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전 세계가 감탄한 축제 같은 집회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비록 국격을 훼손하고 국민 자존심에 먹칠을 한 대통령을 규탄하는 집회였지만 도심 한복판에서 시종일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열린 집회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민주주의 현장이었다.
집회가 끝난 다음 서울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성숙한 시민의식에 감사하다는 발언을 했지만, 행정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이 있기 전까지 경찰이 보인 모습은 과거부터 이어진 퇴행적이고 위헌적인 금지 통보의 남발일 뿐이었다. 국정농단과 국정파탄에 대한 시민의 분노는 경찰이 보기엔 그저 정권을 위협하는 불순세력의 준동이었을지 모른다. 도심의 교통 소통과 안전사고 예방 등을 내세워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경찰의 위헌적 관행은 멈추지 않았다.
법원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제3차 촛불집회’ 행렬이 청와대 인근인 광화문광장 북단 율곡로까지 대규모 행진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건국 이래 처음이었다. 법원이 강조한 것처럼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가 청와대 인근에서 열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스스로 민주국가임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재판부는 “이 집회와 행진은 특정 이익집단이 주도하는 게 아니라 청소년과 어른, 노인 등 다수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만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제한 규정을 엄격하게 해석하지 않고 조건 없이 허용하는 게 민주주의 국가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일련의 집회가 평화롭게 진행됐고 주최 측의 평화집회 약속과 충분한 질서 유지인 확보, 참가자의 성숙한 시민의식 등에 비춰 평화적 진행을 능히 예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특히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하는 이 집회의 특수한 목적상 사직로와 율곡로가 행진 및 집회 장소로서 갖는 의미는 과거 집회들과는 현저히 다르다고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행진 경로에 사직로와 율곡로가 포함돼 다소간의 교통 불편이 발생할 수 있지만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내의 불편에 해당한다”며 “집회가 이미 예정된 만큼 당일 이 도로를 교통하는 인원이 많지 않을 테고, 또 우회로가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앞서 11월 5일에도 종로와 을지로 방향 거리행진을 경찰이 금지 통고하자 집회 주최 측이 반발해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수용하면서 “이 사건의 집회·시위가 금지될 경우 불법 집회·시위로 보여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헌법 제21조 2항은 집회의 자유에 대한 ‘허가’를 명백히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일부 조항을 근거로 사실상 집회·시위에 관한 허가권을 가진 것처럼 행동해왔다. 과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받은 야간집회 및 시위 금지 조항에 대해서도 정부는 “야간집회는 폭력집회로 변질될 위험이 커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폈지만 통하지 않았다.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하기보다 금지 통고로 평화집회를 막고 오히려 불필요한 충돌을 발생케 하는 경찰의 관행은 이제 용납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허가’로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의 기본권 행사로 지켜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