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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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정란’ 새누리당 한가한 ‘잉투기’

친박, 대열만 유지하면 야당 되더라도 나쁘지 않다?…후계자 인정 않는 대통령이 가장 문제

  • 이종훈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6-07-04 16: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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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임정당’이란 표현이 있다. 수권능력이 없는 정당을 말한다. 알은 낳지만 새끼를 깔 수 없는 무정란만 낳는 정당인 셈이다. 지금 새누리당이 불임정당을 향해 가고 있다. 차기 대권을 포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4·13 총선 직전 180석까지 꿈꿨던 새누리당이다. 격세지감이다. 그나마 탈당파들을 복당케 해 겨우 제1당 지위를 회복했다. 여전히 여당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은 가임정당이 될 수 있을까. 수권능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유정란을 낳을 수 있을까.



    후계자를 허용하지 않는 대통령

    새누리당이 변하려면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 새누리당을 놔줘야 한다. 친박(친박근혜)계에 대한 영향력을 거두고 새누리당이 스스로 유정란을 낳게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후계자를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세간의 일반적 관측이 있었다. 실제로 지금 새누리당에는 후계자다운 후계자가 없다. 그나마 한때 대권주자 지지율 1위까지 갔던 김무성 전 대표도 후계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박 대통령과 일정 거리를 둠으로써 존재감을 인정받았을 뿐이다. 그런 김 전 대표도 총선 패배 이후 힘을 쓰지 못하는 상태다.

    ‘후계자’ 또는 ‘후계자들’이 없어 박 대통령 개인은 행복할지 모른다. 임기 말 권력누수를 재촉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임 이후가 문제다. 새누리당은 야당으로 전락할 테고, 박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국정 책임론에 꽤 오랫동안 시달려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함께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당장은 행복하지만 퇴임 이후가 오히려 불행한 역대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후계자’ 또는 ‘후계자들’을 키우는 게 당연하지만 성격상 그게 안 되는 게 한계다.

    그나마 박 대통령이 후계자급으로 인정하는 인물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반 총장이 국내에 체류하지 않는 까닭에 권력누수를 조장할 수 없다는 점도 매력적일 것이다. 박 대통령의 생각이 이러하다 보니 새누리당 친박계도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일단 대통령의 뜻을 받들겠다는 취지다. 그러다 기회가 오면 후계자로 점지를 요청할 요량인 친박계도 물론 없지 않다. 가장 유력한 인물은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다. 물론 박 대통령의 반기문 사랑을 읽은 지금은 그도 대권보다 당권으로 비켜가는 모양새다. 한 번 쉬었다 가겠다는 것이다.



    친박계의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는 매우 구체적인 실행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4·13 총선 직전 친박계 핵심 소장파인 윤상현 의원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설립한 충청포럼 회장직에 올랐다. 공천과정에서 성 전 회장의 동생인 성일종 교수가 공천을 받았고 이제는 당당한 새누리당 의원이다. 녹취록 유출 파문으로 탈당까지 했던 윤 의원이지만 최근 복당이 이뤄졌다. 조기 복당이 오히려 윤 의원 때문이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윤 의원은 복당 직후 김종필 전 국무총리까지 만났다. 김 전 총리가 누구보다 열심히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김종필-윤상현-성일종 라인은 앞으로도 꽤나 분주하게 움직일 것이다.

    반 총장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권주자 지지율 1위를 기록 중이다. 최근 한국 방문과 일련의 발언으로 그의 대통령선거(대선) 출마는 이제 기정사실이 됐다. 문제는 돌발변수다. 예상하지 못한 악재로 반 총장이 출마하지 못하거나 출마 직후 낙마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새누리당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수 있다.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악재가 터지면 그나마 마땅한 대안조차 찾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패할 수밖에 없다. 반기문 올인 전략이 안고 있는 허점이다.



    존재감 없는 잠룡들

    김무성 전 대표의 지지율 하락 이후 반 총장을 제외하면 누구도 김 전 대표만 한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6월 10일 발표한 차기 정치지도자 적합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기문 총장 26%,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16%,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 10%, 박원순 서울시장 6%, 오세훈 전 서울시장 4%, 유승민 의원 3%, 손학규 전 대표 3%, 김무성 전 대표 2% 순이다. 김 전 대표의 지지율 폭락이 눈길을 끄는 가운데, 새누리당에서는 오세훈 전 시장이 5위, 유승민 의원이 6위를 겨우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반 총장을 제외하면 새누리당 잠룡들은 존재감이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마저도 상처를 입지 않은 잠룡이 없다. 오 전 시장은 총선에서조차 패했다. 유 의원은 박 대통령은 물론 새누리당 주류인 친박계의 눈 밖에 난 지 오래다. 김 전 대표 역시 총선 참패 책임론에 묶여 있다. 무엇보다 모두 비전이 약하다는 치명적 단점을 지니고 있다.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바가 뚜렷하지 않다. 유 의원 정도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중부담-중복지를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김 전 대표는 총선 당시 보수혁신이라는 기치 아래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를 대표 상품으로 내놓았지만 이조차 결국 관철시키지 못했다. 오 전 시장은 무상급식 반대 이미지만 강할 뿐이다.

    아직 순위에 끼지 못하지만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 그리고 홍준표 경남도지사도 잠룡으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남 지사는 연정이라는 그 나름의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협치에 대한 갈망이 높은 시대에 국민의 눈길을 끌 만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남 지사는 최근 2기 연정에서 지방장관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의회 여야 도의원 4~5명에게 무보수명예직이나마 지방장관 임무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정치적 의도가 엿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신선하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홍준표 지사는 최근 경남 채무제로라는 그 나름의 성공신화를 썼다. 국가부채부터 가계부채까지 부채공화국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부채에 시달리는 국민으로서는 홍 지사의 성과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홍 지사가 국가적 부채 사태에 해법을 내놓을 수만 있다면 이 이슈만으로도 단숨에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가 올지 모른다. 부채 폭탄이 터지는 시기가 바로 그때라면 폭발력은 더 커진다. 물론 2017년 대선이 끝날 때까지 그 폭탄이 안 터질 수도 있다.

    반면 원희룡 지사는 아직 뚜렷한 도정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제주 제2공항 건설과 전기차산업 육성 정도가 눈에 띈다. 전기차산업이 국내 소비자에게 관심사고 제주도가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비해 앞선 것은 사실이지만, 산업적 측면에서 아직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다는 점에서 주목도가 떨어진다. 제주도 자체 규모가 작아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만큼 정책적 중요도를 갖지 못한다는 점도 그에게는 약점이다.

    이 밖에도 충북도지사를 각기 지낸 정우택 의원과 신임 이원종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도 떠오르는 잠룡이다. 반기문 총장이 낙마할 경우 충청대망론의 또 다른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는 인물들이라는 의미다. 정 의원은 총선 직후 충청대망론을 반 총장만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대권 도전 의지를 내비친 상태다. 이 비서실장 역시 박 대통령이 지근거리로 불러들였다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 중이다. 일단은 킹메이커 구실을 하겠지만 대권 도전 기회가 온다면 마다하지 않으리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친박계가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로 응집력을 키워가는 사이 비박(비박근혜)계의 분열 양상은 날로 심화되고 잇다. 구심점을 만들어 응집해도 친박계에 대항하기 버거운 상황에서 거꾸로 걷는 형국이다. 복당한 유승민 의원이 비주류의 새로운 구심점이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없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대선주자로서 유 의원의 존재감이 아직 그렇게 강력하지 않다는 점. 더욱이 유 의원 스스로 복당 이후 파괴력 있는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당분간 잠행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 길어지면 포기로 읽힌다.



    더 분열하는 비박계

    유 의원이 최근 당권보다 대권으로 직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특유의 겸손함으로 읽히지만 좋은 선택인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당권 경쟁에 뛰어들어 선거운동을 하면 비주류의 중심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대권으로 직행해 다른 대선주자를 압도할 무엇을 보여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잠재력은 충분하다. 다만 이제는 내용으로 보여줘야 한다.

    유 의원이 주춤하는 사이 비주류의 새로운 중심이 되겠다고 자처하는 이가 늘어났다. 당권 도전을 선언한 정병국 의원과 김용태 의원, 그리고 유승민계 이혜훈 의원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 가장 공격적으로 쟁점을 내건 이는 김 의원이다. 혁신위원장으로 내정됐다 무산됐을 때 “새누리당에서 정당민주주의는 죽었다”고 진단했던 그가 이번에는 ‘입헌주의’와 ‘법치주의’의 복원을 혁신 화두로 내걸고 나타났다. 원론적인 화두지만 친박 패권주의의 폐해를 우려하는 보수세력에게는 새삼 매력적으로 들리는 구호다. 김 의원이 유 의원의 ‘대체재’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친박계는 정말 정권 재창출 의지가 있을까. 쇼라도 불사해야 할 때 패권 수호에 집착하는 그들을 보면 그럴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과거 친박연대 시절로 회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소수지만 단단했던 시절 말이다. 그렇게 대열을 유지하고 있으면 야당이 되더라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어차피 180석의 꿈이 사라졌다면, 솔직히 그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권불십년’이라고 했다. 보수정권 10년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야당이 되는 것이 오히려 순리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야당이 될 준비에 돌입한 것이 아니냐는 추정이다.

    최근 친박계를 보면 몸 따로 마음 따로인 듯 느껴질 때가 많다. 대오도 예전처럼 일사불란하지 않다. 비상대책위원회의 복당 결정 직후 보인 그들의 분열상이 대표적이다. 일부가 강력 반발하는 속에서도 대다수는 뒷짐 지고 관망만 했다. 심지어 올 것이 왔다는 식의 자포자기 모습을 보인 이도 없지 않다. 지난 총선이 그만큼 치열했고 그 결과에 충격을 받을 만큼 받았다. 지칠 만도 하다. 그러나 수권정당이길 포기하면 불임정당이라고 앞서 지적했다. 스스로 불임임을 수용하려는 태도, 그것이 어쩌면 새누리당을 급속히 불임정당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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