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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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영역 넘보는 합성 인간 배아 연구

영국·이스라엘 연구팀, 줄기세포로 14일 차 인간 배아 배양 성공… 윤리적 문제도 제기돼

  •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입력2023-07-0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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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달생물학자인 막달레나 제르니카-괴츠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왼쪽)와 제르니카-괴츠 교수팀이 인간 줄기세포를 사용해 만든 합성 배아. [케임브리지대, 막달레나 제르니카-괴츠 교수팀 제공]

    발달생물학자인 막달레나 제르니카-괴츠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왼쪽)와 제르니카-괴츠 교수팀이 인간 줄기세포를 사용해 만든 합성 배아. [케임브리지대, 막달레나 제르니카-괴츠 교수팀 제공]

    난자와 정자를 사용하지 않고 줄기세포(신체의 거의 모든 세포 유형으로 발달할 수 있는 신체의 마스터 세포)로 만든 합성 인간 배아가 탄생했다. 합성 인간 배아는 태반, 난황낭 등 배아와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심장이나 뇌 같은 기관은 없다. 이번 연구 결과는 유전병이나 난임, 유산 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생명 탄생의 비밀에 한 걸음 다가서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태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인간 배아를 난자와 정자 없이 합성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난자·정자 없이 만든 인간 배아

    6월 14일(현지 시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국제 줄기세포 연구협회 연례회의에서는 발달생물학인 막달레나 제르니카-괴츠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팀과 이스라엘 분자유전학자인 요셉 한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 연구팀이 각각 줄기세포를 통한 인간 배아 실험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이날 제르니카-괴츠 교수는 “배아 줄기세포를 재프로그래밍해 인간 배아와 유사한 모델을 만들 수 있다”며 “이 모델은 양막(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과 생식세포, 난자와 정자의 전구세포(특정 세포의 기능을 갖추기 전 단계 세포)를 지정하는 최초 3배엽(외·중·내배엽) 인간 배아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막달레나 제르니카-괴츠 교수팀이 진행한 연구에서 쥐의 자연(왼쪽) 및 합성(오른쪽) 배아는 유사한 발달 형태를 보였다. [케임브리지대 제공]

    막달레나 제르니카-괴츠 교수팀이 진행한 연구에서 쥐의 자연(왼쪽) 및 합성(오른쪽) 배아는 유사한 발달 형태를 보였다. [케임브리지대 제공]

    사람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만들어진 수정란이 세포 분열을 거쳐 배아가 형성되고, 이 배아가 계속 분화해 태아로 자라난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는 난자와 정자 없이 줄기세포만으로 합성 인간 배아를 탄생시켰다. 두 팀 모두 인간 배아 줄기세포에서 배아와 유사한 구조가 스스로 만들어지게 했으며, 그중 일부는 태반을 형성하는 줄기세포와 배아 외부에서 난황낭을 형성하는 세포 유형으로 전환됐다. 연구진은 배아 모델이 수정 후 6~14일 사이에 인간 배아에서 발견되는 구조 및 유전자 전사 프로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전에 인간과 다른 동물의 줄기세포에서 유사한 개체를 만든 적이 있다. 지난해 두 연구팀은 쥐의 줄기세포에서 심장과 뇌 같은 기관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단계까지 배아 모델을 만들었다. 이후 이 작업을 인간 모델로 변환하는 연구 경쟁이 시작됐으며, 여러 연구팀이 개발 초기 단계를 뒤따랐다.

    5월 미국 줄기세포 생물학자인 알리 브리반루 록펠러대 연구팀이 수정 후 약 12일째에 보이는 것과 동일한 낭배가 형성된 인간 배아 모델을 개발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자연 상태에서 14일간 발달 단계 이상을 배양한 것이다. 각각 단일 배아 줄기세포에서 성장한 배아 모델은 별개의 세포주(cell line)를 형성하고 신체의 기본 축을 설정하는 과정으로 발달해갔다. 이 단계에서 배아는 아직 뛰는 심장, 내장 또는 뇌의 시작 부분이 없지만, 모델은 난자와 정자의 전구세포인 원시세포의 존재를 나타냈다.

    생체 이식 후 생존 가능성 낮아

    이번 연구처럼 인공적으로 탄생한 배아를 ‘합성 배아’라고 부른다. 그러나 연구에 사용된 줄기세포는 본래 배아에서 나왔기 때문에 합성된 것은 아니지만, 자연적으로 형성된 배아와는 다르기에 일부 과학자는 ‘줄기세포 기반 배아 모델’이라고 부르기를 선호한다. 과거에는 실험실에서 배아를 만드는 방법은 정자와 난자를 인공적으로 수정하는 체외수정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배아 줄기세포를 통해 배아와 유사한 구조를 수정이라는 절차 없이 만들어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배아 모델이 임상적으로 사용된 적은 없다. 이를 여성 자궁에 이식하는 것 또한 불법이다. 이런 배아 모델이 발달 초기 단계를 넘어 계속 성숙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도 아직 불명확하다. 과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생성한 배아는 성체 세포를 재프로그래밍해 배반포와 같은 구조로 자가 조직화한 것이다. 지금까지 동물 연구에 비춰볼 때 이런 배아 모델은 실제 배아와 동일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식된 경우 생존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된다.

    쥐의 합성 배아는 자연 배아와 거의 동일하게 나타났지만, 암컷 생쥐 자궁에 이식된 뒤 발달을 멈췄다. 또 원숭이 세포에서 합성 배아를 만들어 성체 원숭이의 자궁에 이식한 연구에서도 일부는 초기 임신 징후를 보였지만 어느 하나도 며칠 이상 계속 발달하지 않았다. 연구진에 따르면 단순히 기술적 문제인지, 아니면 더 근본적인 생물학적 원인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알리 브리반루 미국 록펠러대 연구팀이 진행한 합성 인간 배아 연구에서 배양 6일 차에 세포 수백 개가 속이 빈 구 형태의 배반포를 형성했다. [록펠러대 제공]

    알리 브리반루 미국 록펠러대 연구팀이 진행한 합성 인간 배아 연구에서 배양 6일 차에 세포 수백 개가 속이 빈 구 형태의 배반포를 형성했다. [록펠러대 제공]

    그렇다면 합성 배아를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합성 배아 연구의 목표는 인간 탄생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다. 인간은 누구나 자궁에서 굴러다니는 약 150개 세포로 이뤄진 작고 속이 빈 공에서 생명을 시작한다. 배반포로 불리는 배아 공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중요한 초기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향후 40주 동안 음식과 산소를 공급하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배아가 착상 과정에서 실패한다. 배아가 제대로 착상되기까지 9일 이상이 걸리며 하루가 늘어날수록 생존 가능성이 줄어든다. 착상 전후 2개월 이내 대다수 임신이 실패한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이 시기는 인간 생명 초기의 매우 중요한 과정이지만,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블랙박스’로 남아 있다. 배아 모델 연구의 목적은 실험실에서 인간 배아를 만듦으로써 그 세부 사항을 밝히는 것이다. 인간 발달 과정에서 신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세부적인 내용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영국 맨체스터대 산모 및 태아 건강 연구원인 로저 스터미 교수는 데일리메일을 통해 “합성 인간 배아 연구는 줄기세포가 매우 특수한 실험실 조건에서 배반포라고 하는 배아 단계와 유사한 구조를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기반이 되고 있다”며 “우리는 인간 발달의 초기 단계를 거의 알지 못하지만 불임과 조기 유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성 배아라고 하면 복제인간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SF영화에서 미래에 장기 이식을 하려고 자신과 똑같은 복제인간을 양성하는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인간 배아를 통해 장기를 배양한다면 실제로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 환자 몸에서 세포를 채취해 줄기세포를 만들고 합성 배아를 성장시킨 다음 환자에게 다시 이식하는 방법이다. 세포는 환자 몸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정확한 DNA를 보유하고 있다. 인간 장기를 배양해 인공 장기 이식을 한다면 기증자를 찾을 필요가 없고, 이식받은 장기가 환자 몸의 면역계로부터 공격받는 ‘거부 반응’도 사라진다. 장기 이외에 약물의 새로운 표적을 식별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잠재적으로 유전적 장애나 유산, 난임, 자궁내막증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합성 배아도 생명일까

    제임스 브리스코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부연구책임자는 성명을 통해 “체외 인공수정으로 형성된 인간 배아에 대해서는 법적 틀이 확립돼 있지만, 줄기세포에서 만들어진 인간 배아 모델에 적용되는 명확한 규정은 현재로선 없다”며 “줄기세포에서 추출한 인간 배아 모델을 만들고 사용하는 데 틀이 될 만한 규제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점점 더 실제 배아와 유사한 복잡한 구조가 만들어지고, 법이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리학자들은 배아 모델 출현이 관련 연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인간 배아를 낙태 관점에서 생명의 한 과정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다. 그러나 해당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은 진짜 배아를 만든 것이 아니며 복제인간을 키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제르니카-괴츠 교수는 네이처닷컴을 통해 “우리 목표는 생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며 “실제 인간 배아를 연구에 사용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인간 배아 발달을 연구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몇 년 동안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인간 배아를 배양할 수 있는 기간을 늘려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동안 실험실에서 인간 배아를 14일 이상 살아 있는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금지됐다. 살아 있는 인간 배아로 실험하는 데 따른 윤리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다. 14일이라는 기간은 배아가 중추신경계의 첫 징후를 나타내기 시작하는 시기다. 또한 배아가 더는 쌍둥이로 분열할 수 없는 때이기도 하다. 수십 년 동안 발달생물학자들은 유산이나 낙태를 통해 채취한 인간 배아만 표본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체외수정이 개발된 후 과학자들은 불임클리닉에서 기증해준 배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를 금지하는 국가도 있지만, 국제적으로 14일 제한하에서 연구 진행이 허용돼왔다.

    배아를 14일 이상 살리는 것이 기술적으로 힘들어 이 부분이 크게 문제되지 않다가 2016년 제르니카-괴츠 교수팀을 비롯한 연구진이 배아를 14일 가까이 유지시키면서 14일 규제가 다시 문제로 떠올랐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과학자들이 더욱 신뢰할 수 있는 배아 모델을 만들어낸 만큼 윤리 문제도 재점화될 전망이다. 사실상 ‘14일 규칙’은 인간 배아와 인간 복제, 유전자 편집 등 새로운 지침이 필요한 민감한 과학 연구 분야의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

    생명윤리학자인 레이첼 앙키니 호주 애들레이드대 교수는 호주 과학미디어센터를 통해 “인간 배아와 유사한 특성을 가진 실험실의 배아 모델이 실제 배아와 근본적으로 다른지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며 “이러한 생물학적 과정은 생명 가치에 깊이 연관돼 있으므로 여기에는 대중의 더 많은 의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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