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헌 종로구청장. [조영철 기자]
서울 종로구 신영동 248-32번지 도시형생활주택 신축 부지에서 발굴 조사를 진행하는 재단법인 수도문물연구원의 이태원 팀장은 명문기와가 출토된 날을 잊지 못한다. 지난해 12월 23일, 명문기와 출토는 발굴단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지만 건축주(사업시행자)에겐 악몽의 시작이었다.
개성 만월대 터와 유사한 건물 배치
2월 들어 진행된 2차 발굴에서는 일휘문(日暉文: 평평한 면에 새긴 원형 돌기 문양) 막새(기와의 끝을 막음하는 건축재)가 출토됐다. 일휘문 막새는 고려 궁성 건축에 주로 사용되던 것으로, 동심원 양식에 따라 제작 시기를 구분하기도 한다. 이번에 발굴된 일휘문 막새 중에는 가장자리 동심원 사이에 연주문(구슬무늬)이 장식된 것도 있었다.서울 종로구 신영동 도시형생활주택 신축 부지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건물지. 발굴 조사가 이뤄진 1382㎡에서 건물터 4동, 진입시설, 계단, 배수로, 석축, 담장 등 건축유구 19기가 확인됐다. [수도문물연구원 제공]
신영동 발굴지 중 서부권역 2호 건물터. 전면 6칸(길이 21.5m), 측면 1칸(5.5m)으로 30평형대 아파트 규모다. [수도문물연구원 제공]
구릉 경사면을 깎아내지 않은 채 지형을 이용해 건물을 배치하고 석축과 계단으로 단차를 보완했다는 점에서 고려 본궐(조선시대 경복궁과 같은 법궁)인 만월대와 흡사하다는 주장도 있다. 만월대는 북한 개성시 송악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고려 궁궐로, 태조 왕건이 자신의 조상이 살던 자리에 창건해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으로 전소될 때까지 470여 년 동안 왕들의 거처로 기능했다. 2007년부터 2018년까지 남북공동발굴조사 사업이 진행돼 만월대 규모와 형태가 많이 알려졌다. 신영동 발굴지는 고려 왕실이 특수 목적으로 지은 공공 건축물이거나 권력자의 별서로 추정된다.
이번 발굴지는 신영동 일대로 알려졌지만 정확히는 종로구 신영동과 구기동에 걸쳐 있으며, 구기계곡을 통해 북한산을 오르는 등반객들에겐 꽤나 친숙한 장소이기도 하다. 청와대와 가까워 역대 대통령들이 즐겨 찾던 식당(옛날민속집)이 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건물터가 바로 과거 옛날민속집 주차장 자리다. 발굴지에서 북한산 승가사까지는 약 3㎞. 행정구역상 종로구 구기동에 속하는 승가사(승가굴)는 통일신라 경덕왕 15년(756)에 창건돼 고려 현종 15년(1024)에 중창된 유서 깊은 사찰로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비봉에서 동쪽으로 1㎞쯤 떨어져 있다.
이 근방에서 또 주목해야 하는 장소가 장의사 터(현 세검정초 운동장)다. 신라 무열왕 6년(659)에 창건된 장의사는 연산군 12년(1506)에 폐사돼 현재는 세검정초 운동장에 당간지주(법회 등이 있을 때 거는 깃발의 받침대)만 남아 있다. 이번에 발굴된 건물지에서 남쪽 장의사 터까지 직선거리로 약 400m다.
삼각산은 고려 왕 남경 행차 필수 코스
고려 왕들이 삼각산에 행차한 기록은 ‘고려사’ ‘고려사절요’에서 다수 확인된다. 고려 왕이 남경 행차를 할 때 삼각산은 필수 코스였고, 대부분 승가굴과 장의사에 들러 재를 올렸고 문수사까지 방문하기도 했다.고려 왕실이 특별히 삼각산에 애착을 보인 이유는 왕조의 기틀을 세운 제8대 왕 현종(재위 1010~1031)과 관계가 깊다. 태조 왕건의 손자인 현종은 대량원군 시절 목종(재위 997~1009)의 어머니인 천추태후(헌애왕후)의 핍박을 받고 강제로 승려가 돼 삼각산 신혈사(진관사로 추정)에 머물렀다. 천추태후는 독이 든 술과 음식을 보내거나 한밤중에 자객을 보내 대량원군을 죽이려 했다. 다행히 신혈사의 노승이 땅굴을 파고 그 위에 와탑(침상)을 올려놓아 대량원군을 숨겨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른 현종은 자신이 은신했던 삼각산에 승가굴을 중창했고 그 후손들은 남경 행차 때마다 이곳을 예방했다.
고려는 도읍지인 개경 이외에 서경(평양), 동경(경주), 남경(서울)을 두었다. 기록에 따르면 남경은 문종 21년(1067)에 처음 설치됐고, 이어 왕위에 오른 숙종은 아예 남경 천도 계획을 세운 뒤 1104년 남경 행궁을 완공했다. 비록 천도를 단행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고려 왕들은 1년에 4개월씩 남경 행궁에 머물렀다.
남경 위치에 대해 ‘고려사’는 ‘동으로는 대봉까지, 남으로는 사리까지, 서로는 기봉까지, 북으로는 면악까지’라고 경계를 기록했다. ‘오래된 서울’의 저자인 최종현 전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대봉은 오늘날 응봉(창덕궁 뒷산), 사리는 세종대로 네거리(조선시대 황토현 언덕이 있던 자리), 기봉은 인왕산, 면악은 백악산(북악산)이며, 남경 궁궐은 경복궁 서북쪽에 있었을 것으로 봤다. ‘태조실록’에는 태조 3년(1394)에 궁궐 옛터가 너무 좁아 남쪽으로 새 궁궐터를 정하고, 거기서 동쪽으로 2리(800m)쯤 되는 곳에 종묘 터를 잡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신영동에서 출토된 기와 편에서 ‘승안3년’이라는 명문이 확인됐다. 승안3년은 1198년에 해당한다(왼쪽). 신영동에서 출토된 일휘문 수막새. [수도문물연구원 제공]
남경 행차에 나선 고려 왕들은 홍제천 물길을 거슬러 북한산 자락 장의사, 승가사, 문수사에 들러 불공을 드리거나 곧장 자하문 고갯길을 통해 궁궐로 가는 길을 이용했을 것이다. 신영동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건축 유적과 출토 유물은 바로 900여 년 전 세워진 남경의 흔적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고려 건축 유적 발굴된 신영동 부지 ‘현지보존’ 결정
종로구 신영동·구기동 일대는 4대문 안은 아니지만 ‘성저십리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보존방안’에 따라 신규 건축 시 매장문화재 표본·참관·시굴조사를 실시해야 하는 지역이다. 성저십리(城底十里)란 조선시대 행정구역 중 도성 밖 10리, 즉 4대문에서 약 4㎞ 이내 지역을 가리킨다. 4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신영동 1382㎡ 전체에 대해 ‘현지보존’을 결정했다. 서울 지역에서는 드물게 확인되는 고려 중기 건축유구군으로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현지보존이 결정되면 해당 지역을 최소 0.5m 이상 두껍게 흙으로 덮은 뒤(복토) 그 위에 건물을 지어야 하기에 사실상 지하층 개발은 포기해야 한다. 도시형생활주택을 신축하려던 사업시행자로서는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지하에 주차장, 기계실, 기타 편의시설을 넣겠다는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축법에 따라 다세대공동주택 세대수에 맞는 주차 대수 확보가 필수인데 지하층을 활용하지 못하면 1층에 상가시설 대신 주차장을 만들 수밖에 없다. 이미 발굴 조사 비용을 부담한 건축주에게 현지보존 또는 이전보존 비용이 추가되고 개발 제한에 따른 재산권 손실 등 이중삼중의 피해가 돌아간다.
2021년 한글 금속활자와 주야 겸용 시계 일성정시의 등 주요 유물이 출토된 인사동 유적을 발굴한 바 있는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 원장은 “의미 있는 유물이 출토되면 건축주는 일단 사색이 된다”며 “서울 4대문 밖에서도 적잖은 유적이 확인되고 있어 문화재 주변 지역 주민의 재산권 보호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종로구, 재산권 피해에 다각도로 대책 강구
땅만 파면 유물·유적이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닌 ‘한양도성’의 중심 종로구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문화재를 지키자니 재산권 침해가 불가피한 상황.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사업시행자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며 다각도로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2017년 완공된 공평동 센트로폴리스 건물이 좋은 예죠. 도시환경정비사업(재개발)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16세기 조선시대 건물지와 골목, 배수로 등이 발굴됐습니다. 문화재 보존과 도심 개발 사이에서 고민한 결과 나온 것이 ‘공평동 룰’입니다. 시행사가 지하 1층 전체 공간을 유적전시관으로 조성해 서울시에 기부채납하고 서울시는 상한 용적률을 높여 4개 층을 더 짓도록 허용하는 윈윈(win-win) 방식이었습니다. 다만 이 방법은 재개발사업이 아닌 일반 건축물 신축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정 구청장은 큰 건물을 지을 때는 발굴 조사로 피해를 본 만큼 보상해주면서 작은 건물을 짓는 개인에겐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으라고 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했다.
“매장문화재에 따른 피해를 보상해줄 수 있는 건축 관련 법령이나 조례의 일부 개정을 요청할 예정입니다. 예를 들어 현지보존 또는 이전보존으로 피해를 본 면적만큼 건축물 최고높이나 허용 용적률을 풀어주는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몇 차례 논의되다가 만 용적률거래제 도입도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종로구는 청와대 개방을 계기로 서촌~청와대~북촌을 잇는 가로축과 백악산~청와대~경복궁을 연결하는 세로축을 완성하고, 평창동문화마을에서부터 청와대, 고궁, 삼청동과 인사동 화랑가, 대학로 공연예술거리까지 연결하는 문화관광벨트를 추진하고 있다. 신영동에서 발굴된 고려 남경 관련 유적은 문화관광벨트 조성을 위한 훌륭한 역사 콘텐츠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오래된 서울’ 종로의 수장인 정문헌 구청장은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묘안을 찾고 있다.
“종로구는 문화재 보호·보존과 함께 창신동 남측 재개발사업 같은 도심 재창조사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유재산권 보호도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