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을 이끌고 있는 추무진 이사장. [홍중식 기자]
재임 기간 중 결핵과 소아마비, 에이즈 퇴치에 힘쓴 고 이종욱(1945~2006) 제6대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뜻을 이어 2006년 8월 18일 설립된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은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개발도상국, 북한, 재외동포, 외국인근로자 등에 대한 보건의료 지원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확인한 만큼, 재단의 역할은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추무진(60)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장을 만나 코로나19 사태부터 물어봤다.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추 이사장은 대한의사협회장을 거쳐 2018년 제5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국가별 맞춤형 보건의료 지원사업
-일상과 방역이 함께하는 ‘위드(With)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종식된다 해도 새로운 감염병의 유행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건강한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요.“얼마 전 산림청, 아시아산림협력기구,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기후변화 및 코로나19 이후 시대 보건의료·산림 국제협력 분야에서의 미래지향적 상호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산림청의 제안을 계기로 보건의료와 사람, 산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됐죠. 코로나19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박쥐에서 시작해 중간 동물을 거쳐 인간에게 왔습니다. 메르스와 에볼라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계속해서 새로운 감염병에 노출되는 것은 환경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무분별한 산림 훼손은 기후변화를 일으킵니다. 2008년 WHO에서는 기후변화와 인간 건강의 상관관계를 정리한 바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식량 위기 발생, 수인성 전염병 급증, 폭염, 물 부족, 전염병 매개체의 지리적 분포 변화 등은 결과적으로 유병률 상승, 사망자의 증가로 이어집니다. 인류의 건강과 미래를 생각한다면 우리 모두 환경 보호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은 고 이종욱 WHO 사무총장의 유지를 계승한 기관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보건기구 수장을 지낸 이종욱 박사의 업적과 후대에 남긴 영향이 궁금합니다.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종욱 박사는 미국 하와이대에서 보건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며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습니다. 36세 되던 해에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사모아로 건너가 의료 봉사 활동을 펼쳤고 더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싶어 WHO 서태평양 지역사무처 한센병 자문관으로 국제기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에이즈, 소아마비 등의 질병으로부터 지구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애썼고 조류독감의 예방 및 확산 방지 대책 마련에 앞장섰습니다. WHO 사무총장으로 재임 중에는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생하자 새로운 전염병, 재난에 대한 글로벌 대응 강화를 위해 글로벌 전략보건운영센터를 설립하고 국제보건규칙개정 및 전염병 경보단계 제정을 통해 글로벌 질병 대응체계를 강화했습니다. 전략보건운영센터는 현재 WHO 핵심 컨트롤 타워로 세계의 감염병 정보를 모으고, 대응 전략을 세우는 핵심 역할을 수행합니다.”
추무진 이사장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국가 간 연대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먼저 개발도상국, 북한, 재외동포, 외국인근로자 등에 대한 보건의료 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니다. 개발도상국 보건의료 지원사업은 협력국의 보건의료 환경을 개선하고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 구축이 목표입니다. 현재 라오스, 캄보디아,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미얀마, 우즈베키스탄, 가나, 우간다 등 8개국에서 해외사무소를 운영 중인데, 올해 안에 베트남과 스리랑카를 추가해 10개국으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북한 보건의료 지원사업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수행 중인데 북한 보건의료에 관심이 있는 단체나 개인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보건의료 아카데미 운영, 보건의료지원 네트워크 강화사업, 북한백서 발간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재외동포 보건의료 지원사업은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1세대를 위한 아리랑요양원 운영, 사할린 거주 강제징용 1세대를 위한 찾아가는 의료서비스, 파독근로자 방문보건서비스 형태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중 우즈베키스탄 아리랑요양원은 현지 한인사회 요청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올해 3월 10주년을 맞았는데 우즈베키스탄에서 부지와 건물을 제공받아 리모델링한 뒤 우리나라 요양 시스템을 도입해 만들었습니다. 현지 의사를 고용하고 치료실을 만들고 식단 및 운동, 건강까지 관리합니다. 외국인근로자 보건의료 지원사업 또한 중점 사업입니다. 14개 국어로 건강 정보를 제공하고 예방접종을 지원하며 무료진료소에 의약품 및 의료소모품 등을 지원합니다. 또한 해외긴급구호 보건의료 지원사업, 의료물자 수집 지원사업, 이종욱 박사 관련 기념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알려준 또 하나의 교훈은 지구촌 어느 한 곳도 의료 사각지대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개발도상국 보건의료 지원사업은 큰 의미를 지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들을 진행하십니까.
“사업 진행 시 현지 보건부와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현지 상황에 가장 부합하는 사업 방향을 설정합니다. 나라마다 중점사업이 다른 이유입니다. 하지만 ‘협력국의 보건의료 환경 개선과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제도 구축’이라는 목표 아래 공통적으로 추진하는 사업들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나라처럼 건강보험제도가 구축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1차 보건의료체계를 강화해 감염병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손 씻기 같은 개인위생에서 출발해 예방접종 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도록 현지인들의 인식 개선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산전산후 의료시설을 이용해 모성과 영유아 사망률을 낮출 수 있도록 모자보건증진에도 노력하고 있으며 수출입은행 유상차관 건립 병원에 대한 운영 컨설팅, 의료기기 관리 운영체계 지원, 건강보장제도 정책협력사업 등도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종욱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통해 협력국의 보건 인력 교육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보건의료 향상에 기여하는 글로벌 파트너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은 개발도상국의 모자보건증진에도 앞장서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보건의료가 취약한 나라들에서 가장 먼저 취한 조치가 국경 봉쇄입니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는 거죠. 코로나19 극복을 위해서는 국가 간 연대가 필요합니다. 우리 재단에서는 사업비를 긴급 편성해 협력국에 진단키트, 개인방호물자, 방역 물자 및 의료장비 지원, 지역사회 감염병 예방을 위한 식수 관리, 위생 교육 등을 실시했습니다. 외교부, 복지부 등과 연계해 아세안 10개국 진단역량강화 지원사업도 추진했고요. 앞으로의 방향 정립을 위해 전문가들과 간담회도 가졌고, K-방역을 알고 싶어하는 분들을 위해 5회에 걸쳐 웹세미나도 개최했습니다. 우리나라만의 독창적 대응 방법인 선별진료소, 드라이브스루, 워크스루 등을 소개하고 위기대응전략, 진단·역학·격리조사, 치료임상경험환자관리, 방역정책 등을 공유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재단에서 추가해야 할 사업은 무엇입니까.
“감염병 대응 역량강화를 위한 사업들이 추가됩니다. 기존 중점사업이던 1차 보건의료체계를 더욱 강화하고 감염병 조기 발견, 격리 및 이송 시스템 구축 등 감염병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려 합니다. 사업지역 내 환경 개선 및 보건의료 인프라 개선, 이종욱 펠로우십을 활용한 보건의료인력 대상 역량강화, 비대면 교육과 온라인 화상회의 활성화, 해외사무소 역량강화 등에도 주력할 계획입니다.”
-이사장과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남은 1년여의 임기 동안 보다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싶은 사업이나 활동은 무엇입니까.
“의과대학 시절부터 가톨릭 학생회 활동을 하며 봉사활동을 해왔고 1990년대 이후 의학 분야의 비약적 발전을 목격하면서 이제 우리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2016년 대한의사협회장으로 재직 당시 이주노동자, 탈북민 등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다 재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2018년 취임 이후 재단의 2016년-2020년 중장기 발전계획에 따라 내실 있게 사업을 추진해왔으며 현재는 2021-2025년 중장기계획을 마련 중에 있습니다. 의료시설융합사업TF를 통한 유무상 연계사업을 강화하는 한편 북한, 재외동포, 외국인근로자 보건의료 지원사업을 확대하고 이종욱 기념사업을 활성화 및 다양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보건의료와 관련해 재단의 역할도 커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사장으로서 보람도 느낄 것 같습니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의 직원은 해외사무소를 포함해 93명입니다. 이렇게 적은 인원, 적은 예산임에도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사무소에 근무하는 분들은 협력국에서도 가장 어려운 지역에 가서 사명감을 갖고 일합니다. 의료시설 설립부터 의료기자재 운영 및 장비 보수, 의료종사자 교육까지 지속성을 가지고 일하기에 지역 친화적이며 신뢰도가 높습니다. 앞으로도 보건의료 향상에 기여하는 글로벌 파트너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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