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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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新산업노예 현·장·실·습·생

학생도 근로자도 아닌 그들 “우린 죽음을 실습합니다”

업체 갑질 횡포에 사망사고, 자살 잇따라…정부는 방치, 학교는 취업률 의식 “참고 다녀라”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7-01 17: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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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8일 서울메트로 2호선 구의역에서 김모(19) 군이 사망했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역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을 보지 못하고 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 사고가 보도되자 여론은 들끓었다. 서울메트로 하청업체 은성PSD 소속 현장실습생이던 김군이 ‘2인1조 작업’ 규정과는 다르게 혼자 바쁘게 일하다 변을 당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숨진 김군의 가방에서 나온 컵라면은 세인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안전장치 하나 없이 끼니를 굶어가며 일하던 김군은 끝내 ‘정규직’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현장실습생’으로 생을 마감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현장실습은 학생 신분으로 산업현장에서 요구되는 실무를 직접 배우고 이를 취업으로 연결 짓게 돕는 제도로, 1963년 산업교육진흥법에 근거해 처음 실시됐다. 고등학교의 경우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에서 주로 진행한다. 현재 산업현장에 나가 있는 실습생은 대부분 현장 근로자와 같은 수준의 일을 강요받는 반면, 휴식이나 근무시간 이행 측면에서는 제대로 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일부 업체는 현장실습생들이 근로기준법을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해 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위험한 현장에까지 투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그동안 현장실습생을 위한 제대로 된 법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6월 24일 ‘직업교육훈련촉진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는 2월 개정 및 공포한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의 후속 조치로, 개정안에 따르면 현장실습생과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채 현장실습을 진행하는 업체 운영자는 최대 200만 원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현장실습생이 당하는 부당한 대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고로 죽고, 자살하고…

    열악한 환경에 놓인 현장실습생은 비단 김군만이 아니다. 2011년부터 거의 매년 현장실습생이 실습 장소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2011년 12월에는 기아자동차 광주 공장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 김민재(18) 군이 공장 기숙사 앞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원인은 뇌출혈. 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김군은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김군은 2011년 8월 말부터 공장에서 스프레이 도장 및 재연마 작업을 해왔다. 문길주 전국금속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실장에 따르면 당시 김군이 근무하던 도장 공장은 과거 노동자 3명이 백혈병에 걸린 적이 있는 곳이다. 게다가 노동시간도 길었다. 근로계약상 현장실습생은 주 40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없지만,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김군의 노동시간은 주 70시간이었다.

    끔찍한 사고 이후에도 산업현장은 현장실습생들을 위험에 노출시켰다. 김군의 뇌출혈 사고가 있은 지 1년 후인 2012년 12월 울산에선 한라건설 해상크레인 작업선이 전복돼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자 중 1명은 현장실습생 홍성대(19) 군이었다. 2014년에는 울산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인 금영ETS 공장이 붕괴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현장에서도 현장실습생 김모(19) 군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현장에서 야간근무를 하다 공장 붕괴를 피하지 못하고 숨진 것이다.

    실습현장에서 과도한 업무나 동료들의 괴롭힘으로 자살한 학생들도 있다. 2014년 1월 20일 CJ제일제당 충북 진천공장에서 일하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김모(18) 군이 투신자살했다. 근로복지공단 조사에 따르면 졸업 3개월 전부터 현장실습생으로 공장생활을 시작한 김군은 일이 익숙지 않다 보니 동료 근로자들에게 지적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급기야 선임 근로자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 집단따돌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군은 ‘너무 무섭다.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라는 글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기고 괴로워하다 결국 목숨을 끊었다.



    학교 측 “불법 있어도 참고 다녀라”

    특성화고의 파견형 현장실습은 고교 졸업 후 채용을 염두에 둔 3학년 2학기 학생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대신 각 사업장으로 출근해 현장에서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배우도록 하는 일종의 대체수업이다. 하지만 실제 이뤄지는 현장실습은 애초 취지와 달리 저임금, 단순 노동력 공급 수단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직무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실습생이라는 꼬리표도 있으니 현장의 부당한 대우에도 항의조차 못 하고 끙끙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박모(19) 씨는 지난해 경기 안산시 한 제조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갔다. 박씨는 “처음 취업할 때 학교와 업체가 월급 160만 원을 주기로 약속했지만 실제 손에 들어온 돈은 120만 원에 불과했다. 회사가 작아 주말과 야간에도 일했지만 야근수당이나 연장근로수당을 전혀 받지 못해 실제 받는 금액은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상사에게 이야기했는데도 상사는 듣는 둥 마는 둥 넘겼다”고 밝혔다.

    현행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 따른 표준협약에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은 야간과 휴일 노동이 금지되고 1주에 40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박씨처럼 적정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업체와 처음 계약한 근로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노동부의 2014년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용사업장 적발 사항 통계에 따르면 ‘임금 미지급 등 금품 위반’이 62.4%(중복 적발 포함), ‘초과·야간 근무 등 근로시간 위반’과 ‘서면계약 작성 의무 위반’은 각각 28.2%와 24.8%를 기록했다. 즉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 대부분에서 현장실습생은 최저시급이나 근로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현장실습생이 부당한 대우를 감내하고 억지로 회사를 다닐 수밖에 없는 데는 학교 측의 책임 회피도 한몫한다. 사회생활을 처음 하는 학생을 업체의 횡포로부터 보호하고 도움을 줘야 할 학교가 되레 취업실적이 떨어질까 무조건 참고 실습을 마칠 것을 강요한다. 사업장이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계약을 위반해도 그냥 참고 다니라고 종용한다. 지난해 10월 경기 용인시 인근 건설현장으로 현장실습을 나간 정모(19) 씨의 고백에는 취업 실적에만 목매는 학교의 현실이 그대로 묻어난다.

    “현장실습 시 실습생에게는 야간작업을 시키지 않겠다고 구두로 약속을 받았지만 막상 건설현장에서는 거의 매일 야간작업을 했다. 게다가 다른 근로자들에게는 야근수당이 지급된 반면, 나는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받지 못했다. 가끔은 현장 반장이 주말에도 불러 일을 시켰다. 답답한 마음에 학교에 연락해 관련 사항을 이야기했지만 ‘참고 다니라’는 식의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참을 수 없어 두 달 만에 실습을 그만두자 학교에서는 나 때문에 후배들이 현장실습을 나갈 회사가 줄어들었다며 교내봉사 징계를 내렸다.”

    각 학교가 재학생들이 산업현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업체에 항의하지 못하는 궁극적 이유는 취업률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 안양시 한 특성화고 교사는 “하루 7~8시간, 그것도 평일에만 근무하겠다고 하면 학생을 받아주는 업체가 거의 없다. 취업률에 따라 학교 평가와 예산 배정이 달라지니 학교에서는 취업률에 목맬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영면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취업률이라는 숫자로 각 고교를 평가하면서 생기는 문제다. 학생이 어떤 회사에 취업했는지, 어떤 대우를 받는지 등 질적인 평가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특성화고 학생의 취업률이 조작됐다는 의혹도 있다. 2014년 교육부는 실업계 졸업생 11만9000명 가운데 44.9%인 5만3000명이 취업했다고 발표했지만, 감사원 감사 결과 이들 중 1만7000명은 취업 여부를 확인할 객관적 자료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2009년 16.9%에 불과하던 특성화고 학생 취업률이 2015년 47.6%까지 치솟았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36쪽 기사 참조).



    법개정안 처벌조항 실효성 없어

    산업현장에서 현장실습생이 각종 사고와 함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만 이를 개선해줄 직업교육훈련촉진법 개정안은 2013년 발의 후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돼 2년간 빛을 보지 못했다. 이 개정안의 골자는 주말·야간 근무 금지 조항만 있어 유명무실하던 표준협약서에 이를 위반했을 경우 처벌 규정을 명문화한 것. 하지만 이 개정안은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돼 전혀 진척을 보지 못하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겨우 통과해 6월 24일 교육부의 입법예고가 이뤄졌다.  

    8월 4일부터 시행될 개정 법안에 따르면 업체와 현장실습생이 제대로 된 계약서를 쓰지 않은 채 현장실습을 진행하는 경우 업체 운영자는 최대 200만 원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최초 위반 시 50만 원, 재차 위반 시 100만 원이다. 3차례 이상 위반하면 200만 원 과태료를 내야 한다. 계약을 체결할 때 표준협약서를 적용하지 않으면 최대 60만 원 과태료를 내야 한다. 표준협약서에는 주말·야간 업무를 금지하는 조항과 함께 근무시간을 하루 7시간 1주일에 35시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합의를 통해 하루 1시간, 1주일에 5시간 실습시간 연장 가능)이 있는데, 이들 조항을 어기면 각각 최초 위반 시 15만 원, 재차 위반 시 30만 원이 과태료로 부과된다.

    이처럼 법상 처벌 규정이 생기는 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현장실습생에 대한 업체들의 횡포가 사라질지는 의문이다. 처벌 규정이 형사처벌이 아닌 행정적 과태료일 뿐인 데다 그 금액도 너무 적기 때문이다. 각 업체가 현장실습생에게 주말·야간 업무와 평일 초과근로를 시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최대 과태료 금액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에 개정 법안의 처벌 규정 또한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노동계의 대체적 반응이다.  

    개정 법안의 실효성과 관련해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처벌 규정 자체가 미미한 수준이다. 근로기준법에도 이와 유사한 금지조항이 있는데 이를 위반할 경우 징역형(2년 이하)이나 벌금형(1000만 원 이하)에 처하게 돼 있다. 그에 비해 현장실습생에 대해서는 과태료 금액이 턱없이 적을 뿐 아니라 처벌 형태가 벌금이나 징역형 같은 형사처벌이 아니기 때문에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과태료 금액은 고용노동부에서 설정했다. 근로기준법상의 과태료 책정기준에 따라 금액이 정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법 위반 시 벌금 대신 과태료를 부과하게 한 것은 국회에서 법안이 내려올 때부터 정해진 사안이었다. 우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서 내용 누락에 따른 과태료 부과 기준을 적용해 최대 200만 원 과태료 체계를 만들었다. 현장실습생과 근로자의 차이를 생각해 일부 위반 사안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에 비해 과태료를 적게 책정했다”고 해명했다.

    교육부, 특성화고 취업률 높이는 데만 관심특성화고가 늘면서 현장실습이 증가하고 이와 관련한 각종 문제도 계속 불거지고 있지만 교육부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취업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하다. 이준식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은 1월 21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현장 중심의 직업교육 강화를 위해 국가직무능력표준인 NCS 제도를 특성화고 교육과정에 전면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은 “현재 19%(33만 명) 수준인 특성화·마이스터고 비중을 2022년에는 30% 수준까지 높일 것”이라는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NCS 과정을 도입한 특성화고를 늘려 고졸 학생의 취업률을 높이겠다는 게 목표였다.  

    교육부 장관의 호기로운 계획 발표에도 관련 지표들이 말해주는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2015년 감사원은 ‘산업인력 양성 교육시책 추진실태’ 감사 결과에서 NCS 제도에 대해 △직무역량 수준 개발 ‘부적정’ △산업인력 공급제도 개선 방안 수렴·반영 체제 ‘부적정’ △산업 분야 특정 분석 ‘미흡’ 판정을 내렸다. 결국 NCS 제도 자체에 문제가 많다는 것.

    NCS 제도로 특성화고가 단지 기업체 인력을 양성하는 전용 훈련기관으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광호 한국직업교육학회장은 “NCS 제도 때문에 학생들이 기업이 바로 가져다 쓸 수 있는 기술인력으로 치부될 수 있다. 기술은 시대에 따라 급속히 변하기 마련인데 NCS 제도를 통해 특성화고를 기업체 전용 인력 훈련기관으로 인식한다면 학생들을 하나의 부품으로 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대학 현장실습 상황은 더 열악해마이스터고나 특성화고의 현장실습생은 적어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특성은 인정된다. 그러나 대학 현장실습생은 이마저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각 대학의 간호, 호텔경영, 유아교육, 사회복지 등 전문기술이 필요한 전공과목에서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현장실습은 여전히 ‘고등교육법상 교육과정’으로 분류돼 있어 노동 관련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학생임을 전제로 ‘무분별한 근로를 금지하고 교육 목적을 분명히 하라’는 교육부의 지침이 있지만 법적 강제성은 없다. 이 때문에 현장실습에서 노동 착취나 불합리한 행위가 일어나도 위법 여부를 판단하기는 실질적으로 어렵다.

    최근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의 취업 기회를 늘리고자 확대하고 있는 대학생 인턴사업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대학이 민간기업과 제휴해 진행하는 ‘직업 체험형 인턴’은 대부분 원칙적으로 무급이다. 학교가 교통비 등 실비나 장학금을 주는 식이다. 취업을 목적으로 한 ‘취업 연계형 인턴’도 근로기준법 적용 여부가 불명확해 기업 사정에 따라 근로 조건이 천차만별이다.

    고용노동부도 대학 현장실습생의 문제점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대학 관리를 맡은 교육부와 이견을 보여 관련 제도 정비에 진척이 없다. 2016년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인턴 활용 기업 지원은 고용부가, 학생 관리는 교육부가 맡아 인턴제를 현실화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끝내 무산됐다. 결국 대학 현장실습생은 아직도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관련 법규가 없는 상태에서 표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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