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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으로 확진될 경우 의료진이 가장 먼저 고려하는 약이 ‘타미플루’(성분명 오셀타미비르인산염)다. 사실상 독감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먹는 약’인 데다 효과도 비교적 확실하기 때문이다. 1999년 처음 시판됐고, 2009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일명 ‘신종플루’ 치료제로 주목받으면서 대중에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타미플루에 우려를 나타내는 환자가 늘고 있다. 부작용이 걱정되는데 정말 복용해도 괜찮겠느냐는 것이다. 한 내과 전문의는 “대체 약품을 찾는 환자가 많다”며 “일부 환자는 타미플루를 독감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년 이상 널리 써온 약을 두고 이처럼 우려가 커진 까닭은 무엇일까.
상황은 지난해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8년 12월 22일 독감에 걸려 타미플루를 복용한 한 중학생이 아파트 12층에서 추락해 숨지는 일이 일어났다. ‘타미플루 먹은 사람이 투신했다’고 보도되면서 ‘타미플루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빠르게 퍼졌다. 약품 설명서에 적힌 ‘환각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문구를 들며 “자살을 부르는 약”이라는 혹평까지 나왔다.
투신 원인으로 지목
타미플루 부작용 가운데 환각 등 신경계 이상이 드물게 보고되는 건 사실이다. 일본에서도 중학생이 타미플루 복용 후 고층에서 뛰어내리거나 차도에 뛰어드는 등의 행동을 한 사실이 보고됐다. 국내 사례도 있다.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은 2016년 타미플루 복용 후 이상증세로 고층에서 추락해 사망한 11세 남아에 대해 의약품 부작용을 인정하고 피해구제 보상금 9500만 원을 지급한 바 있다.서울대병원 약물유해반응관리센터에 따르면 2014∼2018년 5년 동안 타미플루 처방 후 환각 같은 증상을 경험한 환자는 국내에서 총 12명. 서울대병원 연구진은 지난해 말 “국민 우려가 커 총 7045명의 환자를 분석해봤는데 1명에게서 신경학적 유해반응(경련)이 있었고, 환각·환청 등의 신경계 부작용이 발생한 사례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진은 “부작용 발생 총 환자 수는 29명(0.41%)으로, 구역·구토·설사 등 위장관계 증상(0.2%)이 가장 많았고 간독성(0.09%)과 가려움증 같은 피부질환(0.07%)도 있었다”며 “타미플루 부작용은 90%가 20세 미만에게서 발생하므로 저연령층에서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독감 환자의 이상행동이 명백하게 의약품 부작용인지를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약을 전혀 쓰지 않아도 고열 등 독감 증상만으로 혼란과 섬망(의식장애) 등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 부작용에 대한 통계는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NCBI)에서 상세히 추적한 바 있다. NCBI는 2008년 발표한 타미플루 부작용 관련 연구 결과를 수정, 보완해 2012년 재차 발표했는데, 관련 논문에 따르면 타미플루 복용 환자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0.008명으로 일반 자살률보다 크게 낮았다. 참고로 인구 10만 명당 국내 자살률은 통계청 기준 24명이다. 이를 들어 NCBI는 “타미플루 복용은 독감 감염으로 생길 수 있는 이상행동을 도리어 감소시킬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일본에서도 2006~2007년 타미플루 복용자의 부작용을 분석한 논문이 발표됐다. 이 연구 결과에서는 타미플루 복용자의 이상행동 발생 위험이 일반 독감 환자군보다 소폭(1.4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타미플루 부작용으로 이상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근거는 대부분 이 연구에 기인한다. 일본 후생성은 이런 점을 들어 2007년 이후 고위험 환자를 제외한 10세 이상 미성년 환자에 대해 타미플루 투약을 보류해왔다. 그러나 일본 역시 “최근 8년간의 역학조사 결과 독감만으로도 이상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결론 내리고 지난해 8월부터 타미플루 투약을 다시 허용했다.
독감은 크게 A, B, C형으로 나뉜다. A형은 변종이 많으며 사람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감염된다. 조류독감, 돼지독감이 A형의 변종이다. B형은 인간 사이에서만 주로 전염된다. 현재 국내에서 유행하는 독감도 B형이다. 드물게 C형 독감이 있으나 증세가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통 독감 하면 A, B형 둘 중 하나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타미플루를 제외하면 현재 국내에서 처방받을 수 있는 독감약은 ‘페라미플루’(성분명 페라미비르)와 ‘리렌자’(성분명 자나미비르) 두 종류다. 두 약 모두 타미플루와 마찬가지로 바이러스 내부의 ‘뉴라미다아제’라는 효소를 차단해 증식을 막는다. 페라미플루는 먹지 않고 주사로 맞으며, 리렌자는 흡입기로 들이켜 투약한다. 이 두 약도 타미플루와 같은 이상행동 등의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22일 타미플루를 먹은 학생이 투신한 날 밤, 다른 아파트 7층에서 떨어져 척추와 목뼈 등을 다친 한 고교생은 전날 페라미플루를 투약했다.
페라미플루, 리렌자, 아만타딘도 부작용 있어
[녹십자]
타미플루에 대한 불신이 크다면 새롭게 등장할 신약 ‘조플루자’(성분명 발록사르빌 말보실)를 기대해볼 수 있다. 이 약은 일본에서 지난해 3월 시판 승인이 났고 국내에서도 최종 승인을 앞두고 있다. 닷새간 하루 두 알씩 먹는 타미플루와 달리 한 알이면 충분하고, 증상이 완화되는 속도도 타미플루보다 2배 가까이 빠르다. 바이러스가 증식할 때 필요로 하는 내부 단백질 분자의 기능을 차단하는 원리로, 타미플루와는 작용기전이 전혀 다르다. 물론 상세한 부작용 빈도는 실제로 판매가 이뤄진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당연히 더 안전하다고 속단하기는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