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밖에서 바라보는 숲의 모습과 같았다. ‘세계’라는 것의 단면을 보는 듯했다. 한국에서 기획하고 만든 아이돌그룹이 아시아에서 소비되는 현장은 어떤가. 보이밴드와 걸그룹은 ‘국내’와 ‘국외’ 시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가. 아이돌과 비아이돌이 국외에서 소비되는 양태는 무엇이 다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체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12월 2일 홍콩 아시아 월드 엑스포에서 열린 ‘엠넷아시안뮤직어워드(MAMA)’ 얘기다.
1999년 만들어진 ‘엠넷영상음악대상’을 전신으로 하는 MAMA는 2009년 현 이름으로 바꾸고 이듬해 마카오, 싱가포르를 거쳐 2012년부터 홍콩에서 열리는, CJ E&M이 주최하는 행사다. 평소 아이돌 음악을 잘 다루지 않음에도 홍콩까지 가서 MAMA를 취재한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각국 음악 관계자가 모여 음악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논하는 크리에이터스 포럼이 신설됐기 때문. 둘째, 2000년대 후반부터 내수산업에서 수출산업으로 확장된 한국 아이돌그룹에 대한 아시아 팬의 생생한 반응을 느껴보고 싶어서다.
크리에이터스 포럼에는 퀸시 존스, 팀발랜드 같은 세계적 프로듀서부터 중국 QQ뮤직, 유튜브 아시아지부 등 현재 아시아 음악 플랫폼을 이끄는 조직의 대표급 인사까지 두루 참가했다. 흥미로운 건 후자 쪽이었는데, 국내에서 어느 정도 통찰력을 갖고 음악산업을 바라보는 이들과 큰 의미에서 같은 견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을 종합해 요약하자면 이렇다. 정액제로 운영되는 특성상 음원 스트리밍 시장은 포화 이후 더는 성장하기 어렵다. 음반이나 다운로드 시장과 달리 이용자의 추가 지출이 없어서다. 따라서 포화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
이에 대한 개별적 생각은 달라도 공통점이 있다면 라이브 시장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과거 음악산업이 대형 음반사나 기획사가 스타를 만드는 방식으로 움직였다면 앞으로는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을 잘 활용하는 이가 스스로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비슷했다. 21세기 등장한 스타 중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입소문을 탄 이가 적잖으며 앞으로는 그런 사례가 더 많아질 개연성이 높다. 이제 음악 소비에 국경이 존재하지 않지만, 과거 같은 슈퍼스타가 나오기도 어려울 것이다. 인터넷이 보편화하면서 공통된 취향을 가진 이가 잘게 쪼개져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명제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건 크리에이터스 포럼이 끝난 직후 열린 본행사에서였다. 메인 MC나 출연자를 알리는 자막이 없는 탓에 무대에 선 게 누구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각 부문 후보 중에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생경한 아이돌그룹도 있었다. 하지만 홍콩은 물론이고 싱가포르, 대만 등 아시아 각국에서 모인 관객은 달랐다.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쌓아온 한국 아이돌산업에 대한 ‘팬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고나 할까. 무대에 어떤 아이돌그룹이 오르든 첫 소절이 나오는 순간 객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오히려 팀발랜드, 위즈 칼리파의 공연 때는 객석에 침묵이 흘렀다. 이적이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계’라고 하는 개념은 이렇게 잘게 쪼개지고 있다.
이런 반응의 의미는 무엇인가. 다시 첫 문단으로 돌아가자. 이제 소품종 대량생산은 스마트폰과 정보기술(IT) 서비스 정도를 제외하면 불가능하다. 그들은 모바일 시대를 견인하는 플랫폼이다. 이 시대에는 국경이 없다. 이런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걱정이 됐다. 어쨌든 아시아는 중화권 아닌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로 중국이 한국 문화 콘텐츠의 제약을 시작한 지금, 뉴 미디어가 견인해온 한국 문화 콘텐츠의 황혼이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스스로 갈라파고스가 되기를 자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