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은 기승전유승민이라고 할 만큼 유승민 의원의 공천 여부가 초미 관심사였다. 그러나 총선 후보 등록 직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주도한 ‘옥새파동’ 결과로 대구 동구을이 ‘무공천’ 지역으로 결정되면서 ‘가장 핫한 선거구’가 하루아침에 ‘김빠진 선거구’가 되고 말았다. 동구을에는 유 후보 외에도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 이승천 후보가 마감 1시간 전 후보 등록을 함으로써 유 후보의 ‘무투표 당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인지도 격차가 너무 커 치열한 경쟁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이제 대구지역 총선의 관심사는 유 후보의 당선 여부보다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대구 동구갑 류성걸 후보와 북구갑 권은희 후보 등 친유승민 후보들의 생환 여부로 초점이 옮아갔다. 또한 대구에는 여성우선추천지역으로 선정되는 바람에 낙천한 뒤 무소속으로 나선 수성을 주호영 후보와 이른바 진짜 친박근혜(진박)계 추경호 후보에게 밀려 무소속으로 달성에 출마한 구성재 후보, 그리고 더민주당에서 낙천한 뒤 무소속으로 북구을에 출마한 홍의락 후보 등도 있다.
대구지역 총선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수성갑 선거 결과다. 2012년 총선과 2014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총선까지 대구에서만 세 번째 도전에 나서는 김부겸 후보가 야당후보로 대구에서 생환하느냐에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와 더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맞붙는 수성갑 선거는 그 결과에 따라 2017년 차기 대통령선거(대선) 지형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전국적으로 주목도가 높다. 김문수 후보가 당선하면 새누리당 대선후보군에 김 후보가 포함될 개연성이 높고, 더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야당 불모지인 대구에서 경쟁력이 입증되면 유력한 야권 대선후보로 발돋움할 수 있기 때문이다. 3월 22일부터 24일까지 KBS와 연합뉴스가 여론조사 전문업체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대구 수성갑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부겸 후보가 46.3%를 기록, 36.9%에 그친 김문수 후보를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수성갑 거주 유권자 500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새누리당의 아성인 대구에 부는 무소속 유승민 돌풍과 더민주당 김부겸 우세의 실체를 확인하고자 총선 후보 등록 직후인 3월 28일 1박2일 일정으로 대구를 찾았다.
“자존심에 상처 입었다”
동대구역을 빠져나와 길 건너 왼쪽 10시 방향을 바라보면 새누리당에서 낙천한 뒤 대구 동구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류성걸 후보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7번이란 기호 숫자만 빼면 새누리당 후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선거 플래카드였다. 이곳에서는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대표적 진박인 정종섭 후보가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뛰고 있다.
3월 28일 저녁 동대구역 앞 류성걸 후보 사무실 인근에서 만난 대학생 박모 씨는 “경쟁(경선)도 몬하게 하면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꺼”라며 “(새누리당) 공천 때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다음 날 만난 수성구 주민 이모 씨도 “‘누구든 (새누리당) 공천만 주면 찍어주겠지’ 하고 만만하게 보고 그리 공천한 것 아니냐”며 “(공천과정이)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했다. 대구시민들 사이에 무원칙한 새누리당 공천에 대한 반발감이 적잖이 퍼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3월 29일 오후 수성못역 앞에서 만난 70대 후반 김모 씨도 “새누리 참 못됐다”고 일갈했다. 김씨는 후보 등록 직전까지 공천 여부를 결정하지 않아 대구 동구을 유승민 후보가 탈당하게 만든 것과 수성을을 여성우선공천지역으로 분류해 당초 중·남구 출마를 준비하던 이인선 전 경북 경제부지사에게 공천장을 준 것을 특히 못마땅해했다.
“아(유승민 후보)를 말려 죽일라카나, 끝까지 공천을 안 주고. 보소. 어데 저서(저기서) 나오겠다는 사람을 하루아침에 여다 쎄리 꼽아뿌는 경우가 대명천지에 어데 있답디꺼. 참말로 못됐다카이.”
선거 초반 수성을 여론은 낙천한 뒤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주호영 후보에게 동정론이 이는 듯했다. 대구지역 중견 언론인 K씨는 “석연찮은 이유로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주호영 후보에게 인근 상가회 등에서 지지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고 귀띔했다. 주호영 후보 측은 3월 18일 대구·경북을 사랑하는 전·현직 총학생회장단이, 23일에는 수성4가 원주민지역주택조합원들이, 25일에는 수성못상가연합회 회원들이 주 후보 지지 선언을 잇달아 했다고 밝혔다.
무소속인 주 후보의 우세는 총선 관련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조선일보’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업체 밀워드브라운 미디어리서치가 총선 후보 등록 직후인 3월 2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무소속 주 후보가 40% 지지율로 새누리당 이인선 후보(22.9%)를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수성을 유권자 519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3%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참조).
주 후보의 우세를 따라잡으려는 이인선 후보 측의 반격도 시작됐다. 이 후보 측은 3월 29일 전 구청장과 전·현직 구의원, 시의원들의 지지 선언을 이끌어내며 본격적인 지지세 확산에 나섰다. 지지 선언에 참여한 이들은 “새누리당 당원으로서 대구시민의 뜻을 받들고 당의 방침과 결정에 따라 수성을 이인선 후보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수성을 선거는 주 후보에 대한 동정 여론이 선거일까지 지속되느냐와 짧은 선거운동 기간 이 후보가 얼마나 인지도를 끌어올려 지지율로 연결시키느냐에 따라 당락이 갈릴 것으로 보였다.
기자가 대구를 찾은 3월 28일과 29일 대구 정가의 주요 뉴스 가운데 하나는 새누리당 대구시당이 탈당 뒤 출마한 후보들에게 공문을 보내 ‘대통령 존영 반환’을 요구했다는 ‘대통령 사진 반환 논란’이었다. 총선 공천 파동이 채 가시기도 전 이번엔 ‘존영 반환’ 논란이 불거진 것.
수성구 황금동에 산다는 40대 중반 남성은 “그기 뭐꼬. 추잡다”라며 “이번에는 새누리당을 안 찍겠다”고 말했다. 범어역 주변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30대 초반 남성도 “매번 찍어주니까 맘대로 해부는 거 아입니꺼”라며 “이번에는 다를 끼라요”라고 했다.
“사진 갖고 그기 뭐꼬, 추잡다”
3월 29일 오후 3시. 무소속으로 대구 동구을에 출마한 유승민 후보가 후보 등록 이후 처음으로 방촌시장을 찾았다. 상인들은 빨간색 야구점퍼 대신 흰색 점퍼를 입은 그를 큰 박수로 맞았다. 나이가 지긋한 한 여성은 유 후보의 손을 잡고 “(공천과정을) 지켜보는 내가 다 눈물이 날라카더라”며 “용기 잃지 말고 힘내거레이”라 응원했고, 한 상인은 ‘애쓴다’며 피로해소제를 건넸다. 장을 보러 나온 시민과 상인들은 유 후보와 악수한 뒤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100m도 되지 않는 시장통 이곳저곳을 들르며 인사를 나누는 데 족히 2시간은 걸렸다. 유 후보에게 명함을 건네받은 한 70대 남성은 “사람을 키워야지 어째 죽일라카나”라며 “(유승민 후보에게) 표가 많이 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대구 정가에서는 ‘유승민 효과’가 대구를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관통하는 금호강을 따라 인접 선거구에까지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이란 예상이 많다. 대구 동쪽 동구을에서 발원한 유승민 효과가 동구갑 무소속 류성걸 후보와 북구갑 무소속 권은희 후보는 물론,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대구 달성의 무소속 구성재 후보에게까지 이른바 ‘금호강 벨트’를 따라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수성을 무소속 주호영 후보가 크게 선전하고 있고, 수성갑 더민주당 김부겸 후보의 상승세까지 이어져 대구 총선 판세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돌았다.
다만 공천 후유증이 큰 선거 초반 분위기가 투표일까지 보름 이상 계속될지는 장담키 어렵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대구 한 지역 언론인은 “새누리당 공천에 실망한 젊은 층은 투표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들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려는 반면, 현재는 침묵하는 고연령층이 투표일에 대거 투표장으로 나가 소리 없이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범어 네거리에서 만난 30대 후반 남성도 “새누리당에 실망한 젊은 층은 투표를 안 할라카고, 어르신들은 그래도 투표를 열심히 할라고 할낀데, 그라믄 어찌 되겠습니까. 다시 새누리가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40대 중반 택시기사 김모 씨도 “기분 같아서는 투표를 안 하는 것으로 언짢은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그라믄 내 뜻과 다른 결과가 나올 것 같다”며 “어찌해야 할지 아직 결정을 못 했다”고 말했다.
3월 29일 저녁. 동대구역 주변 한 음식점에서 직장인으로 보이는 40대 4명이 이른 저녁을 먹고 있었다. 왁자지껄 떠드는 가운데 “이번 총선에서 누구를 찍을 거냐”가 화제에 올랐다. 한 사람이 “대구에서 유승민과 김부겸이 당선하면 두 사람 다 대선주자가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함께 있던 사람들도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 모습을 옆 테이블에 앉아 지켜보던 70대쯤으로 보이는 어르신 3명이 조용한 목소리로 한탄했다. “얼라들이 철이 없다카이. 대통령을 도와야제. 무신 소리고.”
유승민 효과는 대구 동구을을 넘어 대구 전체 선거판에 얼마만한 영향을 끼칠까. 수성갑에 나선 김부겸 후보의 상승세는 투표일까지 지속될 것인가. 대구에 내려오면서 유권자를 직접 만나 확인하려던 두 가지 의문은 “얼라들이 철이 없다카이”라는 나이 지긋한 대구 어르신들의 외마디에 더 혼란스러워졌다.
대구에 일고 있는 변화가 현실로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4월 13일 대구 12개 선거구의 연령별 투표율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실제 선거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네가 옳네, 내가 옳네’ 큰 소리로 떠드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아니다. 또한 ‘새누리당 공천이 이러이러하게 잘못됐다’는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수백, 수천 명의 페이스북 이용자도 아니다. 실제 선거의 당락을 가르는 힘은 4월 13일 묵묵히 신분증을 들고 투표장에 나가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는 이들의 몫이다. 대구 표심은 겉으로 드러난 왁자지껄한 변화의 목소리와 침묵하는 다수의 심중에 아직 간극이 큰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