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에 대한 불만으로 퇴사를 결심한 사람 중에는 회사나 상사에게 뭐라도 손해를 안기고 나가려는 이도 있습니다. 그래봐야 복사용지 펑펑 쓰고 에어컨 안 끈 채 퇴근하는 정도겠지만요.
사람 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 사이에선 늘 갈등과 불만이 생기니까요. 무리로부터 내쳐지는 경우라면 ‘나만 당할 수 없다’ 싶은, 어떻게든 헤살 부리고 싶은 감정이 치밀어 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경계코자 ‘저 긷지 않는다고 우물에 똥 눌까’ ‘침 뱉고 돌아선 우물에 다시 찾아온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마을 공동체의 결속이 단단하던 옛날, 마을 풍속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개인이나 가족을 마을 밖으로 내쫓는 일이 간혹 있었습니다. 다시 동네에 터 잡지 못하게 살던 집을 부숴버리기도 했지요. 이것을 훼가출동(毁家出洞)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쫓겨나는 사람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앞으로 이놈의 마을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누겠다!’ 며 씩씩대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중에는 앙심을 품고 ‘흥! 내 똥물 실컷 마셔봐라’ 하며 공동 우물에 남 몰래 똥 누고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예 사람들 면전에서 우물에 가래침 ‘카악’ 뱉고 떠나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사람 일 모릅니다. 쫓겨났든, 스스로 박차고 나왔든 나중에 어떤 아쉬운 일로 다시 와서 살아야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분한 마음에 차마 해선 안 될 말에 앙갚음까지 하고 나갔다면 그때 과연 얼굴이나 들 수 있을까요. 그러니 사이가 틀어져 떠나는 마당이라도 최소한의 밑바닥 예의는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이 말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이깟 회사 더러워서 때려친다’며 ‘책상 엎고’ 상사 면전에 ‘사표 던지고’ 나왔어도, 그 바닥이 그 바닥이라 언제고 다른 회사에서 또는 거래처에서 머쓱하게 마주칠 수 있습니다. 다신 보지 말자고 막말하며 인연을 끊은 뒤 공교롭게도 결혼할 사람의 가족이나 중요한 이의 친구로 다시 맺어질 수도 있습니다.
세상 참 좁고,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살이입니다. 욱하는 마음에 헤살과 해코지로 남에게 먹인 똥물을 언제고 자기가 다시 마실 수도 있는 노릇이지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말은 화장실에만 붙을 문구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 마음 한편에도 꼭 붙여두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지저분함을 남긴 결별은 언제고 마주칠 악연의 외나무다리가 될 뿐입니다.
김승용은 국어학과 고전문학을 즐기며, 특히 전통문화 탐구와 그 가치의 현대적 재발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속담이 우리 언어문화 속에서 더욱 살찌고 자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자 10년간 자료 수집과 집필 끝에 2016년 ‘우리말 절대지식’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