월 17일 주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곧바로 국민의당 측이 법적,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다고 해명하면서 안랩 주가가 하루새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고 설명했다.
2012년 대선 테마주로 1조5000억 원 손실
한국거래소가 “대선 테마주는 실체가 없는 일종의 폭탄 돌리기”라고 경고한 것과 궤를 같이하는 대목이다. 일부에선 후보 인기에 따라 주가가 출렁거리고 대선 이후 떨어질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한국거래소는 대표적인 대선 테마주 안랩을 4월 3일 하루 동안 투자 유의 종목으로 지정했다. 이유 없이 달아오른 투기 열기를 잠시나마 식혀볼 요량이었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설령 안 후보가 19대 대통령에 당선하더라도 안랩 주가가 승승장구하리란 보장은 없다. 공직자윤리법은 재산 공개 대상인 공직자는 자신과 직계존비속이 보유한 3000만 원 초과 주식을 임명일로부터 한 달 이내 매각하거나 금융회사에 백지신탁하도록 정하고 있다. 안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하면 안랩 주식 186만 주를 처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대규모 매물이 쏟아지고 주가는 급락할 가능성이 높다. 최대주주가 바뀌어 경영권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주가엔 악재다.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안랩 주가는 진폭 차이만 있을 뿐 내리막을 탈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