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육군은 경기 파주시 훈련장에서 K9 자주포 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육군 제공]
타스통신이 포로로 잡힌 우크라이나군 포병의 증언이라며 보도한 내용은 이렇다. “독일 군사기지에서 M777 운용 교육을 받았는데 훈련 기간은 단 5일이었고, 이 중 4일은 이론 교육만 받았다”거나 “M777이 수시로 고장 나는 데다, 일제 사격하면 포신이 폭발해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죽거나 다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M777, 일제 사격하면 포신 폭발”
이 같은 보도의 진위를 놓고 우크라이나 안팎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타스통신은 러시아 관영매체이고, 개전 초 러시아군 전과(戰果)를 과장해 신뢰성에 의심을 제기하는 이도 적잖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을 계속 모니터링해온 상당수 전문가는 러시아 측 주장이 사실일 개연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미국에서도 공여 무기의 정비 상태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미 국방부 감찰관은 6월 1일 현지 군사 전문매체와 인터뷰에서 “쿠웨이트 사전배치물자에서 우크라이나로 보내진 일부 전투장비 가운데 보관 상태가 불량해 정비가 필요한 것들이 있었다”며 ‘상태가 불량한’ 물자에 M777도 일부 포함됐음을 인정했다.
우크라이나군이 M777 곡사포를 발사하고 있다. [뉴시스]
현재 한국군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155㎜ M107 기본탄의 경우 통상 사격 훈련 때는 비교적 위력이 약한 3호 또는 4호 장약을 사용해 5~8㎞ 거리 표적까지 날아간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훈련 상황이다. 실전에서는 화포의 최대 사거리를 구현하고자 7~8호, 또는 슈퍼 8호 같은 고위력 장약을 사용한다. 장약 호수가 올라갈수록 화력이 강해지고 그만큼 약실과 포신이 받는 압력도 크게 상승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M777의 경우 미 육군은 2500발을 쏘면 무기로서 수명이 다한다고 보고 있다. 2500발을 사격하면 포신을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평균값이라서 평소 장거리 사격으로 고위력 장약을 많이 사용했다면 포신 수명은 1000발 안팎까지 줄어들 수 있다.
전시 고위력 장약 사용해 포신 부담↑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군대는 화포마다 사격 기록을 철저히 관리해 적절한 시기에 포신을 교체한다. 최근 문제가 된 우크라이나군의 M777은 미군 현역 장비가 아닌 사전배치물자(APS)라 화포 관리 상태가 미흡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우크라이나군이 아우디우카에서 러시아군과 장기간 포격전을 벌여 포신에 무리가 가중된 것이다.그렇다면 한국군은 이 같은 포신 폭발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못하다. 평시에는 포탄 사격 훈련 발수가 적고, 필요하면 정비창에서 관리도 받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는 수면 아래에 잠겨 있다. 하지만 전시가 되면 한국군 일선 부대에서 상당수 곡사포가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2016년 6월 육군 제6포병여단 정비대대원들이 K9 자주포 포신 교체 훈련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속 연구원이 2006년 한국군사과학기술학회지에 게재한 ‘CN98 포신의 마모특성 연구’에 따르면 K9 자주포의 주포 수명은 약 1000발이다. 여기서 1000발은 어디까지나 평균치다. 정확한 수명 종료 시점은 포신 끝 지점 ‘포미선단’에서부터 포신 중앙부까지 약 49.75인치(1263.65㎜) 지점에 0.1인치(2.54㎜)의 강선 마모가 발생할 때다. 포강 내 검사를 통해 이 정도 마모가 확인되면 포격 정밀도 유지와 안전을 위해 포신을 교체해야 한다.
K9 자주포의 창(廠)정비 주기는 10년이다. 배치된 지 10년이 되면 육군종합정비창에서 완전히 분해한 뒤 노후 부품을 교체하고 재조립한다. 이때 포신 마모 측정도 함께 이뤄지는데, 첫 창정비 때 포신까지 교체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매년 사격하는 포탄 발수가 얼마 되지 않는 데다, 최대 사거리를 구현하기 위해 고위력 장약을 사용하는 경우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장사정 포탄을 사격할 수 있는 사격장이 거의 없고 고위력 장약을 사용할 경우 소음 민원이 빗발치기 때문이다.
연평균 실사격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이고 사용하는 장약 위력도 약하다 보니 야전에서 K9 자주포의 포신 수명 문제에 대한 고민은 크지 않다. 실질적인 화력 운용 단위인 대대급 제대가 자체적으로 포신 교체를 고민할 여력도 없다. 진짜 전시를 대비한다면 대대급 부대에 K9 예비 포신을 다수 확보해야 한다. 유사시 교체 작업을 할 수 있는 크레인 장착 구난차량도 충분히 갖춰야 한다. 하지만 한국군에 그처럼 충분한 준비를 갖춘 부대가 존재한다는 얘기를 필자는 들어보지 못했다.
전시에 ‘보급 한계’ 신경 쓸 수 있나
우크라이나군이 쏜 포탄 탄피가 쌓여 있다. 전시 포병의 사격량은 평시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 [뉴시스]
6·25전쟁 당시 미 육군의 일일 CSR은 155㎜ 기준 30발이었다. 이는 당시 미군 군수지원 시스템이 1개 화포에 제공할 수 있는 일일 최대 공급치를 기준으로 산정한 숫자, 즉 ‘보급상 한계치’였다. 실제 전장 환경에서 요구되는 탄약 소모량과는 격차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전장 환경을 감안해 당시 미 8군 사령관인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은 상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른바 ‘밴 플리트 탄약량’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미군 155㎜ 곡사포의 하루 포탄 사격량을 CSR의 10배인 300발까지 늘린 것이 뼈대였다. 그 덕에 미군은 엄청난 화력 투사로 중공군의 물량 공세를 격파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군 화포 1문의 하루 CSR은 두 자릿수로 100발을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어디까지나 CSR 규정에 불과하다. 전쟁이 발발하면 한국군은 개전 당일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화력전을, 이틀째부터는 남하하는 적의 대규모 공세 부대를 저지하기 위해 엄청난 포탄을 소모할 수밖에 없다. 한국군 K9 자주포는 2000년부터 2019년까지 11차례에 걸쳐 1300문, 연평균 약 70문이 생산됐다. 배치 10~12년 차에 창정비가 이뤄지고 창정비 때 반드시 포신 교체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수 K9 포신 수명은 길어야 일주일 정도 사격하면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즉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면 대다수 K9은 야전에서 직접 포신을 교체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일선 부대에서 포신 교체 훈련을 실시했다는 소식을 접하기가 어렵다. 각 포병대대 차원에서 예비 포신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고, 예비역들에게 수소문해도 그 같은 훈련을 경험했다는 이가 없다시피 하다. 포신 교체 훈련을 실시한 일부 부대의 경우도 자체 정비가 아닌, 외부 정비 부대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각 야전군을 지원하는 군수지원사령부 예하 부대가, 지금은 각 군단에 1개 여단씩 편성된 군수지원여단 예하 정비대대가 포신 교체를 지원한다. 이 정비대대가 군단 일반 지원 전력으로 유사시 지원해야하는 부대는 셀 수 없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