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단양에 위치한 도깨비술 양조장의 간판과 도수가 각기 다른 세 종류의 도깨비술 제품. 도깨비술은 단양에 이웃한 제천의 쌀로 만든다(왼쪽부터). [사진 제공 · 도깨비술]
그런데 최근 들어 크래프트 막걸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논두렁에 걸터앉아 사발로 마시던, 586세대가 대학 시절 파전에 두부김치를 곁들여 마시던 그 술이 크래프트 맥주 못지않게 쿨한 모습으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귀촌한 화가 부부의 막걸리
귀촌 후 아내와 함께 크래프트 막걸리 제조에 나선 화가 출신의 김정대 도깨비술 이사. [사진 제공 · 도깨비술]
이 제품을 만든 주인공은 김정대(49)-김진경(42) 부부. 이들 부부는 미술을 전공한 예술가 겸 디자이너다. 10년 전부터 취미로 막걸리와 맥주를 만들다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해 충북 단양으로 귀촌한 뒤 술을 빚기 시작했다.
부부가 막걸리를 빚으려고 귀촌한 것은 아니었다. 자녀 교육 때문이었다. 도시에서의 교육이 자신들의 가치관과 맞지 않다고 여겨왔는데, 때마침 단양에 초등학생을 위한 농촌유학학교가 열렸다. 약 2주간 이 프로그램을 체험한 아이가 “서울 살기 싫다”고 한 것이다. 이에 부부는 단양에 작은 집을 지었다. 5년 전부터 서울과 단양을 오가며 지내다 3년 전부터는 아예 단양에 눌러앉았다.
하지만 문제는 생활비. 도시에서만큼 일을 구하지 못했다. 부부는 즐겨 만들던 막걸리 생각이 났다. 마침 단양에서 작게 농사를 짓고 있었다. 지역 농산물로 직접 빚은 전통주는 통신(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이렇게 단양 최초의(?) 크래프트 막걸리 도깨비술이 탄생했다.
부부가 화가 출신이므로 제품 디자인을 남에게 맡길 필요가 없었다. 부부는 막걸리의 변화무쌍한 모습에서 착안해 우리 전통문화인 도깨비를 모티프로 삼기로 했다. 발효 진행 정도에 따라 매일 맛이 달라지는 생막걸리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다만 무섭고 위엄 있는 도깨비는 싫었다. 막걸리는 무엇보다 친근한 술 아닌가. 그렇게 귀엽고 코믹한 도깨비 캐릭터가 완성됐다. 부부는 도깨비 캐릭터를 실크스크린 판화로 제작했다.
‘서울 쌀’로 만들고, 화장품보다 예뻐
한강주조의 ‘나루 생막걸리’(왼쪽)와 맴버들. [사진 제공 · 한강주조]
우리나라의 유명 쌀 생산지로는 호남평야와 김포평야가 꼽힌다. 하지만 의외로 대도시 서울에서도 쌀이 난다. ‘서울 쌀’만 고집해 술을 만드는 곳도 있다. ‘한강주조’다. 고성용(37) 대표를 비롯해 영업 담당 이상욱(37), 연구개발(R&D) 담당 정덕영(31)·이한순(30) 씨까지 30대 청년 넷이 모여 만드는 막걸리다. 이들이 사용하는 쌀은 강서구에서 재배되는 ‘경복궁 쌀’. 서울 쌀을 고집하는 이유는 “서울 술을 만들고 싶어서”란다.
쌀 품질은 정말 좋다. 알고 보면 김포평야에서 재배되는 쌀이기 때문이다. 한강주조는 전통과 최신 트렌드를 나루터를 통해 잇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막걸리 제품명을 ‘나루 생막걸리’라고 지었다. 양조장은 서울 핫플레이스인 성동구 성수동에 있다. 나루 생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는 6도로 일반 막걸리와 비슷하지만, 풍미를 극대화하고자 일반 막걸리에 비해 쌀량을 2배로 했다. 덕분에 인공 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고도 풍부한 맛이 난다.
‘술아 핸드메이드 막걸리’ [사진 제공 · 술이원]
딸기가 막걸리에 빠졌다?!
‘딸기 스파클링 산소 막걸리’ [사진 제공 · 한강주조]
이들 크래프트 막걸리는 모두 지역 농산물을 주원료로 삼고 인공 감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기존 막걸리보다 지역 색깔이 짙으며, 우리의 농업 문화를 근간으로 삼는 전통주의 모습에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패키지 디자인 등 겉모습만 현대적일 뿐, 그 내용물은 오히려 더욱 전통적인 것이다. 전통은 강요한다고 지켜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크래프트 막걸리가 유쾌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 류인수 한국가양주연구소장은 “크래프트 막걸리 같은 독특한 우리 술 산업이 창업과 고용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우리 술의 주요 콘텐츠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