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팡웨이(李方偉). 미국 연방수사국(FBI) 인터넷 홈페이지에 현상수배범으로 올라 있는 중국 기업인이다. 500만 달러(약 61억550만 원) 현상금이 걸린 그는 가명만 해도 ‘칼 리’ ‘서니 바이’ ‘데이비드 리’ ‘W. F. 리’ 등 10여 개나 되는 국제 무기밀매상이다. 미국 연방 검찰은 2014년 4월 그를 이란에 대한 대량살상무기(WMD) 제재 조치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1972년생인 그는 림트(LIMMT)라는 회사를 운영하며 이란 국방산업기구(DIO), 방산기업인 샤히드 헴마트 산업그룹(SHIG), 샤히드 바커리 산업그룹(SBIG) 등에 탄도미사일 제조와 우라늄 농축에 쓰이는 재료 등을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상금 500만 달러, 근거지는 다롄항
당시 미국 검찰은 그가 이란과 수백만 달러 상당의 거래를 했으며, 수년간 이란에 탄도미사일 부품을 제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제제를 피하고자 설립한 유령기업의 미국 내 거래 은행 계좌로부터 680만 달러를 압수했다는 것. 중국 동북부 항구도시 다롄(大連) 소재 무역회사인 림트는 미사일 제조와 우라늄 농축에 쓰이는 철봉 2만4500kg과 알루미늄 합금 1만5000kg 등을 판매했다.
림트사는 2004년과 2006년 미국 국무부 금수기업 블랙리스트에 올랐지만, 그동안 유령회사와 차명을 이용한 편법으로 미국 정부의 감시망을 피해 이란과 거래를 계속해왔다. 그가 유령회사들을 통해 이란과 진행한 거래만 165건 이상이며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거래액은 10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이미 2009년 이란에 미사일 부품을 판매했다는 혐의로 뉴욕 연방 검찰에 기소된 바 있다.
리팡웨이는 미국 사법 당국의 수사망을 피해 현재 중국에 체류 중이다. 미국 국무부는 중국 정부에 그의 신병을 넘겨줄 것을 요구했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거부해왔다. 미국은 중국과 ‘범인인도협정’을 맺고 있지 않아 그를 체포할 방법이 없다.
리는 다롄에 림트사뿐 아니라 특수강, 정밀 연마기 등 각종 탄도미사일 제조에 필요한 다양한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 12개를 만들어 운영해왔다. 그의 밀매 네트워크가 사실상 미사일 공장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미국 민간단체인 위스콘신 핵무기제어 프로젝트의 발레리 린시 연구원은 “리는 무기 공급자로서 이란 미사일 프로그램에 크게 기여했다”면서 “리는 광섬유 자이로스코프 같은 첨단 미사일 부품들을 직접 만들며 중개상에서 첨단부품 제조업자로 변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목할 사실은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한 그가 북한과도 은밀히 거래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 미국 의회 초당적 기구인 미·중 경제·안보 검토위원회는 연례보고서를 통해 중국 정부가 북한의 WMD 비확산에 협조하고 있지만 일부 중국 기업과 기업인이 북한에 WMD 확산 관련 물품들을 계속 팔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위원회는 중국 기업들이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물품(군사 및 민간용으로 모두 사용 가능한 물품)의 주요 공급처가 되고 있다면서 중국 기업들과 북한이 거래 중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북한이 2012년 4월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한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KN-08을 운반하는 데 사용한 차량은 중국 인민해방군 산하 기업인 후베이싼장항톈완산(湖北三江航天萬山) 특종차량 유한공사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이후 중국 정부는 이 차량을 북한에 목재 운반용으로 수출했다고 해명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월 29일 북한이 그동안 특수강, 정밀 연마기 등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물품을 중국 기업에 의존해왔다고 보도했다. 토머스 컨트리맨 미 국무부 차관보도 “북한과 이란은 핵무기·미사일 프로그램에 필요한 최첨단 장비 쇼핑이 필요할 때 중국을 찾는다”면서 “중국은 다른 나라와 다를 바 없이 이란, 북한과 교역해왔다”고 비판했다.
이렇듯 중국 기업들이 북한과 미사일 부품 및 장비 등을 거래했다면 리가 개입했을 공산이 크다. 리의 미사일 부품 공장들은 북한과 인접한 국경 도시이자 항구인 다롄에 있기 때문에 비밀리에 수송하는 데도 편리했을 것으로 보인다. WSJ는 전 미국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리가 파키스탄의 핵무기 암거래상인 압둘 카디르 칸 박사와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칸 박사는 1990년대 후반 핵무기 설계도와 관련 장비를 이란, 북한, 리비아 등에 몰래 판매했다.
도피 중인 범인, 묵인하는 중국 정부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2010년 공개한 미국 정부의 비밀 외교전문에 따르면 북한은 중국의 한 기업으로부터 미사일 제작에 필요한 특수강을 구매하려 한 사실도 있다. 북한이 구매하려던 특수강은 노동미사일 제작에 사용하는 것이다. 당시 미 국무부는 베이징 주재 자국 대사관에 미사일 확산에 대한 우려를 중국 정부 측에 전달하고 조사 활동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라고 지시했다.국무부는 또 중국 기업들이 감시 대상 물자를 북한의 무기 관련 기업이나 기관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줄 것도 중국 측에 요청하라고 주문했다. 국무부는 2014년 12월 리와 그가 운영하는 다롄 서니 인더스트리를 다시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조치에도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리를 비롯한 중국의 무기밀매 네트워크 덕이라고 미국 정보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이란이 과거부터 북한과 미사일 분야에서 긴밀하게 협력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실제로 이란은 북한 노동미사일을 개량해 사거리 2000km의 샤하브-3 미사일을 개발, 실전배치한 바 있다. 바로 이 미사일 커넥션에 리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북한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은 2012년 6월 공개한 보고서에서 북한의 불법 화물이 중국 다롄항으로 운반돼 다른 배에 옮겨 실린 뒤 이란으로 이동한다고 지적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정부의 비밀 외교전문을 보면, 이란은 사거리 3000km인 북한 BM-25(무수단) 미사일 19기를 확보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은 이 미사일들 역시 다롄항을 통해 이란 항구도시 반다르아바스에 있는 미사일 기지로 운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래리 닉시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북한과 이란이 미사일과 핵 기술 부품 등을 주고받으면서 중국 항구와 공항을 이용하고 있다”며 “중국은 이들 나라 간 WMD 부품 교류를 전혀 제지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닉시 교수는 또 “이란 샤하브-3 미사일과 북한 노동미사일은 쌍둥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고위 관료들과의 커넥션?
북한이 2월 7일 발사한 장거리 미사일 광명성 4호의 위성덮개(페어링) 부분도 이란 장거리 로켓 사피르와 거의 똑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페어링은 지름 1.25m, 길이 1.95m인데, 이란이 2008년부터 쏘아 올린 장거리 로켓 사피르의 페어링은 지름 1.25m, 길이 2m이다.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는 2월 10일 발표한 자료에서 북한 광명성 4호의 3단 로켓이 이란 사피르의 2단 로켓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광명성 4호는 1·2·3단으로 구성됐으며 탑재체(위성)는 3단에 실린다. 이란 사피르는 1·2단으로 구성됐으며 탑재체는 2단에 실리는 차이점이 있다. 광명성 4호의 3단 로켓은 지름 1.25m, 길이 3.1m로 추정된다. 사피르의 2단 로켓은 지름 1.25m, 길이 3.7m이다.리는 다부진 체격에 통통한 얼굴이며, 입술 위에 작은 점이 있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가 그동안 테헤란을 제집 드나들 듯 방문해왔다는 사실은 확인되지만, 평양에도 자주 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가 운영하는 미사일 밀매 네트워크가 이란과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은 확인됐으나 북한과 어떻게 거래해왔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차관보가 “칸 박사 다음가는 거물”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란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상당한 구실을 해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리의 불법 활동을 묵인 또는 방관해왔다. 그가 중국 고위 관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의 조부가 6·25전쟁 때 인민해방군 대교(우리나라의 대령)로 참전했다는 말도 있다.
최근 미국은 북한의 핵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에 대응하고자 초강력 대북제재 법안을 제정했다. 북한과 직접 불법거래를 하거나 불법거래를 용인한 자 또는 도움을 준 제3국의 개인과 단체 등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사실상 북한과 금융·경제 거래가 가장 많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미국의 대북제재법이 효과를 거두려면 중국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중국이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하지 않을 경우 미국과의 대결 구도가 더욱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이 법이 리를 비롯한 중국 무기상들과 무기밀매 네트워크를 처리하는 데 어떻게 작용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