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순 장흥청태전영농조합법인 대표는 2004년 청태전 복원 사업 참여 이후 지금까지 이 사업을 해오고 있다. [박해윤 기자]
진홍빛, 은은한 향, 고소한 맛
[박해윤 기자]
완성된 청태전은 맥반석 위에서 한 번 은은하게 구운 뒤 끓는 물에 우리면 진홍빛을 띤다. 빛깔은 언뜻 보면 오미자차와 비슷하지만 맛과 향은 옥수수차나 보리차에 더 가깝다.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녹차의 떫은맛이 자연스레 사라지고, 부드러운 맛과 고소한 향만 남아 마실수록 독특한 매력에 끌린다.
전남 장흥청태전영농조합법인은 지역에서 알음알음 이어져 내려오던 청태전을 2004년부터 복원해왔다. 오랜 연구 끝에 상품화에 성공했고 지난 10여 년 동안 꾸준히 판매해오고 있다. 3월 18일 만난 장내순(52) 장흥청태전영농조합법인 대표는 “청태전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고, 전통 차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 대표로부터 청태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박해윤 기자]
“오래전부터 장흥에서는 청태전을 집집마다 비상 상비약처럼 갖고 있었다. 할머니가 손주들이 배탈이 나거나 감기에 걸렸을 때 달여 마시게 한 차다. 신라시대 때 도의선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나무 종자를 장흥 보림사에 머물며 심었고, 마을 사람들에게 엽전 모양의 고형차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고려시대 때는 전국에 ‘다소(茶所)’를 뒀는데 남해안 19곳 중 13곳이 장흥에 있었다고 한다. 청태전은 산속 야생 녹찻잎을 따와 만들기 때문에 상업화하기 힘들어 지역 특산품 정도로만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다 2004년 장흥군에서 복원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생산업체가 10여 군데 생겼다. 지난해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2호로 지정됐다.”
청태전은 중간에 발효시키는 방식이 독특하다.
“여러 제다(製茶)법 가운데 발효도 있다. 녹차는 잎을 말려서 우려 마시지만 홍차나 보이차는 발효 과정을 거친다. 발효를 한 번 하면 소화시키기 편하다. 인삼을 발효시켜 홍삼으로 만들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녹차에 함유된 폴리페놀과 비타민C가 고혈압, 당뇨, 비만, 동맥경화 같은 질병을 막아주는데, 발효시키면 항산화성분이 더해져 노화를 방지하고 혈액순환을 촉진한다.”
청태전도 종류가 여러 가지인가.
“찻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 분류한다. 4월 20일 곡우(穀雨) 전에 따는 것을 우전(雨前)이라 한다. 봄비를 맞아 찻잎이 부드럽고 떫은맛이 거의 없는 어린잎이다. 한 사람이 딸 수 있는 양이 적기 때문에 보통 최상급 녹차로 친다. 우전으로 만든 청태전은 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이후 곡우부터 입하까지 따는 것을 세작(細雀), 입하부터 5월 말까지 따는 것을 중작(中雀), 5월 말 이후 따는 것을 대작(大雀)이라 한다. 차 맛이 강한 편인 중작이 제일 많이 유통된다. 또 청태전은 좋은 환경에서 자란 찻잎을 얼마나 잘 발효시키느냐에 따라 상품 등급이 나뉜다.”
녹차 밭을 만들어 생산하는 것이 수월할 듯한데, 야생 찻잎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인삼과 산삼이 어떻게 같겠나. 산속에서 채취한 찻잎은 재배 찻잎에 비해 맛이 훨씬 풍부하고 신선하다. 우리는 16만5000㎡ 규모의 문중 산에 차나무가 수백여 그루 있어 매해 조합원들과 함께 찻잎을 채취한다. 수확량이 일정치 않아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만큼 가치가 높다고 자부한다.”
“청태전 상품화 과정 힘들어 포기할까도”
청태전은 우리 전통 발효차로 5~6월 채취한 녹찻잎을 절구에 찧어 동전 모양으로 만들고, 대꼬챙이에 끼워 말린 뒤 1~2년간 발효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장흥청태전영농조합법인에서는 산속에서 자란 야생 찻잎으로 오랜 기간 정성 들여 청태전을 생산한다. 가격은 3만~10만 원대. [박해윤 기자]
청태전을 상품화하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궁금하다.
“집에서 먹을 정도로 소량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판매를 위해 대량생산하는 과정은 어려웠다. 발효 과정에서 청태전에 곰팡이가 슬어 몇 항아리씩 버리기도 했다. 더 힘들었던 것은 찻잎을 채취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데 인력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마을 어르신들을 설득해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고, 70대 이상 어르신 15명이 찻잎 따기에 참여하고 있다. 이젠 찻잎 채취가 몸에 익어 다들 베테랑이 됐다.”
청태전이 워낙 생소해 판매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다. 갖은 노력을 기울여 제품을 완성했는데 막상 알아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10여 년 동안 전국에서 열리는 식품 관련 박람회에 한 해 10번 이상씩 나갔다. 사실 박람회가 사나흘씩 열리면 경비가 제법 들어가지만 청태전을 알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참가했다. 초창기에는 하나도 팔지 못한 채 그대로 들고 오기도 했다. 수입이 없어 조합을 접을 생각까지 했다. 지금은 매스컴에서도 주목할 정도가 돼 감사할 따름이다.”
연매출은 어느 정도 되나.
“지난해 연매출이 2억 원가량 나왔다. 상품화한 뒤 3년 동안은 수익이 제로(0)였고, 이후 수익금이 생겨도 다시 시설투자 등에 썼기 때문에 남는 것이 없었다. 몇 해 전부터 실질적인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사업을 시작한 지 10여 년 만의 일이다.”
장흥지역 학교 급식에도 납품하고 있다고.
“2년 전 교육청 지원으로 장흥지역 초등학교, 중학교 6곳에 시범적으로 납품했다. 아이들이 차를 싫어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 고등학교에도 납품하기로 했다. 학생들의 잔병치레가 줄어 학교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올해는 장흥군에서 지원문화를 잘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길 바란다.”
차 만들기가 주업인데 어릴 때부터 차를 좋아했나.
“맞다. 차를 좋아해 20대 때 장흥에서 강진으로 이사했다. 강진은 ㈜태평양에서 운영하던 설록차 차밭이 유명했다. 또 다산 정약용 선생은 강진에 유배됐을 때 차를 즐겼다. 강진이 말하자면 차의 본고장 같은 곳이라 거처를 옮겼다. 백련사에서 하는 다도사업과 찻집 운영에도 참여하게 됐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차 소비가 줄고, 경기도 안 좋아져 다른 사업을 해야 하나 고민하게 됐다. 그때 우연히 어머니로부터 문중 산에 차나무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렸을 때는 전혀 모르던 일이었다. ‘차는 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마침 장흥군에서 청태전 복원 사업을 시작해 거기에 모든 걸 다 걸었다. 지금은 청태전 사업을 전업으로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차 좋아해, 찻집 운영하다 귀농
[박해윤 기자]
“50대 초반인데 또래에 비해 비교적 젊게 봐준다. 또 청태전을 꾸준히 마신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잔병치레 하나 없이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단골손님 가운데 한 80대 여성은 60대 때 혈관 나이가 80대로 나왔는데 최근 혈관 나이를 다시 측정했더니 60대로 나왔다고 한다. 자신은 10년 동안 청태전을 꾸준히 마신 것 외에는 별달리 한 일이 없는데 건강이 도리어 좋아졌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해왔다.”
물 1ℓ에 청태전 1개를 넣고 끓이면 대여섯 명이 마실 수 있는 분량이 나온다. 빛깔은 진홍빛을 띠지만 맛이 고소해 보리차나 옥수수차와 비슷하다. [박해윤 기자]
“보통 보이차는 한 번 우려내고 첫물은 따라 버린다. 발효나 유통 과정에서 발생한 이물질을 씻어내기 위한 것인데, 원래 좋은 차는 세척하지 않는다. 특히 발효차는 1~2년 동안 몸에 좋은 여러 미생물이 생겨나기 때문에 그대로 마시는 것이 더 좋다. 게다가 청태전은 마지막에 맥반석 위에서 구운 뒤 판매하고 있어 첫물을 따라 버릴 필요 없이 바로 마시면 된다. 물 1ℓ 정도에 청태전 1개를 넣고 10~20분간 끓이면 대여섯 잔이 나온다. 한 번 끓여 먹은 청태전은 다시 물을 넣어 두 번 정도 더 끓여 먹어도 괜찮다. 감기 몸살과 배탈에도 효과가 좋다.”
앞으로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
“지난해 국가중요농업유산에 선정되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것을 이뤘다. 올해는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매장 수가 많은 스타벅스에 청태전을 입점시키는 것이 목표다. 매년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커피엑스포에도 나간다. 전국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 대거 모이는데, 지난해에 처음 참가해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사람들이 커피를 사랑하는 만큼 우리 전통 발효차인 청태전도 사랑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스타벅스에 입점한다면 청태전을 많은 이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