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A씨는 최근 잇몸질환으로 치과를 방문했다. 치약을 바꾼 이후 잇몸이 점점 붓고 출혈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진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치주낭(치아와 잇몸 사이 틈새)에서 작은 알갱이 여러 개가 발견됐다. 의사는 “치약 속 작은 알갱이가 입안에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A씨가 쓰던 치약 포장 겉면에는 ‘미세한 과립이 치태, 치석을 60% 이상 제거한다’는 광고문구가 있었다. 하지만 치과의사는 “과립이 오히려 잇몸 염증을 유발했다”고 진단했다. A씨는 치약 회사에 항의하고 한국소비자원에 민원을 접수할 예정이다.
A씨 입안에서 발견된 알갱이는 ‘미세 플라스틱’이다. 영어로는 마이크로플라스틱(microplastic) 또는 마이크로비드(microbead)라 한다. 약 0.001~5mm 크기의 플라스틱으로 주원료는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나일론 등이다.
미세 플라스틱은 우리 일상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먼저 피부 각질을 벗겨내기 위한 스크럽 제품에 가장 많이 쓰인다. 그 외 손 세정제나 치약에도 널리 사용된다. 미국 환경단체 파이브 자이어스 (5 Gyers)에 따르면 한 가지 화장품에서 미세 플라스틱 35만 개가 검출된 경우도 있다.
생활용품 속 미세 플라스틱은 완전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 압력을 받아도 입자가 사라지지 않는다. 기자가 쓰는 손 세정제도 미세 플라스틱을 함유하고 있어 손가락으로 문질러봤다. 손바닥에 용액을 짜 100회까지 손가락으로 비볐지만 거친 촉감의 알갱이는 그대로 남았다. 전문가들은 “미세 플라스틱은 영구 존재하기 때문에 무한정 사용하면 인체, 환경에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 세계 환경 관련 시민단체들은 화장품 속 미세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작은 입자가 논란의 중심에 선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A씨처럼 “미세 플라스틱이 잇몸질환의 원인이 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 종로구 소재 서울A플란트치과의원의 고영민 원장은 “치약 속 알갱이로 치주염을 앓는 환자가 종종 있다”며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간 치약은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고 원장은 “원래 치주염을 앓는 환자의 경우 치주낭 깊이가 5~6mm이다. 이 경우 치주낭에 미세 플라스틱이 침투하면 이것을 환자가 스스로 제거할 방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2014년 미국의 한 소비자도 방송에 나와 “치약 속 파란색의 미세 플라스틱 때문에 치주염을 앓았다”고 밝히며 증거사진을 공개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러면 치약 회사들은 왜 제품 속에 미세 플라스틱을 넣는 걸까.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가 치아 표면을 연마하는 기능이 있어 치태를 긁어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알갱이가 긁어낸 치태는 입안을 헹굴 때 물에 섞여 입 밖으로 빠져나간다. 고영민 원장은 “미세 플라스틱의 기능은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사포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것이 입안에 잔존하면 오히려 치태를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치약 미관상 미세 플라스틱을 사용한다는 주장도 있다. 신승철 단국대 치과대학 교수(대한예방치과학회 부회장)는 “미세 플라스틱은 소비자에게 치약의 기능을 선전하기 위한 도구일 뿐, 치태 제거 기능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독성물질 흡착, 인간 밥상에 올라
다만 미세 플라스틱과 치주염 사이 명확한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손명호 아너스치과의원 대표원장은 “미세 플라스틱이 잇몸질환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치약 속 과립이 치주염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신승철 교수도 “미세 플라스틱이 치주염을 유발하거나 악화한다는 연구 결과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세 플라스틱이 초래하는 환경 문제도 위협적이다. 환경 전문가들은 “미세 플라스틱 배출을 이대로 방치하면 해양 생태계 오염이 심각해져 인류의 먹거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수구를 통해 해수로 흘러간 미세 플라스틱은 여러 독성물질을 흡착하고, 이것을 해양생물이 먹는다. 해양생물의 몸에 흡수된 플라스틱은 배설되지 않은 채 몸에 축적되고, 이것이 인간 밥상에 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첼시 로크만Chelsea Rochman) 미국 UC데이비스대 교수 연구팀은 “미국에서는 매일 최소 8조 개 이상의 미세 플라스틱이 수생동물 서식지인 강이나 바다로 유입되고 있다. 8조 개는 테니스 코트 300개를 덮을 수 있는 거대한 양”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바닷속 새우와 동물성 플랑크톤이 미세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하고 섭취하는 것을 발견했다. 미세 플라스틱은 물속에서 각종 오염물질을 흡수하기 때문에 독성 있는 미세 플라스틱을 먹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미세 플라스틱의 크기가 작을수록 이 같은 악영향은 더욱 심각해진다. 홍상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박사는 “작아진 미세 플라스틱은 큰 플라스틱에 비해 바닷물 내 유기 오염물질을 많이 흡착한다. 또한 플라스틱 입자가 작아지면 이들을 섭취하는 해양생물종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간 밥상에 오른 해양생물이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지는 아직 연구 중이다. 홍 박사는 “미세 플라스틱이 해양을 오염시키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인체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는 과학적으로 더 검증돼야 한다. 이슈 자체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연구 실적이 미미하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는 미세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는 방침이 논의되고 있다. 2015년 유엔환경계획(UNEP)은 각국 정부에게 미세 플라스틱 규제 방안을 권고했다. 2015년 7월 미국 일리노이 주는 2017년 7월까지 미세 플라스틱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했고 유니레버, 러쉬, 로레알, 더바디샵, 피앤지 등 화장품 대기업들이 미세 플라스틱의 단계적 사용 억제를 선언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먼저 제품 속 미세 플라스틱의 함유 여부를 개인이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치약의 경우 제품 포장을 뜯기 전에는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치약은 의약외품이어서 전 성분 표기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치약 속 작은 과립이 모두 미세 플라스틱은 아니며, 인체에 무해하고 분해되는 것으로 알려진 ‘제올라이트’라는 물질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소비자 처지에서는 치약 제조사에 직접 문의해야 제품 속 미세 플라스틱 포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실정이다.
스크럽 제품은 주로 화장품으로 분류되므로 전 성분이 표기된다. 화장품에 사용하는 미세 플라스틱은 대부분 폴리에틸렌을 원료로 한다. 하지만 전 성분에 폴리에틸렌이 표기됐다고 꼭 미세 플라스틱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폴리에틸렌은 점도를 조절하는 등 여러 기능이 있기 때문에 폴리에틸렌 성분 함유와 미세 플라스틱의 존재 여부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미세 플라스틱 중에는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한 초미세 입자도 있다. 미세 플라스틱의 유무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기에 소비자의 불안은 커질 뿐이다.
식약처, 환경부 “별 계획 없다”
따라서 국내에서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감시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2015년 여성환경연대가 국내 각질제거제 등 9000여 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 440여 개 제품에 폴리에틸렌, 나일론 등 미세 플라스틱 원료가 들어 있었다. 여성환경연대 관계자는 “각 기업에게 해당 제품의 미세 플라스틱 포함 여부를 확인하고, 이것의 사용 규제를 호소하는 공문을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보낼 것”이라고 전했다. 환경단체의 움직임에 따라 화장품 기업들도 미세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 중이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미세 플라스틱 제품을 단계적으로 줄여 2015년 10월 완전히 생산을 중단했다”고 말했고,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2014년 상반기부터 미세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일부 치약 제품에 들어가는 과립은 분해 가능 물질인 제올라이트”라고 전했다.
미세 플라스틱 논란에도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태도는 미온적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미세 플라스틱 사용 규제를 검토해볼 수 있겠으나 아직 명확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인체 유해성이 완벽히 검증되지 않았고, 사람의 먹거리보다 환경적 이슈가 더 크기 때문에 환경부와 협조해 규제 방안을 추진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제적으로 사용 금지가 추진된다고 해서 우리나라도 그 흐름을 무조건 따라갈 수는 없다. 사용 금지를 발표한 직후 미세 플라스틱 분해 기술이 나온다든지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물질의 사용 금지는 무역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환경부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규제 방안도 설립해놓지 않았다. 환경부 관계자는 “2011년에 2020년 완료를 목표로 환경보건종합계획을 세웠고, 이 계획 안에 미세 플라스틱의 사용 억제 조항이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뚜렷한 목표는 없으며, 현재 진행되는 사항도 없다”고만 말했다. 홍상희 박사는 “미세 플라스틱의 영향은 아직 밝힐 것이 많다. 하지만 일부 연구소나 시민단체 중심으로만 논의되는 실정”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미세 플라스틱을 연구하고 사용을 규제하는 활동이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