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수도 로마에 있는 중앙은행. [위키피디아]
주요 외환보유고 ‘金’
세계 3위 금 보유국인 이탈리아에서 금 매각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0%대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최악의 경제난으로 재정이 악화되자 중앙은행이 보유 중인 금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탈리아 경제는 이미 지난해 3분기와 4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경기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탈리아의 분기 성장률이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보인 것은 유럽 재정위기 때인 2011~2013년 이후 5년여 만이다. 이탈리아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31%로 유럽연합(EU)에서 그리스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탈리아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지난해 6월 극우정당 ‘동맹’과 반체제 정당인 ‘오성운동’이 손잡고 출범한 연립정부의 이른바 ‘포퓰리즘’ 정책 때문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월 780유로(약 100만 원)의 기본소득 도입, 연금수령 연령 하향, 소규모 자영업자의 세금 감면, 금융기관과 사행산업의 세금 인상 등 과도한 복지 및 대중 인기 영합 정책을 추진해왔다.이에 따라 올해 재정적자 규모가 GDP 대비 2.04%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탈리아 정부는 법인세 인상, 투자 축소 등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고 국유 부동산을 매각해 공공부채를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재정 악화를 막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해 말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종료하면서 채권 등 자산 매입을 중단하자 이탈리아 국채 금리가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주택담보대출, 기업대출 등 경제 전반에서 차입 비용을 높이고 있다. 이탈리아는 또 심각한 내수 부진을 겪고 있다.
그러자 이탈리아 정부는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 처분권을 넘겨받아 재정적자를 메우는 데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동맹’ 총재인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은 이탈리아 국민의 재산”이라며 “금을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코미디언 출신으로 ‘오성운동’을 만든 베페 그릴로도 “돈이 없다는 얘기는 그만하자. 왜 국가가 아니라 시민들이 목걸이를 팔아야 하느냐”며 “중앙은행의 금을 팔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살비니 부총리의 최측근인 동맹당 클라우디오 보르기 의원은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의 최종 소유자를 중앙은행이 아닌 국가로 인정하는 내용의 법률 초안을 하원에 상정했다. 야당들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안 된다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EU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피에르 모스코비시 EU 조세담당 집행위원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절대적으로 존중돼야 한다”며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호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와 통화정책의 중요한 원리”라고 강조했다.
각국 중앙은행은 1971년 미국의 금태환 중지 선언으로 금본위 제도가 막을 내린 뒤로도 금을 주요 외환보유고로 삼아왔다. 금융시장의 혼란 가능성에 대비하고 화폐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국가가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지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도 이탈리아 정부가 중앙은행의 금을 매각하겠다는 것은 포퓰리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미국 블룸버그는 “이탈리아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중앙은행이 보유한 대규모 금을 목표로 삼고 있다”며 “앞으로 재정이 갈수록 악화될 경우 금 매각에 나설 개연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러시아, 역대 최고 수준 금 매입
중국 여성들이 새해를 맞아 귀금속상에서 금 장신구를 사고 있다. (왼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앙은행 금 보관소에서 금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차이나 데일리, Komers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