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스탠리의 ‘모던 팝 스토리’는 1950년대부터 지난 세기 끝 무렵까지 팝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이 다른 음악 관련 책에 비해 특별한 건 그 기간 광야에 등장했던 인물과 음악을 편견 없이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팝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그것은 록, R&B, 솔, 힙합, 하우스, 테크노, 메탈, 그리고 컨트리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라는 서문의 문장처럼, 스탠리에게 비틀스와 마빈 게이, 크라프트베르크와 비욘세는 모두 동등한 혁신의 훈장을 달고 있다. 어떻게 이런 시각이 가능할까. 음악 애호가라면 누구나 특정한 장르와 시대에 ‘꽂히기’ 마련 아닌가. 그렇게 형성된 취향이 쌓이고 발전하며 누군가는 뮤지션이 되고, 누군가는 비즈니스맨이 되며, 누군가는 평론가가 돼 자신의 취향을 구현하고 또한 옹호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물론 나 또한 다르지 않다.
이 질문의 답을 구하려면 저자의 약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4년 영국 호섬에서 태어난 스탠리는 학교 졸업 후 대형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며 음악산업과 첫 인연을 맺는다. 86년 음악 팬진(요즘으로 치면 독립 잡지)을 만들어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의 초기 원고 가운데 하나는 제임스 브라운에 대한 것이었다. 이후 실력을 인정받아 영국을 대표하는 음악잡지 ‘NME’에 조니 캐시 공연의 리뷰를 쓰며 기자로도 활동한다. 그 무렵 그는 동네 친구들과 밴드 ‘세인트 에티엔’을 결성하는데, 이 밴드는 당시 영국 밴드로서는 보기 드물게 여러 장르와 요소가 혼합된 팝 음악을 추구했다. 초기에는 여러 보컬을 객원으로 쓰다 91년 ‘Nothing Can Stop Us’가 빌보드 댄스 차트 3위까지 오르는 히트를 치자 그제야 고정 보컬 시스템을 갖췄다. 이런 이력은 스탠리가 젊었을 때부터 어떤 도그마나 헤게모니에도 사로잡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에게 우월한 음악이란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그저 좋은 음악만 있었을 뿐이다.
스탠리의 편견 없음은 단순히 뮤지션과 장르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스타 뒤에 숨어 있는 프로듀서와 작곡가, 제작자, 레이블에게도 마찬가지다. 스탠리는 영웅호걸뿐 아니라 그 조력자들도 동등한 위치에서 다룬다. 그리하여 ‘모던 팝 스토리’는 음악의 역사를 예술적 운동의 관점뿐 아니라, 차트와 시장의 산업적 관점에서도 다룬다. 후자는 좀 더 중요한 깨달음을 독자에게 알려주는데, 이를테면 하나의 위대한 노래가 동시대 차트에서 어떤 노래들과 겨뤘는가를 확인하게 해 장황한 수사 없이도 그 음악의 가치를 알려주는 것이다. 이 방식은 특히 세월 속에서 살아남아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음악일수록 유용하다.
‘모던 팝 스토리’를 읽으며 나는 몇 번이나 떠올리곤 했다. 음악을 사랑했던 순간들을. 그것은 사춘기 시절 일기를 읽으며 짝사랑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과 같았다. 당시에는 알 수 없던 사랑의 이유를 이제야 흐뭇하게 짚어내는 작업이기도 했다. 또한 나는 몇 번이나 깨달았다. 그간 내가 가졌던 음악에 대한 도그마를. 어릴 때는 메탈이야말로 진정한 음악이라는 자부심에 빠졌고, 언젠가는 힙합도 음악이냐는 냉소를 가지기도 했다. 스탠리는 이런 선입견이 사실 음악계에 오랫동안 존재해온 것이며, 왜 그런 고정관념이 발생하고 확산했는지 조목조목 밝힌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음악은 서로 연결돼 있으며 교착상태에 빠진 흐름은 다른 음악과의 접목과 틀을 깨는 시도를 통해 해소될 수 있었다고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냉소적으로 말한다. 음반의 시대가 끝나고 스트리밍과 유튜브의 시대가 된, 모던 팝을 지나 컨템퍼러리 팝의 시대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환경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음악을 듣고 음악을 꿈꾸는 청춘들이 존재하는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