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주가를 좌우하던 공식이 ‘동학개미’의 활약으로 깨진 올해 주식시장. [뉴시스]
개인투자자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73조 원의 자금을 주식시장에 투입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바이코리아 펀드 열풍과 2007년 인사이트 펀드 붐이 일었던 시기 등 한국인이 주식투자에 몰입했던 경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번 자금 유입 규모는 과거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크다. 유튜브는 주식 관련 콘텐츠로 넘쳐나고, 2030세대의 주식투자 열풍을 다루는 언론 기사도 쏟아지고 있다.
코스피 상승한 해가 하락한 해의 2배
그동안 주식을 외면해오던 한국인이 주식투자를 늘리는 건 좋은 선택이라고 본다. 우선 금리가 너무 낮아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다. 또한 주주가 되면 성장하는 기업의 부를 나눠 가질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나마 큰 성취를 이룬 집단은 삼성으로 대표되는 일부 대기업과 네이버를 대표주자로 하는 몇몇 스타트업 정도가 아닐까 싶다. 직접 훌륭한 기업을 창업하는 건 성공 확률이 매우 낮을 테고 좋은 기업에 취업하는 것도 힘들지만, 좋은 기업의 주식을 매수함으로써 그 기업이 누리는 성장 과실을 나누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물론 주식투자를 하다 손해를 볼 수 있는 리스크가 존재하긴 하지만, 장기 투자로 그 위험을 낮출 수 있다.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지수인 코스피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1972년부터 올해까지 49개년 동안 코스피가 상승한 횟수는 34번, 하락한 횟수는 15번이다. 상승한 해가 하락한 해보다 2배 이상 많은데,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코스피가 2년 연속 하락한 경우조차 없었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보다 주식시장은 강했던 셈이다.
주식시장이 그동안 우상향으로 상승한 것은 주가지수가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반영해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코스피는 1980년 이후 연평균 8.0% 상승했고, 명목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10.7%에 달했다. 미국 S&P500지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평균 7.3% 상승했으며, 명목GDP는 6.3% 성장했다. 일본은 1960년대 이후 주가지수는 연평균 4.8%, 명목GDP는 연평균 6.2% 상승했다. 두 지표가 정확히 매칭되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주가는 경제성장률을 반영해왔다고 볼 수 있다. 한국처럼 성장률이 높은 국가는 주식의 장기 성과도 상대적으로 좋았고, 성장률이 저조했던 일본 주식시장은 수익률도 낮았다.
주가지수가 장기적으로 경제가 커가는 만큼 성장한다고 보면 주식투자에 대해서는 장기 낙관론을 견지하는 것이 타당하다. 경제는 웬만하면 뒷걸음질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경제성장을 시작한 1960년대 이래 경제가 역성장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1980년 2차 오일쇼크, 1997년 외환위기로 두 차례 역성장을 경험했고, 올해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역성장이 예상된다.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것은 개인의 일생에서 서너 차례 경험하는 매우 드문 현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장기적으로 경제는 성장하고 주가지수도 이를 반영해 상승해왔기 때문이다.
높은 가격에 사서 낮은 가격에 파는 초보자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상장 당일 최고가를 찍은 뒤 닷새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동아DB]
그동안 한국인이 주식투자에 실패한 이유는 너무 높은 가격에 투자해 큰 손실을 본 데다, 기다리지 못하고 주식을 나쁜 가격에 팔아 손실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주식투자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이기는 게임이건만, 사람들은 종종 반대로 행동하곤 한다. 투자는 불확실성에 대한 베팅이라, 늘 기대수익률과 위험을 저울질해야 한다. 그렇지만 강세장이 진행되면 손실을 두려워하는 마음보다 기회를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투자자를 압도하고, 이때 과도한 쏠림이 나타난다. 과거 한국인의 주식투자 탐닉은 주식형 펀드를 통해 나타났는데, 바이코리아 펀드와 인사이트 펀드 붐이 일던 시기에 한국인들의 투자는 코스피가 바닥에서 최소 70% 이상 상승한 이후에 집중됐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주식시장으로 들어온 73조 원 중 주가가 급락한 3~4월에 유입된 30조 원가량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매우 이질적 성격의 자금이다. 과거 주식시장 바닥 국면에서는 늘 외국인이 주식을 매집했고, 한국인 투자자는 주가가 급등한 후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이번에는 한국인들이 바닥에서 주식을 매수했다. 3~4월 공포에 맞서 주식을 매수한 자금은 ‘스마트 머니’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본다. 코스피가 2000포인트를 넘어선 이후 유입된 나머지 43조 원의 자금은 과거와 비슷한 성격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 공모주 열풍을 봐도 과도한 쏠림 징후가 나타난다. 투자 세계에서 확실한 것은 없다. 투자로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불확실성에 대한 베팅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공모주를 받은 후 자동적으로 상한가를 몇 번 친다는 공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방탄소년단(BTS) 소속사인 빅히트가 10월 15일 상장한 이후 조정을 받고 있다. 투자자들을 실망시켰다는 평가가 많다. 주가라는 건 오를 때도 있고 떨어질 때도 있는지라, 상장 직후 며칠간의 주가 흐름만으로 투자 성패를 논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 이 기업이 앞으로 투자자의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주가의 장기 추세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모주 투자가 당연히 ‘따상상’(공모가 대비 2배, 상장 후 두 번 상한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주식을 산 투자자가 적잖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예상 틀려도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는 게 중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범주에서 세상을 보기 마련인데, 3월 이후 몇 개월간의 급등 과정만 보고 ‘주식시장이 원래 이렇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최근 경험한 급등 장세는 외환위기 직후,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와 같이 10년에 한 번 정도 오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라고 봐야 한다. 통상 주가가 급락한 직후의 반등 장세가 가파르게 나타나는 법인데, 2300~2400포인트를 넘나드는 현 레벨에서는 코스피가 저평가돼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그럼 지금 시장은 버블인가. 알 수 없다. 지금 시장이 버블이라고 할지라도 그 거품이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다. 또 주식투자가 이를 정확히 알아야 돈을 벌 수 있는 게임도 아니라고 본다. ‘한꺼번에 사지 말고 분할 매수하라’ ‘한 종목에 다 투자하지 말고 분산투자하라’는 조언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공자님 말씀’ 같은 이런 조언에는 투자라는 행위 자체가 100%의 인과율이 작동하는 확실성의 세계가 아니라는 철학이 내재돼 있다.
지식이나 통찰은 돈을 벌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투자란 결코 미래를 맞추는 게임이 아니다. 누구도 시장의 미래를 알 수 없다. 한두 번 맞힐 수 있지만 늘 예상이 적중할 수는 없다. 오히려 자신의 예상이 틀렸을 경우라도 그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는 게 중요하다. 투자하다 보면 약세장을 피해갈 수 없다. 약세장이 오더라도 내재가치 대비 저평가돼 있고, 배당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주식을 보유하면서 어려움을 견디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주식투자는 만기가 있는 게 아니고, 설령 조정이 있더라도 주식을 팔지 않는다면 손실이 확정되는 것도 아니다. 앞서 논의한 것처럼 시간은 투자자 편이다. 앞서 과도한 쏠림이 있던 시기의 잘못된 투자의 예로 제시한 바이코리아 펀드와 인사이트 펀드의 경우도 환매하지 않고 계속 보유했다면 결국 이익을 보고 나올 수 있었다.
투자의 성패는 공모주 ‘따상상’을 활용하는 것도, 대주주 과세 강화의 영향을 받을 ‘연말 장세’를 정확히 예측하는 데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시장이 과열됐을 때 건전한 회의주의를 견지하고, 혹시라도 고점에서 주식을 샀을 경우라도 어려움의 시기를 감내할 수 있는 여유 자금으로 투자해야 한다. 너무도 당연해 어쩌면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런 상식적 접근 이외에 장기 투자의 승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