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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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21세기 소녀스타’냐 ‘틱톡의 여왕’이냐

역대급 여성 신인 둘의 각축장이 된 그래미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20-01-15 10: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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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리 아일리시(왼쪽). 리조. [AP=뉴시스]

    빌리 아일리시(왼쪽). 리조. [AP=뉴시스]

    오는 2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리는 제62회 그래미는 후보가 발표된 지난해 11월부터 국내에도 관심사였다. ‘Map OF THE SOUL : PERSONA’를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리는 등 비영어권 아티스트로서는 말 그대로 눈부신 활약을 보였던 방탄소년단이 후보 선정 여부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는 한 부문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뒤이어 열린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3개 부문을 수상하며 역으로 그래미의 보수성을 드러냈다. 

    미국 음악 산업 관계자들의 단체인 '미국레코딩예술과학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Recording Arts and Science·NARAS)' 회원 중 약 1300명의 투표로 이뤄지는 후보 및 수상자 선정 기간은 지난 3일까지였다. 3주 넘는 시간동안 수상자 내역이 비밀에 부쳐진 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투표 마감 이후 미국 언론은 앞 다퉈 수상자 예측을 내놓고 있다.

    핵심 4개상 후보에 나란히 오르다

    [GettyImages]

    [GettyImages]

    올해 그래미의 흥미로운 점은 신인의 강세다. 주요 부문에 어느 해 보다 많은 신인이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그래미의 애정을 담뿍 받던 테일러 스위프트나 아델 같은 음악가들이 지난해 새로운 음악을 발표하지 않은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아무튼 처음 그래미에 이름을 올린 뮤지션 중 누가 가장 많은 트로피를 가져갈 지를 놓고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래미의 시상 부문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공로상과 레전드상이 포함된 특별 공로상 부문과 팝, 록, 재즈, 힙합 등으로 나뉜 장르 부문, 그리고 제너럴 필드라 불리는 부문이다.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올해의 신인, 이렇게 네 개의 트로피가 주어지는 제너럴 필드는 그래미의 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로 올해의 레코드는 아티스트, 프로듀서, 엔지니어 등 노래의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고 올해의 노래는 작사, 작곡가에게 주어진다. 노래를 ‘녹음의 결과물’로 보느냐 ‘창작의 결과물’로 보느냐의 차이다. 

    제너럴 필드에서도 가장 영광스러운 부문은 올해의 앨범. 그래미는 제너럴 필드의 후보를 지난해부터 다섯에서 여덟으로 늘렸다. 올해는 본 이베어, 뱀파이어 위크엔드, 라나 델 레이, 빌리 아일리시, 리조, 아리아나 그란데, 허(H.E.R.), 릴 나스 엑스가 후보로 올랐다. 



    이중 신인은 빌리 아일리시, 리조, 릴 나스 엑스까지 셋. 이들은 당연히 신인상 후보이기도 하고 빌리 아일리시와 리조는 각각 'Bad Guy'와 'Truth Hurts'로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레코드 후보에도 올랐다. 두 여성 신인이 제너럴 필드의 네 부문에서 모두 각축을 벌이게 된 것이다. 그래미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21세기 소녀스타 빌리 아일리시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2019) 앨범재킷 속 빌리 아일리시 [AP=뉴시스]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2019) 앨범재킷 속 빌리 아일리시 [AP=뉴시스]

    빌리 아일리시와 리조는 음악도, 배경도, 인종도 다르다. 우선 빌리 아일리시는 'Bad Guy'가 담긴 데뷔 앨범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로 2019년 베스트셀러 앨범의 주인공이 된 신예다. 또한 이 앨범은 음악평론 사이트 메타 크리틱에서 81점, 영국 음악 저널 NME에서 5점 만점을 받는 등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을 거뒀다. 

    ‘Bad Guy’는 2019년 최대 히트곡이라고 할만한 릴 나스 엑스의 'Old Town Road'(19주 연속 빌보드 핫100 1위)와 각축을 벌인 끝에 1위를 탈환하기도 했다. 이 노래는 21세기에 태어난 뮤지션(빌리 아일리시는 2001년 생)의 첫 빌보드 1위곡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일렉트로닉에 기반 한 그녀의 음악은 얼핏 들으면 트렌디한 사운드를 담고 있지만 가사 및 뮤직 비디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흰자위만 보이는 소녀가 기괴하게 웃고 있는 앨범 커버는 공포영화 ‘엑소시스트(1973)’를 떠올리게 한다. 뮤직 비디오에서도 빌리 아일리시의 입에서 살아있는 거미가 나온다거나, 검은 눈물을 흘린다거나, 등에 십여 개의 주사기를 꽂는 식의 엽기적 장면이 다소 코믹하게 연출된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아방가르드 뮤지션 비욕(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어둠속의 댄서'의 여주인공)이 21세기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음악을 했을 듯 하다. 

    사춘기의 악몽 같은 정서를 반영하되, 이를 담아내는 음악은 무척이나 세련됐다. 올해 만 18세인 빌리 아일리시가 만약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다면 2010년 만 20살의 테일러 스위프트가 ‘Fearless’로 세운 최연소 수상 기록을 깨게 된다.

    ‘틱톡의 여왕’ 리조

    'Cuz I Love You'(2019) 앨범자켓 속 리조 [AP=뉴시스]

    'Cuz I Love You'(2019) 앨범자켓 속 리조 [AP=뉴시스]

    반면 리조는 1988년생이다. 2013년 ‘Lizzobangers’로 데뷔했고 2019년 ‘Cuz I Love You’가 세 번째 앨범이다. 그럼에도 신인 대접을 받는 건 그래미가 비평적, 또는 상업적으로 주목 받은 첫 싱글이나 앨범을 데뷔작으로 대우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인즉슨 이전의 작품은 아무 재미를 못 봤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무명이었던 그녀가 스타덤에 오른 건 2017년 싱글 ‘Truth Hurts’가 동영상 기반 소셜미디어 틱톡에서 각광을 받으면서다. 이 노래를 배경으로 재밌는 영상을 올리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리조도 유명세를 타게 됐고 '틱톡의 여왕'이라는 별명과 함께 이 노래 또한 2019년 빌보드 핫 100에서 7주간 정상에 올랐다. 여성 래퍼로서는 최장수 1위 기록이기도 하다. 여세를 몰아 내놓은 ‘Cuz I Love You’도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4위까지, 지난해 연말 빌보드와 롤링스톤이 선정한 2010년대 최고 앨범 리스트에서도 각각 65위와 69위에 오르며 빌리 아일리시와 마찬가지로 시장과 평단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이 앨범의 흥행 덕으로 전작들이 뒤늦게 다시 재조명 받기도 했다. 빌리 아일리시가 트렌디한 사운드를 추구한다면, 힙합과 R&B를 기반으로 하는 리조의 음악은 어떤 면에서는 전통적인 블랙 뮤직에 가깝다. 또한 자신의 오버사이즈 체형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최근의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경향과 궤를 같이 한다. 신체이형 장애라는 특이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탓에 항상 펑퍼짐한 옷을 입어서 빼빼 마른 몸매를 감추는 빌리 아일리시와는 상반된다. 

    그래미 역사에서 처음 성사되는 신인들의 매치에서 승리자는 누가 될까. 쉽지 않다. 둘 다 테일러 스위프트나 아델 같은 '그래미의 연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빌보드는 신인과 레코드 부문에서는 리조, 앨범과 노래 부문에서는 빌리 아일리시의 우세를 점쳤다. 반면 LA타임즈는 앨범과 노래에서 빌리 아일리시, 신인상에서 리조의 수상을 예상했다. 점치기 어려운 만큼 누가 상을 가져가도 좋다. 빌리 아일리시가 주인공이 되면 21세기 소녀의 승리, 리조가 주인공이 되면 오버사이즈 흑인 여성의 승리다. 누가 더 많은 트로피를 가져가도 새로운 기록이자 새로운 상징이 쓰인다. '고인 물'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래미의 몸부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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