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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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량 급감해 매년 20만t 남는데… 쌀 시장격리 의무화, 시장왜곡 우려

“정부의 인위적 개입, ‘쌀농사 늘려라’ 잘못된 시그널 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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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2-10-14 15: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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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화성시의 한 미곡처리장에서 관계자가 수매한 벼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경기 화성시의 한 미곡처리장에서 관계자가 수매한 벼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쌀 공급과잉이란 오랜 난제가 양곡관리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의 갈등으로 다시 수면 위에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정부의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를 강행한 가운데, 자칫 쌀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 주도로 10월 12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됐다.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매입하는 ‘시장격리 제도 의무화’와 논에 벼가 아닌 작물 재배를 유도하는 ‘타(他)작물 재배 지원’이 뼈대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정기국회 7대 핵심 입법과제로 내세운 양곡관리법 개정을 놓고 여야의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시장격리 의무화다. 현행 양곡관리법도 쌀이 예상 수요량의 3% 이상 더 생산되거나 가격이 5% 넘게 떨어지면 정부가 시장격리에 나서도록 규정한다. 이번 개정안은 기존에 정부 판단에 따라 이뤄지던 시장격리를 의무화한 것이다. 민주당은 “기후위기에 따라 농업문제는 아주 심각한 국제적 안보전략 문제가 될 수 있다”(이재명 대표 10월 12일 최고위원회 발언)며 ‘쌀값 안정화’를 개정 취지로 내세웠다. 여당과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시장격리 의무화가 “쌀 공급 과잉을 심화시키고 재정 부담을 가중시켜 미래 농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국민의힘 박정하 수석대변인 9월 29일 브리핑) “시장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정황근 농식품부 장관 10월 4일 국회 국정감사 발언)며 반대하고 있다.

    쌀 298만2000t 시장격리에 혈세 4조6780억 원 투입

    국내 쌀 산업이 직면한 근본 문제는 쌀 소비량의 지속적 감소와 생산 과잉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80.7㎏이었던 1인당 한 해 쌀 소비량은 2015년 62.9㎏, 2020년 57.5㎏을 거쳐 지난해 56.9㎏까지 떨어졌다. 지금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조만간 50㎏대가 붕괴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같은 시기 쌀 생산량도 2005년 476만t에서 2015년 420만t, 2020년 351만t, 지난해 388만t으로 감소했지만 소비량 급락으로 지속적인 생산 과잉 상태다. 지난 10년 동안 쌀 소비량이 연평균 1.4%씩 감소하는 동안 생산량은 0.7%씩 감소했다. 가공용으로 쓰이는 물량을 제외한 순수한 1인당 쌀 소비량의 감소율은 연평균 2.2%로 더 높다. 쌀농사가 평년작만 돼도 매년 20만t씩 초과 생산량이 발생한다는 게 정부 추산이다.

    이미 쌀 시장격리에 쓰인 비용도 막대하다. 농식품부가 국민의힘 정희용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5~2021년 9번에 걸쳐 쌀 298만2000t을 시장에서 격리하는 데 쓰인 혈세는 4조6780억 원에 달한다. 시장격리를 위해 매입된 쌀은 보관, 가공 등 모든 단계에서 추가 비용을 유발한다. 일부가 주정(酒精)용으로 팔리지만, 판매수입보다 손실이 더 큰 실정이다.



    시장격리가 의무화될 경우 재정부담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쌀 시장격리 의무화의 영향 분석’ 제하 보고서에서 이번 개정안으로 시장격리가 의무화될 경우, 2030년 초과 생산되는 쌀은 64만1000t, 시장격리에 필요한 비용은 한해 1조4000억 원 이상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KREI는 해당 보고서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안이 시행되면 쌀 가격 안정화에 따른 벼 재배농가의 소득 안정성이 제고되는 효과가 있는 반면, 벼 재배면적 감소 폭 축소와 쌀 소비 감소 폭 확대 등으로 과잉공급 규모가 점차 증대돼 격리에 소요되는 재정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정부가 의무적으로 과잉 생산된 쌀을 사들이면, 농가로선 재배면적을 줄일 유인이 적어져 결과적으로 수요·공급 불균형이 더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쌀 시장격리에 지나치게 많은 재정이 쓰이면 식량안보 확보, 농업 경쟁력 강화 등 다른 정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선 전쟁, 천재지변과 같은 위급상황에 대비해 국가가 일정량의 쌀을 확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다만 비상시 안정적 식량 확보를 위한 제도로 2005년 도입된 ‘공공비축제도’가 있다. 올해 정부는 공공비축미로 지난해보다 10만t 많은 45만t을 확보할 방침이다. 공공비축미도 당장 시장에 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당량의 쌀이 추가로 시장에서 격리되는 셈이다. 올해 시장격리 물량과 공공비축미는 도합 90만t으로 전망되는데, 올해 예상되는 전체 쌀 생산량의 23.3%에 달하는 양이다.

    “쌀값 안정 위한 시장 기능 정상화 필요”

    전문가들은 섣부른 시장격리 의무화보다 쌀 수요증대와 작물 다변화 등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농업경제학회장을 지낸 한두봉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쌀값 안정을 위해선 시장 기능의 정상화가 필요하다”면서 “쌀 공급은 많고 수요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수요를 제고하지 않은 채 당장 시장에서 물량을 뺄 생각만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의 자체 조절 기능을 정상화하지 않고 정부가 쌀을 사들이는 인위적 공급조절 정책은 자칫 농민들에게 ‘쌀농사를 늘려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시장격리 의무화를 둘러싼 논쟁은 사회적 갈등만 유발할 뿐, 근본적 문제 해결책이 되긴 어렵다고 본다”면서 “농업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기후변화 등 위기 속에서 식량안보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 교수는 “벼 외에 다양한 작물을 경작하게끔 유도해 쌀에 편중된 식량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며 “농가가 다양한 작물을 재배해도 쌀과 비슷한 정도의 소득을 거둘 수 있도록 정책을 잘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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