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화, 세분화되는 세상 흐름에 맞춰 술 산업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소맥’을 즐겨 마셨지만, 요즘은 ‘진로이즈백’ 같은 복고 소주가 인기다. 전 세계의 다양한 맥주를 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도 있다. 수제맥주, 내추럴와인, 스파클링 막걸리 등 새로운 카테고리의 술이 속속 나오고도 있다.
전통주도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다. 제조면허 완화, 인터넷 판매 허가 등 정부 정책에 힘입어 젊은이들이 전통주 산업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지역성을 강조하면서도 새로운 발상과 참신한 기획력이 돋보이는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신(新) 전통주의 주 소비층은 밀레니얼(M) 세대다. 전통주 산업의 주력 부대가 중장년층에서 청년층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흥미로운 양조장이 생겼다. 상가 건물 2층을 빌려 50㎡ 남짓한 공간을 양조장으로 개조하고, 나머지는 사무실로 꾸민 작고 귀여운 ‘C막걸리’다. 이곳 대표는 최영은(40) 씨. 한국외대에서 네덜란드어를 전공하고 벨기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금융인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파스텔 톤의 양조장 인테리어에서 북유럽 감성이 살짝 느껴진다.
최 대표가 개포동에 양조장을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첨단을 달리는’ 강남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고 한다. 사실 40~50년 전만 해도 강남 사람들도 양조장에서 받아온 막걸리를 사발에 따라 마셨을 테니까. 3년의 준비를 거쳐 양조장 문을 열었다. 십 수년 간 해외에서 지내며 수많은 외국 술을 맛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제조 기법을 만들어나갔다.
C막걸리는 ‘개포동 C막걸리’ 시리즈를 선보인다. 모든 막걸리에 C를 붙인 이유는 창조(creative), 다채로움(colorful), 세계인(cosmopolitan) 등의 의미를 담고 싶어서다. 동서양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재료와 색감에 전통에 기반한 창조적 술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지금까지 모두 4종의 C막걸리를 선보였는데, 대표 제품은 ‘시그니처 큐베(Signature Cuvee)’다. 국산 쌀에 전통 누룩을 넣고 항아리(cuvee)에서 숙성한, 인공감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프리미엄 제품이다. 특이한 점은 노간주나무 열매(juniper berry)가 들어간다는 것. 노간주나무 열매는 진(Gin)의 주원료이자 어원이 되는 허브다. 시중에 유통되는 것은 대부분 수입산인데, 최 대표는 서울 제기동 약령시장에서 국산을 구해온다고 한다.
시그니처 큐베를 맛봤다. 진 특유의 상큼함이 느껴지지만, 달콤함과 부드러움도 살아있다. 건포도가 들어갔기 때문으로, 노간주나무 열매의 찌르는 맛을 건포도가 부드럽게 감싸준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진을 우리 막걸리와 조합해 만들어본 제품인 것. 최 대표는 “극동의 한국과 유럽 끝자락에 있는 네덜란드 문화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레몬그라스와 당근을 넣어 발효한 ‘옐로우 막걸리’는 당근 특유의 단맛을 레몬의 상큼함이 잡아준다. 와인 감성의 ‘퍼플 막걸리’는 블루베리와 와인 효모로 만든 제품이다. ‘그린 막걸리’는 개똥쑥과 케일을 넣어 만든 제품. 녹즙 색깔이라 언뜻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한번 맛을 보니 부드러운 질감과 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쑥떡 같기도 하고, 녹차 아이스크림 같기도 했다.
C막걸리는 체험 프로그램도 예약제로 운영한다. 양조장을 둘러보고 막걸리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다. 최 대표는 “전통주에 다양한 외국 문화를 접목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 술이 발전하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으리란 생각에 양조장을 개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여름 전통주업계에서 화제가 된 술이 하나 있다. 바로 경기 양평의 ‘부자 진’이라는 증류주다. ‘부자(父子)’는 아버지와 아들이고, ‘진(Gin)’은 네덜란드에서 시작돼 영국에서 꽃을 피운 술을 가리킨다.
진은 증류주에 노간주나무 열매를 중심으로 다양한 허브를 넣어 다시 한 번 증류해 만든다. 네덜란드 의사 실비우스가 1660년 이뇨 작용을 돕고자 개발했고, 이후 네덜란드 귀족인 오렌지 공이 명예혁명으로 영국 왕위에 오르면서 진이 영국으로 전파됐다고 한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는 유럽 전통 방식과는 다르게 제조하는, 크래프트 진 문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했다. 영국과 싱가포르의 골드만삭스에서 활동했던 금융인 조동일(39) 씨가 국산 쌀로 만든 증류주에 부친 조부연 씨의 양평 유기농 허브농장에서 가꾼 재료를 넣어 진을 만들고 있다. 한국에서, 오로지 한국에서 난 허브만 가지고 제조한 최초의 크래프트 진이란 점에서 전통주업계가 크게 주목하고 있다.
조동일 씨는 영국과 싱가포르에서 증류 기술을 익혔다. 캐모마일, 라벤더, 레몬 베버나, 노간주나무 열매 등 서양 허브와 한라봉, 헛개나무, 솔잎 등 한국 허브 15종을 넣어 진을 만든다. 한번 마셔봤더니 박하와 같은 민트가 주는 맛에 상큼한 감귤계의 단맛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조동일 씨는 영국에서 생활하며 고객들과 진을 마시는 일이 잦았다. ‘왜 한국에는 진이 없나’ 하는 생각에 4년 전 본인이 직접 진 제조에 뛰어들었다. 올해 첫 제품 ‘부자 진 서울’을 출시한 그는 “한국산 허브의 맛을 듬뿍 품은 ‘코리안 크래프트 진’을 세계로 수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러한 술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발상과 실행이 필요하다는 것. 아이디어도 남달라야 하고, 원료를 구하려면 숱하게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래서 대기업은 만들 수 없는 술이다. 국산 원료가 대기업에 공급될 정도로 양이 많지 않은 데다, 무엇보다 술 만드는 사람의 따뜻한 감성을 녹여내야 하기 때문이다. 가성비가 아닌 가심비를 추구하는 이러한 술이 획일화된 주류 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이끄는 모습을 보면, 국내 술 산업이 많이 달라졌음을 절감한다.
전통주도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다. 제조면허 완화, 인터넷 판매 허가 등 정부 정책에 힘입어 젊은이들이 전통주 산업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지역성을 강조하면서도 새로운 발상과 참신한 기획력이 돋보이는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신(新) 전통주의 주 소비층은 밀레니얼(M) 세대다. 전통주 산업의 주력 부대가 중장년층에서 청년층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북유럽 감성의 강남 양조장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C막걸리’ 양조장(왼쪽)과 C막걸리 제품들. [명욱 제공]
최 대표가 개포동에 양조장을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첨단을 달리는’ 강남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고 한다. 사실 40~50년 전만 해도 강남 사람들도 양조장에서 받아온 막걸리를 사발에 따라 마셨을 테니까. 3년의 준비를 거쳐 양조장 문을 열었다. 십 수년 간 해외에서 지내며 수많은 외국 술을 맛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제조 기법을 만들어나갔다.
C막걸리는 ‘개포동 C막걸리’ 시리즈를 선보인다. 모든 막걸리에 C를 붙인 이유는 창조(creative), 다채로움(colorful), 세계인(cosmopolitan) 등의 의미를 담고 싶어서다. 동서양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재료와 색감에 전통에 기반한 창조적 술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지금까지 모두 4종의 C막걸리를 선보였는데, 대표 제품은 ‘시그니처 큐베(Signature Cuvee)’다. 국산 쌀에 전통 누룩을 넣고 항아리(cuvee)에서 숙성한, 인공감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프리미엄 제품이다. 특이한 점은 노간주나무 열매(juniper berry)가 들어간다는 것. 노간주나무 열매는 진(Gin)의 주원료이자 어원이 되는 허브다. 시중에 유통되는 것은 대부분 수입산인데, 최 대표는 서울 제기동 약령시장에서 국산을 구해온다고 한다.
최영은 C막걸리 대표.
레몬그라스와 당근을 넣어 발효한 ‘옐로우 막걸리’는 당근 특유의 단맛을 레몬의 상큼함이 잡아준다. 와인 감성의 ‘퍼플 막걸리’는 블루베리와 와인 효모로 만든 제품이다. ‘그린 막걸리’는 개똥쑥과 케일을 넣어 만든 제품. 녹즙 색깔이라 언뜻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한번 맛을 보니 부드러운 질감과 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쑥떡 같기도 하고, 녹차 아이스크림 같기도 했다.
C막걸리는 체험 프로그램도 예약제로 운영한다. 양조장을 둘러보고 막걸리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다. 최 대표는 “전통주에 다양한 외국 문화를 접목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 술이 발전하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으리란 생각에 양조장을 개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만든 ‘진’
한국 최초의 크래프트 진인 ‘부자 진 서울’(왼쪽)과 ‘부자 진’을 운영하는 조부연·조동일 부자. [부자 진 제공]
진은 증류주에 노간주나무 열매를 중심으로 다양한 허브를 넣어 다시 한 번 증류해 만든다. 네덜란드 의사 실비우스가 1660년 이뇨 작용을 돕고자 개발했고, 이후 네덜란드 귀족인 오렌지 공이 명예혁명으로 영국 왕위에 오르면서 진이 영국으로 전파됐다고 한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는 유럽 전통 방식과는 다르게 제조하는, 크래프트 진 문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했다. 영국과 싱가포르의 골드만삭스에서 활동했던 금융인 조동일(39) 씨가 국산 쌀로 만든 증류주에 부친 조부연 씨의 양평 유기농 허브농장에서 가꾼 재료를 넣어 진을 만들고 있다. 한국에서, 오로지 한국에서 난 허브만 가지고 제조한 최초의 크래프트 진이란 점에서 전통주업계가 크게 주목하고 있다.
조동일 씨는 영국과 싱가포르에서 증류 기술을 익혔다. 캐모마일, 라벤더, 레몬 베버나, 노간주나무 열매 등 서양 허브와 한라봉, 헛개나무, 솔잎 등 한국 허브 15종을 넣어 진을 만든다. 한번 마셔봤더니 박하와 같은 민트가 주는 맛에 상큼한 감귤계의 단맛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조동일 씨는 영국에서 생활하며 고객들과 진을 마시는 일이 잦았다. ‘왜 한국에는 진이 없나’ 하는 생각에 4년 전 본인이 직접 진 제조에 뛰어들었다. 올해 첫 제품 ‘부자 진 서울’을 출시한 그는 “한국산 허브의 맛을 듬뿍 품은 ‘코리안 크래프트 진’을 세계로 수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러한 술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발상과 실행이 필요하다는 것. 아이디어도 남달라야 하고, 원료를 구하려면 숱하게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래서 대기업은 만들 수 없는 술이다. 국산 원료가 대기업에 공급될 정도로 양이 많지 않은 데다, 무엇보다 술 만드는 사람의 따뜻한 감성을 녹여내야 하기 때문이다. 가성비가 아닌 가심비를 추구하는 이러한 술이 획일화된 주류 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이끄는 모습을 보면, 국내 술 산업이 많이 달라졌음을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