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연휴가 많은 날에는 유기견보호센터에 유기견이 넘쳐난다. 반면 애견호텔은 예약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호황을 누린다. 기르는 사람에 따라 개는 가족이 되기도 하고, 버려지는 장난감이 되기도 하는 엇갈린 운명을 맞는다. 개는 말 못하는 한낱 ‘미물’이라며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하지만,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영특하고 신비스러운 ‘영물(靈物)’로 칭송받기도 한다. 그래서 소와 돼지의 먹이는 ‘쇠죽’ ‘돼지죽’으로 부르는 반면, 개의 먹이는 ‘개밥’이라고 하나 보다.
여기 개 2마리가 있다. 넓디넓은 대저택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11세 반려견 ‘보쓰’(유원준 분)는 홀로 사는 제약회사 장 회장(윤상화 분)의 유일한 벗으로 초특급대우를 받고 있다. 반면 ‘무스탕’(안다정 분)은 유기견으로 틱장애를 앓고 있는 외톨이 여중생 해일(이지혜 분)의 둘도 없는 친구다.
해일의 아버지(유성주 분)는 장 회장 운전기사로 경제형편이 그리 넉넉지는 않지만 같은 빌라에 사는 선영(신정원 분)에게 해일의 미술 과외를 맡기는 등 기꺼이 뒷바라지를 한다. 선영의 남편 영수(김훈만 분)는 해일의 틱장애가 세 살배기 아들 별이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칠까 싶어 처음에는 반대하지만 아내의 뜻에 따른다. 그러던 중 이들 부부에게 ‘그 개’ 때문에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개들도 견주의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차별을 받는다. 개가 잘못해도 견주가 강자면 개는 처벌을 면하고, 견주가 약자면 개 역시 고통받고 책임을 져야 하는 형국인 것이다.
연극 ‘그 개’에는 김은성 작가 특유의 가슴 쓸어내리는 강력한 어법이 담겨 있다. 그러나 불친절하게 풀어낸 모호한 결말은 ‘보기 없는’ 객관식 문제를 관객에게 안겨준다. 구체적인 이야기 구성에 실핏줄처럼 연결되는 복잡한 인물 설정은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장 회장의 가족사, 엄마와 따로 사는 해일이네 이야기, 장 회장의 인간미 없는 짝사랑 라인까지 따라가다 보면 배는 산으로 간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연극 속 다세대주택 인물들은 바로 내 이야기다. 살다 보면 우리는 이치에 어긋나는 일을 도처에서 맞닥뜨린다. 한 손으로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다른 한 손으로는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 비정한 승자 독식이 범람하는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약자들의 이야기가 너무 광활하다. 분명 찐빵은 먹었는데 ‘앙꼬’의 단맛이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