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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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개시한 화웨이 제재, 中 전문가 “반도체는 원폭만큼 중요”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0-09-16 11: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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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선전에 있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 본사의 모습. [위키피디아]

    중국 선전에 있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 본사의 모습. [위키피디아]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이자 세계 2위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중국의 화웨이(華爲)는 최근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 수십 발의 총탄에 구멍이 뚫린 옛 소련 전투기 IL-2의 비행 모습 사진을 올렸다. 이 전투기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146차례 비행하는 동안 나치 독일로부터 모두 600여 발의 총탄 세례를 받았지만 격추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화웨이의 엽서와 컵 등 각종 기념품에도 이 전투기가 새겨져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통신장교 출신인 화웨이의 창업자 런정페이 회장은 이 전투기를 화웨이의 상징으로 생각해왔다. 화웨이가 이 사진을 올린 의도는 미국 정부의 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 전투기처럼 결코 추락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끝까지 버티겠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의 로고. [화웨이 홈페이지]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의 로고. [화웨이 홈페이지]

    화웨이가 9월 15일부터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제재 조치가 시행됨에 따라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자국의 소프트웨어와 기술 및 장비를 조금이라도 활용한 외국 반도체 기업들은 상무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만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조치를 내렸다. 미국의 소프트웨어와 기술 및 장비를 안 쓰는 반도체 기업은 전 세계에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만큼 미국 정부가 화웨이에 대해 사실상 ‘사형선고’를 내린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화웨이는 총탄 세례가 아닌 대공포를 직격으로 맞은 셈이다. 

    이에 따라 화웨이는 스마트폰, 랩톱, 태블릿PC, 스마트TV, 이동통신 기지국, 통신 장비, 서버 등 모든 주력 제품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할 반도체 부품을 새로 구하기가 불가능해졌다. 미국 정부는 이번 조치를 위반하는 외국 기업들에 엄청난 처벌 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제재 위반 시 최대 20년의 실형과 위반 건당 100만 달러(11억8000만 원)의 벌금에 해당하는 형사처분을 받는다. 또 위반 건당 거래 금액의 최대 2배를 벌금(행정처분)으로 내야 한다. 특히 미국 정부는 제재를 위반하는 기업에 직접적인 조치까지 내린다는 방침이다. 

    화웨이는 최대한 비축한 재고 부품으로 버틴다는 계획이다. 화웨이는 그동안 대만에 전세기를 보내는 등 각국으로부터 각종 반도체 부품을 대거 구입해왔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화웨이가 앞으로 6개월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봉황망 등 중국 언론 매체들은 “확보한 재고가 소진되면 화웨이의 스마트폰과 통신장비 사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또 화웨이가 일정 기간 생존하더라도 다른 기업들처럼 새로 시장에 나오는 첨단 제품을 쓸 수 없게 돼 시장 경쟁력이 엄청나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제재는 화웨이의 5G 네트워크 사업과 스마트폰 사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며 “화웨이가 비축해 놓은 핵심 반도체 칩도 내년 초면 바닥이 난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의 니콜 펭 부사장은 “화웨이의 스마트폰 사업이 올해까지는 살아남겠지만, 앞으로 2년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지각 변동

    중국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SMIC의 상하이 본사 모습. [위키피디아]

    중국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SMIC의 상하이 본사 모습. [위키피디아]

    미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화웨이 뿐만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지각 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화웨이는 지난해 2억4050만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했다. 미국의 퀄컴, 대만의 TSMC, 한국의 삼성전자 등 화웨이가 고객인 세계적인 IT 기업들도 단기적으로 매출이 상당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화웨이와 거래 중단으로 한국, 일본, 대만 기업의 손실은 2조8000억 엔(31조24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 기업들은 13조원에 달하는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화웨이에 스마트폰용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해왔다. 삼성전자는 연간 전체 매출 중 3.2%에 해당하는 7조3700억 원을, SK하이닉스는 연간 매출의 11.4%인 3조원을 벌어들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기업들은 화웨이 전체 부품 공급의 30%를 차지한다. 소니는 화웨이에 스마트폰 이미지센서를, 무라타제작소는 MLCC(적층세라믹콘덴서), 기옥시아는 메모리반도체를 화웨이에 판매해왔다. 화웨이에 연간 6조2000억 원의 반도체를 생산해 수출해온 대만의 TSMC, 4200억 원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판매해온 대만의 미디어텍도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국 기업들도 막대한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 화웨이가 미국 기업들로부터 수입한 반도체 부품은 187억 달러(22조2000억 원)에 달한다.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은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으로 생기는 매출 감소를 메울 대체 거래처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한국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매출이 줄어드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이익을 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화웨이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퇴출당하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점유율 일부를 가져올 수 있다. 화웨이의 빈자리를 중국의 중저가 브랜드와 애플·삼성전자 등이 차지하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전체 반도체 수요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화웨이가 시장 점유율 1위인 5G 통신장비 시장에선 삼성전자의 혜택이 예상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 9월 7일 미국 1위 통신사업자이자 이동통신 매출 기준 세계 1위 통신사업자인 버라이즌과 66억 4000만 달러(7조9983억 원)규모의 5G 네트워크 장비 공급계약을 맺었다. 이 금액은 한국 통신장비 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수출 계약이다. 

    미국 정부는 내친김에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中芯國際·중신궈지)까지 제재 조치를 내릴 것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국방부가 인민해방군과 협력해왔다는 이유를 들어 상무부에 SMIC를 블랙리스트에 올릴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SMIC가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되면 미국 기업들이 부품판매 등으로 SMIC와 거래를 할 때 미국 정부의 사전승인(라이선스 발급)을 받아야만 한다. 파운드리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체)의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을 말한다. 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보면 대만의 TSMC(53%), 삼성전자(19%), 미국의 글로벌 파운드리(8%), 대만의 UMC(8%), SMIC(5%) 등의 순이다.

    SMIC의 최대 고객사, 화웨이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의 로고. [트위터]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의 로고. [트위터]

    특히 SMIC의 최대 고객사는 화웨이다. 화웨이는 반도체 생산을 맡겨오던 대만 TSMC와의 거래가 미국 정부의 제재로 중단되자 그 대안으로 SMIC와의 협력 관계를 대폭 강화해왔다. 중국 정부도 지난 5월 SMIC에 22억 달러를 투자한데 이어 지난 8월에는 최대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해주는 조치까지 내렸다. 중국 국영기업으로 분류되는 SMIC는 지난 7월 ‘중국의 나스닥’으로 불리는 상하이증권거래소 과학혁신판 2차 상장을 통해 530억 위안(9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모으는 등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기술력 향상에 박차를 가해왔다. SMIC는 현재 14나노미터(㎚·10억분의 1m)중심의 파운드리 공정을 연말까지 7나노미터로 업그레이드해 자국의 팹리스 기업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방침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SMIC 제재 검토는 화웨이를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정부가 SMIC에 대한 제재 조치를 내린다면 오는 2030년까지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가 되겠다고 선언한 삼성전자와 중국 고객 비중이 높은 SK하이닉스시스템 등이 혜택을 볼 수 있다. 

    특히 중요한 점은 미국 정부가 SMIC에 제재 조치를 내릴 경우,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높인다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屈起·일어섬) 계획은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 정부의 SMIC 제재 검토에 대해 “미국이 중국 기업을 노골적으로 괴롭히고 있다”면서 “미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 기업에 대해 각종 제재를 하고 있는 것은 적나라한 패권주의적 행태”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미국 정부가 SMIC에 제재 조치를 내린다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의 급소를 정밀 타격하는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IT 분야를 비롯한 중국 산업 전반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의 각종 제재조치로 중국 반도체 자급률은 지난해 2014년 대비 0.6%p 증가한 15.7%에 그쳤으며 2024년 자급률도 20.7%가 될 전망이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최대 수입국이다. 지난해 3055억 달러(363조 원)어치의 반도체를 수입했다. 때문에 중국으로선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는 것이 가장 긴요한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중국 과학기술전략정세학회 천징(陳經)연구원은 “반도체는 미·중 기술 냉전의 핵심”이라면서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독립은 원자폭탄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에 실패한다면 미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 패배할 것이 분명하다.

    삼성전자가 가동하고 있는 세계 최대규모의 반도체 공장인 평택 2라인.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가동하고 있는 세계 최대규모의 반도체 공장인 평택 2라인.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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