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현지 시간) 모나코에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대진 추첨식이 열렸다. [GETTYIMAGES]
21년 만에 대폭 바뀐 ‘별들의 전쟁’
1955년 유러피언컵으로 시작한 챔피언스리그는 1992년 현 명칭으로 바뀌었다. 바로 직전 시즌에 바뀐 대회 방식을 유지한 채 대회 이름만 변경됐다. 유러피언컵 시절 ‘전체 토너먼트’에 가까웠던 대회 방식은 1991~1992시즌 ‘부분 조별 리그’로 바뀌었다. 본선 진출 32개 팀이 1·2라운드 홈&어웨이 토너먼트로 8개 팀을 가리고, 다시 2개 조로 나눠 홈&어웨이 조별 리그를 거쳐 각 조 1위가 결승에서 맞붙는 방식이다. 부분 조별 리그 방식이 도입되면서 총 경기 수는 기존 59경기에서 73경기로 늘어났다. 1992년에는 대회 이름만 바뀌었을 뿐 운영 방식 자체를 건드리진 않았다.
본격 출범한 챔피언스리그는 여러 차례 대회 방식의 변화를 겪었다. 1993~1994시즌 4강 토너먼트가 생겼으며, 1994~1995시즌에는 본선 참가팀이 16개 팀으로 줄고 라운드 제도가 폐지됐다. 4개 조, 8강 토너먼트가 펼쳐지는 조별 리그 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 1997~1998시즌부터는 24개 팀이 6개 조를 이뤄 경기를 치렀고, 1999~2000시즌에는 본선에 32개 팀이 참가하면서 대회 규모가 대폭 커졌다. 이때 대회 방식도 1차 조별 리그 8개, 2차 조별 리그 4개를 거쳐 8강 토너먼트를 치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1차 조별 리그에서 3위를 차지해 2차 조별 리그로 가지 못한 팀이 하위 대회 ‘UEFA 컵’으로 내려가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2003~2004시즌부터 적용된 대회 포맷이 오늘날 축구 팬들에게 익숙한 챔피언스리그다. 본선 32개 팀이 8개 조로 나뉘어 16강 토너먼트를 치르는 방식이다. 이때부터 2023~2024시즌까지 21년 동안 대회 포맷이 유지되면서 수많은 챔피언과 무수한 명승부를 만들어냈다.
이런 상황에서 UEFA가 갑자기 챔피언스리그 대회 방식을 바꾸겠다고 나섰다. “좀 더 많은 참가 팀과 경기, 치열한 경쟁으로 훨씬 흥미로운 대회가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UEFA는 최근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참가하는 팀이 고착화된 데다, 구단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고민에 빠진 터였다. 몇 년 사이 비슷한 조별 리그 대진표로 흥미가 떨어지고, ‘죽음의 조’와 ‘쉬운 조’ 간 난이도 차이가 너무 컸던 것이다. 강팀이 조별 리그에서 일찌감치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 지어 5·6차전을 긴장감 없이 치르거나, 반대로 약팀이 너무 일찍 탈락해 의욕이 떨어지는 문제도 지적됐다. 이 같은 문제점을 고민한 결과 나온 게 이번 시즌 도입된 완전히 새로운 챔피언스리그 방식이다.
2024~2025시즌부터 챔피언스리그는 본선 참가 팀이 36개로 늘어났다. 가장 중요한 변화 포인트는 조별 리그 제도 폐지다. 그 대신 팀당 8경기(홈 4, 원정 4)를 치러 1~36위 순위를 매기는 ‘미니 리그’로 대회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8경기를 치르는 가운데 각국 프로 리그처럼 이기면 3점, 비기면 1점을 얻는다. 이렇게 얻은 승점을 기준으로 1위부터 8위까지는 16강 토너먼트 직행, 9위부터 24위까지는 16강 토너먼트 진출을 위한 홈&어웨이 플레이오프로 간다. 25위 이하 최하위권은 그대로 대회가 끝난다.
“돈 때문에 대회 방식 이상해졌다” 불만도
미니 리그 8경기의 대진표 결정 방식은 어떨까. UEFA는 본선 참가가 확정된 36개 팀을 UEFA 클럽 랭킹 순서대로 4개 포트(pot)로 나눈다. 챔피언스리그 디펜딩 챔피언은 1번 포트에 분류된다. 그다음 컴퓨터 추첨을 통해 포트당 2개 팀씩 대진표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물론 추가 조건도 뒤따른다. 조별 리그 제도 때와 마찬가지로 8경기 미니 리그에선 같은 리그 소속 팀은 만나지 않는다. 그리고 특정 리그 소속팀은 최대 2팀까지만 상대한다. 가령 잉글랜드 팀이 같은 잉글랜드 팀과 만날 수 없고, 스페인 팀은 최대 2팀까지만 상대한다는 얘기다. 이제 조별 리그, 홈&어웨이 경기 방식은 잊어야 한다. 무작위 추첨된 8개 팀과 딱 1번씩만 만난다. 그래서 홈에서 4경기, 원정에서 4경기다.
1위부터 36위까지 순위를 매기니 챔피언스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싶은 팀은 미니 리그 8경기에서 총력전을 펼칠 전망이다. 마지막까지 누가 토너먼트 직행을 확정 지을지 알 수 없기에 순위 다툼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1승, 심지어 1무 차이에 따라 순위가 크게 요동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진 UEFA가 내세운 대회 방식 변경 명분과 잘 맞아떨어진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급증하는 경기 횟수다. 최소 2경기가 늘어나고 플레이오프를 거쳐 결승까지 가는 팀이 나오면 최대 17경기를 치러야 한다. 리그와 컵대회, 대표팀 경기에 시달리는 선수들의 피로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진다. 결과적으로 부상 위험도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별들의 전쟁이라는 챔피언스리그의 명성이 무색하게 선수들이 최고 컨디션으로 경기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챔피언스리그 포맷 변경의 진짜 이유가 따로 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바로 수익 증가다. 경기 횟수가 늘면 당연히 중계권료를 비롯한 모든 수익이 증가하기 마련이다. 일부 언론에선 지난 시즌 우승한 레알 마드리드와 비슷한 승률로 이번 시즌 우승을 차지할 경우 수익이 약 30%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우승 및 승리 상금, 중계권 수익 등으로 1억5000만 유로(약 220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홈경기 등 기타 구단 수익은 제외한 액수다. 일단 이번 시즌이 마무리돼야 정확한 자료가 나오겠지만 저조한 성적으로 탈락하는 팀도 수익은 예전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선수들이 경기 피로와 부상 우려를 토로하는 것과 달리 각 구단은 새로운 경기 방식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일단 팬 반응은 좋지 않다. UEFA와 각 구단이 돈 때문에 대회 방식을 어렵고 이상하게 바꿔 재미가 반감될 것이라는 불만이다. 월드컵을 48개국 체제로 바꾼 국제축구연맹(FIFA)에 대한 반감과 궤를 같이한다. 대진 추첨 결과 여전히 팀마다 경기 난이도 차이가 적잖은 것도 한계다. 풀리그가 아님에도 그 같은 대진표로 순위를 결정하는 게 변경 취지에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21년간 익숙했던 옷을 스스로 벗어던진 챔피언스리그는 앞으로 재미와 감동으로 변화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