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카자흐스탄 대통령. [카자흐스탄 대통령실]
‘엘바시(Elbasy)’는 30년간 카자흐스탄을 통치해온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을 부르는 호칭이다. ‘민족지도자’란 뜻의 엘바시는 국부(國父)를 지칭한다. 1940년 알마티주 체몰간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목동의 아들로 태어난 나자르바예프는 카라간다기술대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카라간다 제철소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공산당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주경야독으로 카자흐스탄국립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딴 나자르바예프는 1980년대 후반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을 적극 지지했다. 고르바초프의 후원에 힘입어 1989년 6월 카자흐스탄 공산당 제1서기가 된 그는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1991년 12월 치른 카자흐스탄 첫 대선에 단독 후보로 나서 98.8%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했다. 1999년(81%), 2006년(95.5%) 대선에서 승리한 나자르바예프는 헌법 규정 때문에 더는 출마할 수 없었다. 그러자 카자흐스탄 의회는 2010년 대선 출마 횟수 제한을 없애는 내용의 개헌안을 통과시키면서 그에게 ‘엘바시’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2011년(95.5%), 2015년(97.7%) 대선에서도 당선한 나자르바예프는 사실상 종신집권하게 됐다.
차기 대선까지 최측근이 대통령직 수행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임시대통령(왼쪽)과 다리가 나자르바예바 카자흐스탄 상원의장. [위키피디아, 카자흐스탄 정부]
2020년 4월 실시될 차기 대선에서도 승리할 것이 분명한 나자르바예프가 3월 19일 전격적으로 대통령직에서 사임해 카자흐스탄 국민은 물론, 국제사회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장기 집권해온 국가 최고지도자가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그의 사임은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나자르바예프는 TV로 중계된 대(對)국민 연설에서 “올해로 카자흐스탄 공산당 제1서기로서 최고위직을 맡은 지 30년이 된다”며 “이제 대통령직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나자르바예프는 연설 도중 대통령직을 사퇴한다는 명령서에 스스로 서명했다. 이에 따라 3월 20일 헌법에 의거해 임시대통령으로 취임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전 상원의장이 차기 대선 때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한다. 외교관 출신으로 외무장관과 총리를 역임한 토카예프는 나자르바예프의 최측근이라는 말을 들어온 인물이다. 토카예프는 충성의 표시로 수도 아스타나를 나자르바예프의 이름을 따 ‘누르술탄’으로 변경하자고 의회에 제의해 이를 통과시켰다. 토카예프는 취임사에서 “엘바시의 의견이 국가전략 결정에서 우선적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자르바예프가 사임한 표면적 이유는 경제난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은 원유 매장량 세계 12위, 천연가스 22위, 우라늄 2위, 크롬 1위 등 다양한 광물자원을 다량으로 보유한 중앙아시아의 최대 자원부국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국제유가가 크게 떨어지면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에 따른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대러시아 제재 조치의 불똥이 카자흐스탄에도 튀면서 러시아와 교역이 축소되는 등 주요 산업이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러자 나자르바예프는 2월 말 “국민의 생활수준을 높이지 못했다”며 내각을 총사퇴시키는 등 국민의 불만을 무마하려는 제스처를 보였다. 그는 또 국민이 장기 집권과 독재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자신의 사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자신이 원하는 인물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정치적 희생도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슬람 카리모프 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후계자 지명도 못 한 채 2016년 급사한 전례를 피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실제로 나자르바예프는 그동안 싱가포르의 권력세습 과정을 상당히 연구해왔다. 싱가포르에선 1965년 건국 당시 초대 총리이자 국부인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1990년 심복인 고촉동(吳作棟) 제1부총리에게 총리직을 넘기고 자신은 ‘선임장관’이라는 자리에 앉아 일종의 ‘상왕(上王)’ 역할을 했다. 고 총리는 2004년 물러나고 리 전 총리의 장남인 리셴룽(李顯龍)이 총리로 취임했다. 사실상 과도기를 거친 권력세습이었다.
“비공식 통치 계속할 것”
사마트 아미쉬 카자흐스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왼쪽)과 나자르바예프의 둘째 사위 티무르 쿨리바예프. [Tengrinews, 위키피디아]
나자르바예프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지만 상왕이나 다름없다. 엘바시라는 호칭과 함께 국가안보회의 의장, 집권여당인 ‘누르 오탄’(조국의 빛줄기)당 대표, 헌법위원회(헌법재판소 격) 위원 등의 직책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영국 정치컨설팅업체 프리즘(PRISM)의 카자흐스탄 전문가 케이트 말린슨은 “나자르바예프가 리콴유 전 총리처럼 비공식적으로 카자흐스탄 통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말 그대로 ‘꼼수’ 사임이라는 것이다. 카자흐스탄 정치 분석가인 에르볼 예딜로프는 “토카예프 임시대통령은 차기 대선 때까지만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며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그의 권한은 엘바시보다 적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종신직인 국가안보회의 의장으로서 나자르바예프는 대통령보다 막강한 권한을 지녔다. 또 누르 오탄당 대표로서 의원 공천권도 갖고 있어 장관들을 통제할 수 있다. 나자르바예프는 “내 미래 과업은 카자흐스탄에서 현재 일어나는 변혁을 지속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가 제대로 자리 잡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밝혀 앞으로 국정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슬하에 3녀를 둔 나자르바예프가 염두에 두고 있는 가장 유력한 후계자는 장녀인 다리가 나자르바예바다. 56세인 다리가는 토카예프의 뒤를 이어 상원의장에 선출됐다. 일찌감치 정치에 입문한 그는 누르 오탄당 원내대표와 하원 부의장, 부총리를 지냈고 2016년 9월 상원의원으로 선출된 후 국제관계 및 국방안보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해왔다.
또 다른 후보는 조카인 사마트 아마쉬(41)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다. 나자르바예프 막냇동생의 아들인 아마쉬는 정보 분야에서 일해왔으며 2015년 현 직책에 발탁됐다. 둘째 사위(차녀인 디나라의 남편)인 석유 재벌 티무르 쿨리바예프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평소 독재자라는 말을 가장 듣기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자르바예프는 민의가 아닌, 다른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후계자로 발탁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