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는 회화 전시관으로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과 더불어 최다 방문자 수를 자랑하는 미술계 명소다. 다빈치의 ‘동굴의 성모’, 홀바인의 ‘대사들’, 그리고 렘브란트의 초상화들은 지금도 세계 방문객을 끌어 모으는 내셔널갤러리의 유명 소장품이다. 지쳐서 중간에 관람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그래서 작품을 세세하게 보려면 며칠씩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수고와 피곤함 뒤로 평생 잊을 수 없는 예술적 희열을 선사하는 곳이기도 하다.
영화 ‘내셔널 갤러리’는 미국의 노장 다큐멘터리 작가 프레더릭 와이즈먼의 미술관 탐방기다. 와이즈먼 특유의 다큐멘터리처럼, 주관적인 해설과 의견을 최대한 배제한 자연도감 같다. 일반 다큐멘터리라면 동원되기 마련인 해석을 포함한 내레이션, 감정을 조절하는 음악, 드라마를 닮은 이야기 구조 같은 인공적인 장치가 거의 없다. 그 대신 미술관 안을 호기심 많은 여행자가 탐험하듯 세세하게 관찰한다. 와이즈먼의 카메라는 걸작들을 직접 보고, 큐레이터의 흥미로운 설명을 들으며, 복원전문가들의 작업을 관찰하고, 또 다른 방문자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본다. 만약 그런 장면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 해석은 내레이션이 아닌, 관객의 상상력에 맡기는 것이다.
어떤 큐레이터는 루벤스의 ‘삼손과 데릴라’ 앞에서 데릴라는 삼손을 유혹하다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됐을 것이라는 상상력을 펼친다. 그런 상상력을 동원할 때 그림은 더욱 풍성한 의미를 갖게 될 테지만, 사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자료는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관객의 상상력은 두 사람의 모호한 관계 속에서 계속 진행될 것이다. ‘내셔널 갤러리’는 이처럼 모호함을 여행하는 것이 최고급의 예술적 희열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내셔널 갤러리’는 유난히 티치아노의 ‘신화 시리즈’를 강조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좋아하던 티치아노는 ‘아르테미스와 악타이온’ ‘악타이온의 죽음’ 같은 신화를 많이 그렸다. 순결한 여성을 상징하는 아르테미스의 나체를 본 사건 때문에 악타이온은 저주를 받아 사슴이 됐고, 결국 사냥개들에 의해 죽음에 이른다. 이 비극적 신화가 대가의 붓에 의해 생생하게 표현됐다. 신화가 사실과 상상 사이의 알 수 없는 모호함에 둘러싸여 있듯, 예술의 정체성이 곧 신화 같다는 생각일 테다.
와이즈먼도 예술의 멋은 곧 티치아노가 그린 신화 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단일하게 파악되기보다 알 수 없는 신비함 속에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어떤 큐레이터의 말을 빌려 베르메르 같은 화가는 의도적으로 작품을 신비함 속에 가뒀다고도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티치아노의 두 그림 ‘아르테미스와 악타이온’ ‘악타이온의 죽음’ 앞에서 남녀 무용수가 신화 내용을 표현하는 발레를 추는 장면이다. 신화 그림 앞에서 신화 같은 춤이 펼쳐지는 신비한 공간, 그곳이 ‘예술의 보고’ 내셔널갤러리라고 말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