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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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 끓는 무더위에 지구촌이 ‘뻘뻘’

남미 안데스 한겨울 기온이 38도… 엘니뇨가 지구 평균기온 끌어올려

  •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입력2023-08-1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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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가 역사상 가장 뜨거운 7월을 보낸 가운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한 관광객이 더위을 식히고 있다. [뉴시스]

    전 세계가 역사상 가장 뜨거운 7월을 보낸 가운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한 관광객이 더위을 식히고 있다. [뉴시스]

    한겨울이어야 할 남미가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등 남미 국가는 기온이 30도를 넘어서며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 중이다. 한국은 긴 장마에 이어 35도 넘는 폭염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기후변화로 북반구에서는 이례적인 고온이 이어지고, 남반구에서는 겨울이 실종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에 엘니뇨현상까지 가세해 지구가 들끓고 있다고 경고한다.

    역대 최고 더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7월 말 기자회견을 통해 “지구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기온이 끓어오르는 시대가 도래했다”며 “올해 유례없는 폭염으로 기록상 가장 더운 시기를 보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건강, 식량, 에너지, 물 자원 등이 극심한 타격을 입은 데 이어 올해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7월부터 시작된 폭염은 아시아를 비롯해 북미, 유럽, 아프리카 등에서도 나타났고, 역사상 가장 더운 날과 가장 높은 해수 온도를 기록했다.

    세계기상기구(WMO)와 유럽연합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온이 역대 최고였던 2019년 7월을 넘어섰다(그래프1 참조). 크리스 휴잇 WMO 기후서비스 이사는 “지난 173년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 1970년대 이후 10년에 걸쳐 명확한 온난화가 진행됐다”며 “2015년부터 2022년까지 8년간은 기록상 가장 더웠다”고 설명했다.

    현재 계절상 겨울인 남반구 또한 전례 없는 고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칠레 일부 지역과 아르헨티나 북부 지역 기온이 평균보다 10~20도까지 높아졌다. 안데스산맥에 있는 마을은 기온이 38도까지 치솟았으며,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30도를 넘어서며 이달 들어 예년 8월 기온을 5도 이상 초과 경신했다. 남유럽, 미국, 중국 등 북반구의 폭염과 달리 겨울을 덮친 이상기온이다. 평년 겨울 날씨에 비해 20도 이상 따뜻한 겨울이 찾아온 것이다.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덮친 겨울 폭염의 원인은 안데스산맥 동쪽에서 지속되는 고기압으로 인한 열돔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고기압은 적도 가까운 곳에서 더 따뜻한 공기를 끌어당긴다. 그리고 열돔을 형성해 공기를 압축시켜 가열한다. 고기압 조건에서 맑은 날씨가 지속되며 지표면이 가열돼 열이 더욱 축적되는 구조다. 특히 이 열돔은 태평양에서 발달하는 엘니뇨에 의해 더 심해졌을 개연성이 있다. 엘니뇨로 인한 대기 순환 변화로 일반적으로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더 높은 기압과 더 따뜻한 겨울 기온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국, 엘니뇨로 강수량 증가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6월 공식적으로 엘니뇨 시작을 확인하고 2024년 3월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인공위성이 3~4월 우주에서 지구의 엘니뇨 초기 징후를 관측한 자료에 기반한 내용이다. 현재 국가별로 서로 다른 임곗값으로 엘니뇨를 정의하는데, 대체로 엘니뇨란 적도 지역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수개월간 0.5도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엘니뇨는 반대로 수온이 떨어지는 라니냐현상과 번갈아 발생하며, 2~7년마다 나타난다(그래프2 참조). 엘니뇨가 지속되는 기간은 짧게는 몇 달에서 수년까지다.



    일반적으로 무역풍은 따뜻한 해수를 해안에서 밀어내고 차가운 해수를 지표로 몰고 온다. 그러나 엘니뇨가 나타나면 무역풍이 약해져 적도 근처 해수가 뜨거워진 채 머물기 때문에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소보다 상승한다. 이러한 기후 패턴은 단순히 바닷물 온도 변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엘니뇨는 열대 태평양에 국한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대기와 해양의 원격상관(대기·해양 흐름을 통해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통해 전 지구적으로 기상이나 기후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엘니뇨가 이어지는 동안 적도의 온난화는 성층권의 온난화로 이어지고, 하부 열대 성층권은 냉각된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제트기류로 알려진 상층 바람이 이동되면서 태풍과 허리케인 등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따뜻해지고 대기 중에 더 많은 수증기를 보유해 생기는 극단적인 강수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돌발 가뭄이나 집중호우가 더욱 파괴적으로 발생할 위험이 크다. 이상기후와 함께 갑작스레 질병이 증가하는 원인으로 엘니뇨와 라니냐가 지목되기도 한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역대 가장 강력했던 엘니뇨는 콜레라와 뎅기열 등 질병의 원인이 됐다.

    엘니뇨가 최고조로 발달하는 겨울철 북반구에서는 유라시아 중·동부와 알래스카를 포함한 북미 서북부가 평상시보다 높은 기온을 보이고, 남반구에서는 아프리카 남서부 지역과 호주 서쪽, 그리고 남미 북부 지역이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다. 강수량은 열대 서·중태평양에서 증가하며, 인도네시아 부근과 호주 북부에서는 평상시보다 감소해 가뭄을 일으키기도 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한국은 엘니뇨로 더 덥고 습한 여름철이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엘니뇨가 발달하는 시기 한반도에서는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강수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9월에는 반대로 강수가 감소하고 기온이 낮아지며, 엘니뇨가 최대로 발달하는 11~12월에는 다시 강수가 증가하고 기온이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6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인공위성은 중앙 및 동부 열대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며 해수면이 평균보다 12.5㎝ 이상 높아진 것을 관측했다.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붉은색 줄무늬는 엘니뇨현상이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NASA 제공]

    6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인공위성은 중앙 및 동부 열대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며 해수면이 평균보다 12.5㎝ 이상 높아진 것을 관측했다.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붉은색 줄무늬는 엘니뇨현상이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NASA 제공]

    무엇보다 엘니뇨로 인한 해수면 온도 상승은 지구온난화에 전반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미 4월 세계 해수면 평균온도가 21.1도에 도달해 역대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기후변화의 영향과 3년 연속 지속된 라니냐에서 벗어난 것을 반영한 수치다. 엘니뇨가 시작되면 따뜻한 물이 남미 해안에서 표면으로 올라와 바다를 가로질러 퍼지면서 상당한 양의 열과 습기를 대기로 밀어낸다. 이로 인해 다양한 기후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조시 윌리스 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은 “엘니뇨와 높아진 해수 온도의 조합이 향후 12개월 동안 역사적인 최고 기록을 만들 수 있다”며 “엘니뇨 강도가 셀 경우 지구는 기록적인 온난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전까지 엘니뇨는 지구 평균기온을 기록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중앙아메리카의 홍수와 산사태, 남미의 가뭄, 인도 몬순기후의 변화 등 자연재해와 관련 있었다. 2016년 강력한 엘니뇨가 발생했을 때 지구 기온은 평균 약 0.14도 상승해 기록상 가장 따뜻한 해가 됐다. 2019~2020년에도 약한 엘니뇨가 발생해 2020년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따뜻한 해로 기록된 바 있다. 이번 엘니뇨 또한 기온 상승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측된다.

    ‘슈퍼 엘니뇨’ 위험

    미셸 로뢰 NOAA 기후예측센터 기상학자는 성명을 통해 “엘니뇨는 평균 이상의 기온을 나타낸 지역에서 새로운 고온을 기록할 수 있다”며 “강도에 따라 엘니뇨는 전 세계 특정 지역에서 폭우와 가뭄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 시대(1850~1900) 평균보다 약 1.1도 높다. 과학자들은 엘니뇨가 지구 온도를 최대 0.2도 더 높일 수 있다고 예측한다. 엘니뇨가 가열되고 있는 기후를 더욱 빠르게 달구는 촉진제로 작용할 경우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지구온난화의 마지노선으로 설정한 1.5도를 넘어서 미지의 기온 영역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네이처 리뷰에 게재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구온난화가 계속됨에 따라 더욱 극심한 엘니뇨를 경험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과거 네이처 기후변화 저널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의 탄소배출량이 향후 100년 동안 극심한 엘니뇨의 발생률을 2배로 높여 심각한 사회·경제적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가뭄, 폭염, 산불 위험이 커지고 바닷속에서는 대규모 산호 백화현상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 생태계 파괴가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매트 콜린스 영국 엑서터대 수학 및 통계학과 교수는 논문을 통해 “이것은 지구온난화의 예상치 못한 결과”라며 “극심한 엘니뇨로 이상기후가 더욱 극적으로 발생할 경우 인류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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