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람이다. 정치인에게 ‘사람’은 시작이자 끝이다. 원맨쇼의 한계는 명확하다. 솔로로 대중과 ‘전면전’을 치를 수 있는 분야는 가수 등 일부 직업뿐이다. 원맨쇼의 한계가 그 어떤 분야보다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정치다. 어떤 인물이 유성처럼 깜짝 등장하기도 하지만, 반짝 빛났다 영원히 사라지기도 한다. 그 옛날 박찬종이 그랬고, 21세기 들어 문국현이 그랬다. 가장 가까운 과거를 되짚어보면 2012년 안철수가 그랬다. 내년엔 반기문이 또 그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신문 몇 장만 들춰봐도 답은 명확하다. 정치에서 처음과 끝은 결국 사람이다. 다른 말로 ‘세력’이다. 그래서 중요하다. 내 사람이 무엇이 되느냐, 내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잠룡들의 표정을 살피는 이유다.
더민주당의 공천 결과를 두고 여러 갈래 분석이 있다. 정리해보면 친노(친노무현)계로 분류되는 사람(신진인사+현역의원)들은 적잖은 타격을 입었지만, 좀 더 세분화된 ‘친문계’ 사람들은 당내 경선 등 공천과정에서 승전보를 올렸다.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배재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1월 중순부터 정치활동을 거의 중단하다시피 했던 문 전 대표는 자신이 비례대표로 발탁했던 배재정 캠프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정치 재개 신호음이 3월 19일(배 예비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부터 본격적으로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지역이 더욱 뜨거운 이유는 4년 전 대선후보인 문재인과 맞붙었던 새누리당 손수조(당시 27세) 후보와 배재정이 맞붙기 때문이다. 박근혜와 문재인의 대리전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배재정은 친문계 인사 명단의 시작에 불과하다. 최측근으로 알려진 ‘3철’(양정철, 전해철, 이호철) 가운데 한 명인 전해철 의원과 홍영표 의원(2012년 대선캠프 종합상황실장), 문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현미 의원은 단수공천을 받았다. 김경협, 서영교, 윤후덕(공천에서 탈락했다 구제), 이학영, 진선미 등 상당수 현역의원이 (단수)공천을 받았다.
원외인사로는 김경수 경남도당위원장(경남 김해을)을 비롯해 최인호(부산 사하갑), 백원우(전 의원, 경기 시흥갑), 강병원(서울 은평을), 황희(서울 양천갑), 정태호(서울 관악을) 후보 등이 눈에 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이던 강병원은 새누리당 5선 의원이자 친이(친이명박)계 좌장이라 부르는 이재오 의원에게 도전장을 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그전에 당내 경선에서 임종석 전 의원을 꺾어 화제가 됐다.
문재인이 영입한 외부인사 가운데 상당수가 본선에 나가거나 비례대표 당선 안정권 내 있다. 김현권 경북 의성한우협회장(6번), 문미옥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기획정책실장(7번), 이철희 총선기획단 전략기획본부장(8번), 제윤경 주빌리은행 대표이사(9번) 등이 거론된다. 결국 이들이 얼마나 ‘배지’를 가져올지는, 내년 대선까지 문재인의 여정이 가시밭길일지 꽃길일지 알아볼 수 있는 1차 관문이 될 것이다.
서울 성북을에 출마 예정인 기동민은 사실 고(故) 김근태 의원의 남자다. 김대중 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노무현 정부 당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그러다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비서실장을 거쳐 정무부시장으로 발탁되면서 박원순의 남자로 기억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성북을에 김효재 전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을 출전시킨 상태다.
천준호는 오영식 의원이 공천 배제(컷오프)된 서울 강북갑에 출마할 예정이다. 경희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박원순 시장 곁을 지켰다. 본선행이 확정되기까지 천준호는 사실 ‘죽었다 살아나는’ 과정을 겪었다. 유인태 의원이 공천 배제된 서울 도봉을 출마를 희망했지만 이 지역은 문재인이 영입한 오기형 변호사가 전략공천됐다. 하지만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결국 강북갑에서 김기식 의원과 경선을 치른 뒤 본선행 티켓을 쥐게 된 것. 새누리당에서는 이곳에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양석 전 의원을 공천했다.
하지만 다른 박원순의 남자들은 상당수 쓴맛을 봐야 했다. 박 시장의 비서실장 출신인 권오중(서울 서대문을) 예비후보는 경선에서 탈락했다. 서울 노원갑에서 경선을 준비 중이던 오성규 전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은 ‘경선 포기’를 선언했고, 박원순 시장 법률고문을 맡았던 민병덕(경기 안양 동안갑) 변호사도 경선에서 탈락했다. 지난해 가을까지 정무부시장을 지낸 임종석이 경선에서 탈락함으로써 박원순 사람들의 성적표는 낙제점을 면키 어렵게 됐다.
물론 일각에서는 비례대표까지 포함하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평가한다. 박원순과 오랜 기간 시민운동을 함께 해온 권미혁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우여곡절 끝에 비례대표 11번을 얻었다. 더민주당은 비례대표 15번 전후를 ‘당선 안정권’으로 보고 있다. 당선권과는 다소 멀지만 참여연대 출신으로 서울시복지재단 비상임이사 등을 역임한 이태수 꽃동네대 교수는 18번에 자리 잡았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그동안 당내 ‘내 사람’이 거의 없었던 현실을 감안하면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인 것처럼 보인다.
그 많던 사람이 다 어디로 갔을까. 2012년 안철수 대선후보 캠프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늘 던지는 질문이다. 지난해 12월 더민주당과 결별한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는 한국 정치사에서 명멸을 반복해온 제3정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1월 둘째 주(11~15일) 국민의당의 전국 지지율은 20.7%였다. 특히 호남 지지율이 37.9%로 더민주당(20.9%)을 크게 앞서기도 했다. 같은 조사에서 새누리당은 36.1%, 더민주당은 22.5%를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리얼미터의 3월 4주 차 주중집계(21~23일)에서는 ‘유승민 공천 파동’을 겪던 새누리당이 39.6%, 김종인 대표가 칩거-복귀 소동을 벌이던 더민주당이 25.7%를 기록했다. 국민의당은 14.0% 지지율을 기록했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참조). 말 그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다. 안철수에게 더더욱 간절한 건 ‘사람’이다. 이번 비례대표 당선 안정권에 누구를 배치하느냐가 주목받는 이유다.
국민의당은 3월 23일 비례대표 명단 18명을 발표했다. 현재 당 지지율을 감안하면 당선 안정권은 6명 정도다. 신용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1번),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2번), 박주현 변호사·청와대 참여혁신수석(3번),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4번), 박선숙 전 환경부 차관(5번), 채이배 회계사(6번) 등이 앞자리에 배치됐다. 이태규 선거대책위원회 전략홍보본부장은 8번에 배정됐다. 이 가운데 박선숙, 이태규는 안철수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안철수가 2012년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인연이기도 하다.
이태규는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팀장으로 일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는 대통령실 연설기록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하지만 2012년 손을 잡은 건 대선후보 박근혜가 아니라 안철수였다. 그런데 최근 논란이 불거졌다. ‘공천관리위원은 비례대표를 할 수 없다’는 당규에도 그는 공천관리위원을 갑자기 사퇴한 뒤 비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은 당규를 외면할 수 없었는지 3월 23일 최고위원회에서 해당 당규를 개정했다. 특정인을 위한 개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채이배 역시 2012년 안철수의 진심캠프에서 활동했다. 현재 국민의당 공정경제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이다. 2월 김종인 대표가 기업가 출신인 안 대표를 향해 “경제를 모른다”고 지적하자, “김 대표는 ‘공정성장론’의 실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맞받아친 인물이기도 하다. 회계사 출신이자 재벌개혁 전문가로, 향후 안 대표의 공정성장론을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이상돈 교수는 이번엔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안 대표가 영입한 인사 가운데 대표적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결국 당선 안정권 6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안철수의 사람으로 채워진 상태다. 나눠줄 떡(자리)이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비난은 감수하고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일까.
이번 새누리당의 공천은 유승민으로부터 시작해 유승민으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찍어내기를 당한 유 의원은 역설적으로 대권주자로 우뚝 섰다. 이런 걸 두고 제 발등 찍기라고 하던가.
여권 유력 대선주자인 김무성 대표는 유승민과 지난해 당대표-원내대표로 호흡을 맞췄지만 청와대의 ‘활극’ 앞에서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최근엔 ‘김무성 30시간 법칙’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2014년 10월 개헌 필요성을 역설한 ‘상하이 발언’ 하루 만에 대통령에게 사과한 것을 필두로 유승민 축출, 살생부 파문 등 지뢰가 터질 때마다 그곳(청와대)을 향해 고개를 숙이거나 물러서는 일이 반복되자 ‘무대’(김무성 대장)란 단어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30시간 법칙’이 메운 것이다. 이번 유 의원 공천 지연 작전에서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3월 23일 현재 ‘중앙일보’가 새누리당 당직자들에게 교차 감수한 결과 이번 공천 성적표는 ‘친박근혜계 120~130명’ ‘비박근혜계 90~100명’ ‘친이명박계+친유승민계 10명 이내’(지역구 253곳 가운데 250곳)로 조사됐다. 이 분류가 맞는다면 김무성계의 선전이 눈에 띄지만, 현재까지 절반 이상의 공천은 친박근혜계 몫이다. 결국 4월 총선 결과에 따라 다시 한 번 천당과 지옥을 오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있다! 잠룡들의 공천 성적표▼박근혜가 키운 유승민, 소리 없이 강한 안희정▼
김무성, 문재인만큼은 아니지만 여야 전반에 잠재적 대권주자가 여러 명 있다. 대표적 인물로 여권에선 유승민 의원, 야권에선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꼽을 수 있다. 친박(친박근혜) 인사들의 ‘탄압’으로 불가피하게 ‘야반도주’를 선택해야 했던 유승민 의원. 그는 3월 23일밤 탈당 시한을 1시간가량 앞두고 당적을 버렸다. 공천 지연 작전에 일보 후퇴한 것이다. 유 의원의 동지들은 일찌감치 유탄을 맞았다. 친이(친이명박)계이자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조해진(유승민 원내대표 당시 원내 수석부대표) 의원이 가장 먼저 탈당을 선언했고(3월 18일), 이어 권은희 의원(20일), 류성걸 의원(23일)이 뒤를 이었다. 조해진은 탈당 이후 ‘마구잡이식, 후안무치 밀실공천, 보복공천’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구사하며 친박(다른 말로 청와대)을 연일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본격적으로 무소속 연대를 논의할 예정이다. 다만 이종훈, 김희국 의원은 공천 배제됐지만 당 잔류를 선언했다. 유승민은 “그분들과 그동안 이야기는 해왔다”며 “본인 선택을 존중한다”고 했다.
“안희정계는 100% 공천을 받았다.” 최근 만난 서울시 한 인사의 촌평이다. 일부 친노(친노무현) 의원의 낙천 비명 속에서 조용히 본선 티켓을 쥔 사람들이 있었으니 대표적으로 박수현 의원을 포함해 김종민, 조승래, 정재호, 나소열, 이후삼 예비후보 등이 거론된다.
박수현은 2010년 안희정 충남도지사후보 캠프에서 총괄선거대책위원장 등을 맡았고 자타공인 ‘안희정맨’이다. 김종민은 ‘안희정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출마선언문에 밝힐 정도로 가까운 친구다. 그는 지난 총선 당시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에게 3%p 차로 석패한 바 있어 이번 결과가 주목된다. 조승래는 도지사 비서실장, 정재호는 안희정 후보 캠프 총괄특보 등을 지냈다. 일명 안희정 사단의 최종 성적표, 정작 가장 초조한 사람은 안희정 자신일지 모른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신문 몇 장만 들춰봐도 답은 명확하다. 정치에서 처음과 끝은 결국 사람이다. 다른 말로 ‘세력’이다. 그래서 중요하다. 내 사람이 무엇이 되느냐, 내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잠룡들의 표정을 살피는 이유다.
문재인은 표정 관리 중?
사라지니 더 보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문재인이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 ‘전 대표’다. 총선의 모든 권한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라는 임시사장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경남 양산에서 칩거해오던 바로 그 사람이다. 문재인은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먼저 야권 차기 대통령선거(대선) 후보 선두 자리를 몇 달째 고수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더민주당 공천에서 ‘친문(친문재인)계’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생존율 때문이다.
더민주당의 공천 결과를 두고 여러 갈래 분석이 있다. 정리해보면 친노(친노무현)계로 분류되는 사람(신진인사+현역의원)들은 적잖은 타격을 입었지만, 좀 더 세분화된 ‘친문계’ 사람들은 당내 경선 등 공천과정에서 승전보를 올렸다.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배재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1월 중순부터 정치활동을 거의 중단하다시피 했던 문 전 대표는 자신이 비례대표로 발탁했던 배재정 캠프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정치 재개 신호음이 3월 19일(배 예비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부터 본격적으로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지역이 더욱 뜨거운 이유는 4년 전 대선후보인 문재인과 맞붙었던 새누리당 손수조(당시 27세) 후보와 배재정이 맞붙기 때문이다. 박근혜와 문재인의 대리전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배재정은 친문계 인사 명단의 시작에 불과하다. 최측근으로 알려진 ‘3철’(양정철, 전해철, 이호철) 가운데 한 명인 전해철 의원과 홍영표 의원(2012년 대선캠프 종합상황실장), 문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현미 의원은 단수공천을 받았다. 김경협, 서영교, 윤후덕(공천에서 탈락했다 구제), 이학영, 진선미 등 상당수 현역의원이 (단수)공천을 받았다.
원외인사로는 김경수 경남도당위원장(경남 김해을)을 비롯해 최인호(부산 사하갑), 백원우(전 의원, 경기 시흥갑), 강병원(서울 은평을), 황희(서울 양천갑), 정태호(서울 관악을) 후보 등이 눈에 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이던 강병원은 새누리당 5선 의원이자 친이(친이명박)계 좌장이라 부르는 이재오 의원에게 도전장을 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그전에 당내 경선에서 임종석 전 의원을 꺾어 화제가 됐다.
문재인이 영입한 외부인사 가운데 상당수가 본선에 나가거나 비례대표 당선 안정권 내 있다. 김현권 경북 의성한우협회장(6번), 문미옥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기획정책실장(7번), 이철희 총선기획단 전략기획본부장(8번), 제윤경 주빌리은행 대표이사(9번) 등이 거론된다. 결국 이들이 얼마나 ‘배지’를 가져올지는, 내년 대선까지 문재인의 여정이 가시밭길일지 꽃길일지 알아볼 수 있는 1차 관문이 될 것이다.
울고 싶은 남자, 박원순
서울시에 둥지를 틀고 있는 야권 잠룡 박원순 시장에게 필요한 건 ‘여의도에서 뛰어줄 내 사람’이다. 하지만 20대 총선 더민주당 경선에서 그가 받은 결과는 초라하다. 최소한 공천이 마무리된 현 시점까지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본선 진출이 확정된 박원순의 사람은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천준호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뿐이다.
서울 성북을에 출마 예정인 기동민은 사실 고(故) 김근태 의원의 남자다. 김대중 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노무현 정부 당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그러다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비서실장을 거쳐 정무부시장으로 발탁되면서 박원순의 남자로 기억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성북을에 김효재 전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을 출전시킨 상태다.
천준호는 오영식 의원이 공천 배제(컷오프)된 서울 강북갑에 출마할 예정이다. 경희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박원순 시장 곁을 지켰다. 본선행이 확정되기까지 천준호는 사실 ‘죽었다 살아나는’ 과정을 겪었다. 유인태 의원이 공천 배제된 서울 도봉을 출마를 희망했지만 이 지역은 문재인이 영입한 오기형 변호사가 전략공천됐다. 하지만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결국 강북갑에서 김기식 의원과 경선을 치른 뒤 본선행 티켓을 쥐게 된 것. 새누리당에서는 이곳에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양석 전 의원을 공천했다.
하지만 다른 박원순의 남자들은 상당수 쓴맛을 봐야 했다. 박 시장의 비서실장 출신인 권오중(서울 서대문을) 예비후보는 경선에서 탈락했다. 서울 노원갑에서 경선을 준비 중이던 오성규 전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은 ‘경선 포기’를 선언했고, 박원순 시장 법률고문을 맡았던 민병덕(경기 안양 동안갑) 변호사도 경선에서 탈락했다. 지난해 가을까지 정무부시장을 지낸 임종석이 경선에서 탈락함으로써 박원순 사람들의 성적표는 낙제점을 면키 어렵게 됐다.
물론 일각에서는 비례대표까지 포함하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평가한다. 박원순과 오랜 기간 시민운동을 함께 해온 권미혁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우여곡절 끝에 비례대표 11번을 얻었다. 더민주당은 비례대표 15번 전후를 ‘당선 안정권’으로 보고 있다. 당선권과는 다소 멀지만 참여연대 출신으로 서울시복지재단 비상임이사 등을 역임한 이태수 꽃동네대 교수는 18번에 자리 잡았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그동안 당내 ‘내 사람’이 거의 없었던 현실을 감안하면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인 것처럼 보인다.
그 많던 사람이 다 어디로 갔을까. 2012년 안철수 대선후보 캠프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늘 던지는 질문이다. 지난해 12월 더민주당과 결별한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는 한국 정치사에서 명멸을 반복해온 제3정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1월 둘째 주(11~15일) 국민의당의 전국 지지율은 20.7%였다. 특히 호남 지지율이 37.9%로 더민주당(20.9%)을 크게 앞서기도 했다. 같은 조사에서 새누리당은 36.1%, 더민주당은 22.5%를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리얼미터의 3월 4주 차 주중집계(21~23일)에서는 ‘유승민 공천 파동’을 겪던 새누리당이 39.6%, 김종인 대표가 칩거-복귀 소동을 벌이던 더민주당이 25.7%를 기록했다. 국민의당은 14.0% 지지율을 기록했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참조). 말 그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다. 안철수에게 더더욱 간절한 건 ‘사람’이다. 이번 비례대표 당선 안정권에 누구를 배치하느냐가 주목받는 이유다.
국민의당은 3월 23일 비례대표 명단 18명을 발표했다. 현재 당 지지율을 감안하면 당선 안정권은 6명 정도다. 신용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1번),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2번), 박주현 변호사·청와대 참여혁신수석(3번),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4번), 박선숙 전 환경부 차관(5번), 채이배 회계사(6번) 등이 앞자리에 배치됐다. 이태규 선거대책위원회 전략홍보본부장은 8번에 배정됐다. 이 가운데 박선숙, 이태규는 안철수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안철수가 2012년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인연이기도 하다.
당선 안정권에 배치된 安의 사람들
박선숙은 김대중 대통령 재임 당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으로 발탁돼 ‘최초 청와대 여성 대변인’이라는 수식어를 갖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엔 환경부 차관을 지냈고, 18대 국회에선 비례대표 의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2012년 9월 민주당을 탈당해 당시 안철수 대선후보 캠프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안철수와 손을 잡는다.
이태규는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팀장으로 일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는 대통령실 연설기록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하지만 2012년 손을 잡은 건 대선후보 박근혜가 아니라 안철수였다. 그런데 최근 논란이 불거졌다. ‘공천관리위원은 비례대표를 할 수 없다’는 당규에도 그는 공천관리위원을 갑자기 사퇴한 뒤 비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은 당규를 외면할 수 없었는지 3월 23일 최고위원회에서 해당 당규를 개정했다. 특정인을 위한 개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채이배 역시 2012년 안철수의 진심캠프에서 활동했다. 현재 국민의당 공정경제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이다. 2월 김종인 대표가 기업가 출신인 안 대표를 향해 “경제를 모른다”고 지적하자, “김 대표는 ‘공정성장론’의 실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맞받아친 인물이기도 하다. 회계사 출신이자 재벌개혁 전문가로, 향후 안 대표의 공정성장론을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이상돈 교수는 이번엔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안 대표가 영입한 인사 가운데 대표적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결국 당선 안정권 6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안철수의 사람으로 채워진 상태다. 나눠줄 떡(자리)이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비난은 감수하고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일까.
이번 새누리당의 공천은 유승민으로부터 시작해 유승민으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찍어내기를 당한 유 의원은 역설적으로 대권주자로 우뚝 섰다. 이런 걸 두고 제 발등 찍기라고 하던가.
여권 유력 대선주자인 김무성 대표는 유승민과 지난해 당대표-원내대표로 호흡을 맞췄지만 청와대의 ‘활극’ 앞에서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최근엔 ‘김무성 30시간 법칙’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2014년 10월 개헌 필요성을 역설한 ‘상하이 발언’ 하루 만에 대통령에게 사과한 것을 필두로 유승민 축출, 살생부 파문 등 지뢰가 터질 때마다 그곳(청와대)을 향해 고개를 숙이거나 물러서는 일이 반복되자 ‘무대’(김무성 대장)란 단어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30시간 법칙’이 메운 것이다. 이번 유 의원 공천 지연 작전에서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개 숙인 ‘무대’, 속으로 웃다
하지만 김무성의 남자들은 건재하다. 속으로 웃는 이유다. 대표적으로 단수추천을 받은 김성태(서울 강서을), 김학용 대표 비서실장(경기 안성)이 눈에 띈다. ‘좌성태, 우학용’으로 불리는 이들은 말 그대로 김무성의 최측근이다. 권성동(강원 강릉)도 경선 없이 본선에 직행하게 됐다. 박민식(부산 북·강서갑), 강석호(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황영철(강원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 의원과 김종훈(서울 강남을) 초선의원 등도 경선에서 승리해 공천을 확정했다. 김 대표가 ‘험지출마’를 권유하며 당 최고위원으로까지 대우해준 안대희(서울 마포갑) 전 대법관도 예상대로 단수추천을 받았다. 김무성 남자들의 생환으로 ‘스타일은 구겼지만 실리는 챙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3월 23일 현재 ‘중앙일보’가 새누리당 당직자들에게 교차 감수한 결과 이번 공천 성적표는 ‘친박근혜계 120~130명’ ‘비박근혜계 90~100명’ ‘친이명박계+친유승민계 10명 이내’(지역구 253곳 가운데 250곳)로 조사됐다. 이 분류가 맞는다면 김무성계의 선전이 눈에 띄지만, 현재까지 절반 이상의 공천은 친박근혜계 몫이다. 결국 4월 총선 결과에 따라 다시 한 번 천당과 지옥을 오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있다! 잠룡들의 공천 성적표▼박근혜가 키운 유승민, 소리 없이 강한 안희정▼
김무성, 문재인만큼은 아니지만 여야 전반에 잠재적 대권주자가 여러 명 있다. 대표적 인물로 여권에선 유승민 의원, 야권에선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꼽을 수 있다. 친박(친박근혜) 인사들의 ‘탄압’으로 불가피하게 ‘야반도주’를 선택해야 했던 유승민 의원. 그는 3월 23일밤 탈당 시한을 1시간가량 앞두고 당적을 버렸다. 공천 지연 작전에 일보 후퇴한 것이다. 유 의원의 동지들은 일찌감치 유탄을 맞았다. 친이(친이명박)계이자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조해진(유승민 원내대표 당시 원내 수석부대표) 의원이 가장 먼저 탈당을 선언했고(3월 18일), 이어 권은희 의원(20일), 류성걸 의원(23일)이 뒤를 이었다. 조해진은 탈당 이후 ‘마구잡이식, 후안무치 밀실공천, 보복공천’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구사하며 친박(다른 말로 청와대)을 연일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본격적으로 무소속 연대를 논의할 예정이다. 다만 이종훈, 김희국 의원은 공천 배제됐지만 당 잔류를 선언했다. 유승민은 “그분들과 그동안 이야기는 해왔다”며 “본인 선택을 존중한다”고 했다.
“안희정계는 100% 공천을 받았다.” 최근 만난 서울시 한 인사의 촌평이다. 일부 친노(친노무현) 의원의 낙천 비명 속에서 조용히 본선 티켓을 쥔 사람들이 있었으니 대표적으로 박수현 의원을 포함해 김종민, 조승래, 정재호, 나소열, 이후삼 예비후보 등이 거론된다.
박수현은 2010년 안희정 충남도지사후보 캠프에서 총괄선거대책위원장 등을 맡았고 자타공인 ‘안희정맨’이다. 김종민은 ‘안희정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출마선언문에 밝힐 정도로 가까운 친구다. 그는 지난 총선 당시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에게 3%p 차로 석패한 바 있어 이번 결과가 주목된다. 조승래는 도지사 비서실장, 정재호는 안희정 후보 캠프 총괄특보 등을 지냈다. 일명 안희정 사단의 최종 성적표, 정작 가장 초조한 사람은 안희정 자신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