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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의 운명, 국민 지지율에 달렸다

2018 노란조끼와 2016 촛불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입력2018-12-14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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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일 파리 개선문 앞에서 펼쳐진 노란조끼 시위에서 바리케이드가 불태워지고 있다. [AP=뉴시스]

    12월 1일 파리 개선문 앞에서 펼쳐진 노란조끼 시위에서 바리케이드가 불태워지고 있다. [AP=뉴시스]

    2018년 겨울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란조끼(GJ)운동’은 2016년 겨울 한국 서울에서 열렸던 촛불집회를 연상케 한다. 민심을 외면한 정권을 응징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분의 열기 속에서 추운 겨울 날씨에도 주말마다 시위가 열리고 있다. 시위를 주도하는 핵심 지도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셜미디어로 시간과 장소를 공유했고, 삼삼오오 참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위 열기는 들불처럼 번졌고 공권력을 동원해 맞서던 정권은 그 피플 파워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선 촛불이 상징이었다면 프랑스에선 비상 상황에 의무적으로 착용하게 돼 있는 형광조끼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프랑스는 2008년부터 모든 자동차에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바로 형광조끼를 착용할 수 있도록 차내 비치를 의무화했다. 프랑스어로 ‘질레 존(Gilets Jaunes)’은 노란조끼라는 뜻이지만, 실제론 녹색에 가까운 형광색을 띤다.

    노란조끼운동은 어떻게 시작됐나

    12월 10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란조끼 시위와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하면서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하는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
노란조끼운동의 기폭제 구실을 한 자클린 무로가 10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의 한 장면. [AP=뉴시스, 자클린 무로 페이스북]

    12월 10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란조끼 시위와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하면서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하는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 노란조끼운동의 기폭제 구실을 한 자클린 무로가 10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의 한 장면. [AP=뉴시스, 자클린 무로 페이스북]

    당연히 사정은 조금씩 다르다. 한국에선 ‘최순실 게이트’로 불린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분노가 도화선이 됐다. 프랑스에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유류세 인상 발표가 발화점이 됐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1년간 환경오염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경유 유류세를 23%, 휘발유 유류세를 15% 인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내년 1월 추가 유류세 인상을 예고했다. 

    외국에서 보면 이에 대한 반발이 급속히, 과격하게 벌어진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5월부터 인터넷상에서 다양한 저항이 모색되기 시작됐다. 5월 Change.org라는 사이트에 한 백화점 여성 직원이 유류세 인상 철회 청원을 냈는데 10월 중순까지 서명자가 3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 백화점의 남성 직원 2명은 11월 17일(이하 현지시각) 파리 도심에서 시위를 열어 모든 도로를 차단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이즈음 브르타뉴 지역의 50대 여성 음악인 자클린 무로가 등장한다. 그는 10월 18일 마크롱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동영상을 올렸다. 무로는 “프랑스인들의 돈을 갖고 당신은 도대체 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냐”를 반복하며 마크롱 대통령이 전임 프랑수아 올랑드 정권이 도입한 부유세를 폐지하고 법인세를 인하하면서 부족한 세원을 충당하고자 중산층과 서민의 등골을 빼먹고 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 동영상은 600만 회 이상 조회와 20만 회 이상 공유라는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11월 17일 30만 명 넘는 시위자가 노란조끼를 입고 첫 시위에 나섰다. 노란조끼를 입자는 발상이 처음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에 공명하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졌다. 24일 시위 참가자는 전국 10만6000명, 파리 8000명으로 줄었지만 시위는 더욱 격렬해져 투석전과 최루탄 공방이 오갔다. 급기야 12월 1일 3번째 시위에선 100대 넘는 차량이 불타고 개선문이 일부 훼손됐다. 카쇠르(casseur·파괴자)라고 부르는 폭력시위꾼들의 소행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국민은 카쇠르와 노란조끼를 구별할 줄 알았다. 12월 2일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프랑스 국민의 85%는 전날의 폭력사태에 반대하면서 72%는 여전히 노란조끼운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12월 6일 조사에서 21%까지 떨어졌다.

    호세프  ·  박근혜 9%, 마크롱 21%

    프랑스 정부가 먼저 손을 들었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12월 4일 “내년 1월로 예정됐던 유류세 인상을 6개월간 보류하겠다. 대통령도 함께 내린 결론”이라고 발표했다. 또 “최저임금을 내년 1월 3% 올리고, 내년 1월 예정된 가스와 전기요금 인상도 6개월간 보류하겠다”고 말했다. 

    노란조끼들이 그 정도에 만족할 리 만무했다. 노란조끼 측에서 11월 30일 공표한 요구사항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42개나 되는 목록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유류세 포함 모든 간접세 인하, 누진 소득세 강화, 부유세 부활,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 월 1300유로(약 166만 원)로 115유로 인상, 집세 인상 제한, 국민연금 인상, 고액소득자 월급 상한선 1만5000유로(약 1914만 원)…. 

    결국 12월 8일 4차 시위가 벌어졌다. 경찰 8만9000명이 진압에 투입되며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전국적으로 13만6000명의 노란조끼가 시위에 나섰다. 그럼에도 경찰은 잔뜩 웅크린 모습이었고, 여유만만한 쪽은 노란조끼들이었다. 

    그 이틀 뒤인 12월 10일 밤 결국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TV 생중계로 대국민담화에 나섰다. 늘 자신만만하던 그는 겸손한 자세로 “많은 사람의 분노와 분개를 이해하고 있으며 취임 후 재빨리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했다.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한 추가 조치도 발표했다. 현재 세후 월 1185유로(약 151만 원)인 최저임금을 내년 1월부터 월 1285유로(약 164만 원)로 100유로 인상하고, 월 2000유로(약 255만 원) 미만의 저소득 은퇴자에 대한 사회보장세 신설을 철회하겠다고 약속했다. 초과근무 수당과 관련해선 세금을 물리지 않을 것이며 최저임금 인상분 부담은 정부가 지기로 했다. 

    누구는 백기투항이라고 하지만 패배 인정 정도가 맞을 것이다. 유럽연합(EU)이 허용한 재정적자 규모(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를 충족하는 한도 내에서 시위대 요구를 들어줬기 때문이다. 

    여론의 향배도 바뀌었다. 대국민담화 다음 날인 12월 11일 발표된 2건의 긴급 설문조사에서 시위 지지와 중단 비율이 각각 45% 대 54%, 54% 대 46%로 엇갈렸다. 하지만 노란조끼운동 지지율이 일주일 전에 비해 20%p 이상 줄었다는 점은 같다. 

    노란조끼들은 일단 12월 15일 주말 시위를 다시 열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노란조끼운동의 불을 지핀 무로는 시위가 이미 “극단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 손에 넘어갔다”며 협상파로 돌아섰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플 파워로 물러나게 된 결정적 요소 가운데 하나는 지지율이었다. 두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한자리수 대로 떨어진 이후 민심은 돌아서는 법이 없었다. 그에 비춰봤을 때 20%대 지지율을 보이는 마크롱 대통령에겐 아직 반전의 기회가 남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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