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산수(水墨山水)가 이토록 예리하고 장대할 수 있을까. 동양화가 윤영경은 백두산과 압록강, 광활한 대평원과 자작나무 숲을 날카로운 붓끝으로 세밀하면서도 장엄하게 살려냈다. 하늘의 구름이나 푸른 숲, 깊은 물빛 등은 과감히 생략했다. 오로지 먹색으로만 우리 산세의 장엄함을 표현했다. 가로 14m, 세로 2m가 넘는 거대한 작품 크기 또한 보는 이를 압도한다.
강원도 산맥, 경남 통영 항구, 경기 과천 청계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등을 그려온 윤영경은 12번째 개인전 ‘하늘과 바람과 땅’의 풍경으로 백두산과 압록강을 택했다. 그동안 누구나 쉽게 가볼 수 있는 익숙한 산수를 그렸다면, 이번에는 쉽게 가볼 수 없는 민족의 정수(精髓)가 깃든 곳을 택한 것이다. 중국 지린성을 통해 들어가 직접 보고 거닐었던 풍경을 20여 점의 작품에 담았다.
미술평론가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이번 전시의 서문에서 윤영경에 대해 “‘와유진경 횡권산수’라는 우리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를 벗어나 자신만의 시각과 기법을 구사해온 동양화가”라고 평했다.
‘와유(臥遊)’란 ‘누워서 노닌다’는 뜻으로, 중국 한 화가가 늙어서 산수를 유람할 수 없게 되자 산수를 그림으로 그려놓고 누워서 즐겼다는 데서 유래한다. ‘진경(眞景)’은 겸재 정선이 중국의 산수화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그린 고유의 산수화를 뜻한다. 윤영경은 겸재의 기행 화첩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횡권(橫卷)은 가로로 긴 두루마리 그림을 가리킨다.
윤영경 그림은 ‘시점’의 차별성과 준법(皴法)의 활용에 그 독자성이 있다. 횡권산수는 대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점이 이동하는데, 그의 작품은 시점 이동 없이 부감법으로 전체를 조망한다. 비행기를 타고 산천을 내려다보는 현대인의 여행 경험에 걸맞은 ‘조감도’ 방식이다. 윤영경의 준법에 대해 유홍준 전 청장은 “선묘가 계속 이어져 목판화의 칼맛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평했다.
윤영경은 이화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박사 과정을 마쳤다. 결혼해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 근무지를 따라 국내외 곳곳을 옮겨다니며 살았지만 금호미술관, 가나아트스페이스(갤러리인사아트), 독일 뮌헨 슈나이더갤러리 등에서 꾸준히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12월 10일까지 서울 중구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