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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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후티의 미사일 공격에도 중동 확전 막는 데 급급한 바이든 행정부

이란과 예멘, 美 항모 전단 아랑곳 않고 조롱하듯 美 해군·이스라엘 공격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3-12-0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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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해군 항공모함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GettyImages]

    미 해군 항공모함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GettyImages]

    미군은 1991년 온갖 최첨단무기를 동원해 당시 중동 최강이라던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군을 단 며칠 만에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세계 최강 군대이자 적에게 공포 대상인 미군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적에게 공포 대상이던 ‘과거 미국’

    미국은 냉전 붕괴 후 대대적인 군비 축소에 나서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차순위 수십 개 나라를 합친 것보다 많은 돈을 국방비로 쓰는 나라였다. 초대형 항공모함과 대형 전략폭격기는 그 군사력의 상징으로, 세계 곳곳에서 강력한 억지력을 발휘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이 강력한 힘을 시의적절하게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아버지 부시’로 불리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응징했고, 빌 클린턴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이 말리지만 않았어도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폭격했을 것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는 물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도 때렸다. 이처럼 굵직한 전쟁 말고도 미국이 더 큰 분쟁을 막기 위해 군사력을 투입한 경우가 여럿 있다.

    미국의 적들은 자기네 머리 위로 날아오는 전략폭격기, 전투기를 싣고 눈앞까지 진격해오는 초대형 항공모함,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날아오는 토마호크 미사일을 두려워했다. ‘과거 미국’은 어지간한 작은 나라 하나쯤은 며칠 안에 초토화할 군사력이 있었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그것을 사용할 의지도 가졌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10월 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는 미국은 이란과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군벌들의 적이 됐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에 있는 친이란 군벌들은 앞다퉈 미국과 이스라엘에 선전포고했고, 중동 각지의 미국 군사·행정 시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10월 17일 첫 공격이 시작된 이후 2주간 적게는 70여 회, 많게는 80회 이상의 공격이 중동 현지 매체에 보도됐다. 그럼에도 미 국방부는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피습 사실 자체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브리나 싱 미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이란과 그 지원을 받는 민병대의 전쟁 확대 시도를 막는 미국의 억지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면서 “민병대의 공격이 계속되고는 있지만 지금까지 심각한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80번 공격받고 10번 보복에 그쳐

    이란군이 운용하는 드론. [뉴시스]

    이란군이 운용하는 드론. [뉴시스]

    미국의 힘은 압도적 첨단무기로 상징되는 ‘하드웨어’와 군인들의 감투정신 같은 ‘소프트웨어’에서 나온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자국민을 대단히 중시하는 나라였다. 그렇기에 단 1명의 미국인이라도 외세의 공격을 받으면 반드시 구출하거나 보복했다. 미국인을 건드리면 나라 전체가 나선다는 이 전통은 전장에서 미군을 최강 군대로 만들었다. 동시에 미국의 적들이 경거망동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억지력으로도 작용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중동 전역에서 자국민이 로켓과 드론, 미사일 공격을 받고 있는데도 모른 척 손을 놓고 있다.

    70~80여 번이나 공격받은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실시한 보복 공습은 10번이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 해당 기지를 공격한 무장세력과 관련 없는 지역이었다. 미군이 주로 공습한 이라크·시리아 접경의 아부카말 일대는 예전부터 여러 민병 조직이 오가는 물류 거점이다. 이곳은 이란에서 출발한 각종 불법 무기가 이라크 고속도로를 통해 시리아로 반입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워낙 많은 군벌이 함께 이용하는 곳이다 보니 어느 시설이 누구 것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즉 이곳에 대한 폭격은 미군을 공격한 군벌이 아닌 다른 군벌의 피해를 낳을 수 있어 필연적으로 또 다른 보복 테러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미국이 이곳을 공격한 이유는 각 기지를 공격한 무장세력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민병대가 존재한다. 이 지역에서는 국가보다 부족이나 가문 형태로 세력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아 지방별로 크고 작은 세력이 군벌로 활동하고 있다. 이라크만 해도 ‘인민동원군’이라는 민병대 연합체에 이름을 올린 군벌만 100개가 넘는다. 시리아도 친정부·반정부 민병대는 물론, 레바논에서 넘어온 헤즈볼라 계열, 이란 쿠드스군의 직접 통제를 받는 무장단체나 쿠르드족 등 무장조직의 수와 규모를 추산할 수 없을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입장에선 야간에 몰래 접근해 미사일이나 드론을 날리고 사라지는 소규모 병력이 어디 소속인지 추적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물론 미국이 작심하고 대응에 나서면 각 기지에 대한 공격을 막고 정확히 보복 타격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공격 대부분에 이란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고, 섣부른 공격은 중동 전역에 있는 수십만 명 규모의 친이란 민병대와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미국인 뇌리에 여전히 악몽으로 새겨져 있는 ‘테러와 전쟁’이 재현된다면 대선에서 필패하리라는 두려움이 클 것이다.

    미국을 건드려도 보복당하지 않는 이런 상황은 ‘미국의 적’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축제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중동 군벌들은 미국과의 성전(聖戰) 분위기를 조성해 내부 기강을 잡고, 미군을 공격해 전과(戰果)라도 생기면 이를 선전해 이란, 러시아 등으로부터 무기·물자 지원을 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란은 이런 분위기에서 자국을 추종하는 군벌들에게 ‘본’을 보였다. 11월 25일 아랍에미리트(UAE) 제벨 알리 항구를 떠나 인도 코친 항구로 가던 몰타 선적 컨테이너선 ‘CMA CGM 심미’호를 샤헤드-136 자폭드론으로 공격한 것이다. 이 선박은 이스라엘 억만장자가 지분을 가진 싱가포르 해운업체 소유였는데, 이란은 자국 해안선에서 대단히 먼 거리에 있던 이 배의 위치를 특정해 자폭드론으로 명중시켰다.

    문제는 이란 해안에서 피격 선박까지 샤헤드-136 드론이 비행하는 경로 중간에 미 해군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항모 전단이 있었다는 점이다. 아이젠하워 항모는 이지스 순양함 1척, 이지스 구축함 2척과 프랑스 해군 범용 호위함 1척 등 4척으로 구성된 호위 전단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란은 이들 머리 위로 자폭드론을 날려 공해상에 있던 민간 선박을 대파시켰다. 정상적 상황이었다면 미군 항모 전단은 자신들을 향해 곧장 날아오는 이란 드론을 원거리에서 요격했겠지만 이번에는 그런 조치가 없었다.

    이란과 예멘 후티의 도발 ‘컬래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교전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 [뉴시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교전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 [뉴시스]

    ‘대부(代父)’인 이란이 미 항모 전단을 농락하며 이스라엘과 연관된 선박을 대파하는 ‘본보기’를 보이자, 친이란 무장세력인 예멘 후티 반군도 비슷한 도발에 나섰다. 후티는 이스라엘에 정식으로 선전포고하고 10월 20일부터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 미사일·드론 공격을 퍼붓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홍해에 배치된 미 해군 전력을 무시하며 온갖 종류의 적대 행위도 시작했다. 후티 반군이 쏜 미사일·드론이 이스라엘에 도달하려면 직선거리로 비행한다고 가정해도

    1700㎞는 날아가야 하는데, 이 경우 반드시 사우디아라비아 영공을 침범하게 된다. 일부 드론은 사우디군의 요격을 피하려고 홍해로 우회하는데, 이 경로 해상에는 미 해군 바탄 상륙준비전단과 이지스 구축함 2척이 배치돼 있다. 즉 후티 반군이 미군 머리 위로 미사일과 드론을 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초기부터 확전에 대비해 중동 지역에 해군력을 증강 배치해왔다. 홍해에는 와스프급 강습상륙함 바탄을 중심으로 한 상륙준비전단과 해병대 병력, 이를 지원하는 이지스 구축함 등이 배치됐다. 미국은 이 전력으로 후티의 확전 시도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다르게 흘러갔다. 후티는 미국을 비웃기라도 하듯 미 해군 전투함 머리 위로 드론과 미사일을 날리고 있다.

    미군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자, 후티는 아예 홍해와 인도양을 잇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유럽-중동-아시아를 잇는 핵심 해상교통로인 이 해협과 가까운 지역을 장악한 후티는 “이스라엘과 조금이라도 연관 있는 배가 지나가면 공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 11월 19일 이스라엘인이 일부 지분을 가진 회사의 화물선을 나포했고, 26일에는 이스라엘과 관련 있는 화학물질 운반선도 나포하려 시도했다. 후티는 나포 시도가 미 해군의 저지로 좌절되자, 미 구축함이 있는 해역으로 대함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하는 초유의 도발을 벌이기도 했다.

    후티가 발사한 미사일은 ‘아시프’라는 모델로, 이란이 개발해 실전 배치한 칼리즈 파스 대함탄도미사일 기술과 부품을 수입해 제조한 복제품이었다. 300㎞급 사거리와 600㎏급 탄두를 가진 이 미사일은 단 1발로도 대형 전투함을 격침할 수 있다. 다만 후티가 발사한 미사일 모두 미군 구축함에 도달하지 못하고 약 10해리(18.5㎞) 거리 바다에 추락했다. 일개 무장반군이 미군 구축함 면전에서 민간 선박 나포를 시도하고, 그를 가로막은 미군 구축함에 대함탄도미사일까지 쏘는 도발이 자행된 것이다. 그럼에도 미 국방부는 하루 뒤 “나포를 시도한 범인들은 소말리아 해적인 것 같고, 후티가 쏜 미사일은 미군 구축함이 아닌 나포 대상 선박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는 황당한 입장을 발표했다. 후티가 미군 함정을 직접 공격하는 초유의 도발이 발생했지만, 확전을 피하려고 미 국방부의 최초 발표를 번복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육상과 해상에서 계속되는 도발에도 미국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11월 27일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사령관이 나서서 미국을 조롱했다. 이란 측은 11월 26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페르시아만에 진입한 미 해군 항모 전단을 자국 무인기와 고속정이 추적·감시했고, “미 항모 전단이 이란 혁명수비대 고속정단에 겁을 먹고 순순히 통제에 응했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미 항모는 우리가 이란어로 말한 모든 요청에 이란어를 사용해 즉각 응답했고,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과정에서 우리의 통제에 순순히 응했다”면서 “그들은 해협 통과 직후 페르시아만 남쪽에 있는 국가 영해로 도주했다”고 미국을 조롱했다.

    미국은 항모에 탑재된 함재기 몇 대만 띄워도 호르무즈 해협 일대의 이란 고속정을 모조리 수장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그것을 사용할 의지가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정책 난맥상을 지켜보며 확신을 갖게 된 이란은 눈앞에 미국 항모 전단이 있음에도 무서워하기는커녕 이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군사력 못지않게 중요한 ‘의지’

    에멘에서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뉴시스]

    에멘에서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뉴시스]

    제아무리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라도 그것을 언제든 적에게 사용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면 전쟁을 막지 못한다. 동아시아 최강국이던 송나라는 대군을 갖고도 북방 유목민족들에게 굴욕을 당했고, 나치 초기 독일군을 압도하는 군사력을 지녔음에도 ‘우리 시대의 평화’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뮌헨협정에 서명한 영국과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맞아야 했다. 압도적 군사력을 가졌으면서도 분쟁을 막으려는 의지 없이 외교적 수사(修辭)만 늘어놓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는 그 비겁함이 세계 평화를 해치고 초강대국 미국의 위상을 추락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쯤 깨닫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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