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커피 마시고 쇼핑하며 적금 드는 여기는 어디?

서점, 카페, 편집숍 등으로 진화하는 은행 점포

  •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18-10-16 1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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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강남역에서 KEB하나은행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첫 오프라인 매장을 낸 온라인 편집숍 ‘29cm’. [박해윤 기자]

    서울 서초구 강남역에서 KEB하나은행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첫 오프라인 매장을 낸 온라인 편집숍 ‘29cm’. [박해윤 기자]

    서울 서초구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출퇴근하고 데이트하고 회식하는 사람들로 아침부터 밤까지 복닥거리는 이 거리에 얼마 전 낯선 간판이 등장했다. ‘KEB하나은행×29cm’. 

    29cm(www.29cm.co.kr)는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온라인 편집숍이다. 주로 디자이너 패션의류와 생활소품 등을 판매한다. 지난여름에는 라프시몬스, 언더커버, MSGM 등 글로벌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한 백팩 이스트팩(Eastpak)을 단독으로 선보여 품절 대란을 일으킨 바 있다. 29cm 사무실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다. 강남스타일보다 ‘연남 솔(Soul)’을 가진 존재로 분류된다. 그런 29cm가 사업 개시 7년 만에 첫 번째 오프라인 매장을 내는데, 은행 안에 입점한다? 연남동이나 상수동이 아닌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대세’ 29cm가 선택한 파트너

    ‘동네와 은행의 상생’을 추구하는 KEB하나은행 컬처뱅크 2호점인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지점(왼쪽). 독립서점 ‘북바이북’이 은행 안에 입점해 책과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박해윤 기자]

    ‘동네와 은행의 상생’을 추구하는 KEB하나은행 컬처뱅크 2호점인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지점(왼쪽). 독립서점 ‘북바이북’이 은행 안에 입점해 책과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박해윤 기자]

    29cm의 오프라인 진출 사업을 총괄하는 김세일 에이플러스비 부사장은 “그간 유통업계나 부동산·리테일업계로부터 오프라인 매장을 내자는 제안을 꾸준히 받아왔는데, KEB하나은행의 제안이 의외이면서도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몰을 패션잡지처럼 꾸미는 등 독특한 문법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29cm답게 의외성을 강조한 오프라인 매장을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10월 11일 찾아가본 ‘KEB하나은행×29cm’는 16일 공식 오픈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정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에 은행이, 왼쪽에 29cm가 있다. 가운데는 은행과 29cm의 공용 공간으로 테이블과 의자 등이 배치돼 있다. 은행 공간도 흑백(黑白) 컬러를 아이덴디티로 삼은 29cm에 맞춰 무채색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29cm 매장의 콘셉트는 ‘편의점’. 패션 제품보다는 생활소품, 문구류 등이 많다. 가장 비중이 높은 제품군은 그래놀라, 다이어트칩, 모닝수프 등 푸드(food) 제품이다. 같은 건물 지하에는 다이소, 강남대로 맞은편에는 4개 층 규모의 무인양품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용감한’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김 부사장은 “편의점이란 매일 들러 소비하는 익숙한 곳”이라면서 “29cm만의, 다른 버전의 익숙함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은행 겸 편의점(?)에는 앤트러사이트 카페도 들어온다. 옛 신발공장, 전분공장 등을 재단장한 ‘업사이클링’ 카페 앤트러사이트의 첫 번째 강남 매장이다. 이 카페는 그간 제주와 서울 합정동, 한남동 등에서 매장을 운영해왔다. 



    은행 점포가 달라지고 있다. 번호표 뽑아 기다리다 적금 들고 새 통장을 발급받던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사고, 쇼핑을 하고, 강연이나 공연을 즐기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오후 4시면 ‘칼같이’ 셔터를 내리던 은행 점포가 이른 아침시간에도 커피를 팔고, 한밤에도 책을 사거나 강연을 들으러 온 손님을 위해 문을 열어놓는다. 

    이러한 변신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KEB하나은행이다. 이 은행은 점포에서 은행 업무뿐 아니라 지역 특색에 맞는 라이프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컬처뱅크(Culture Bank)’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의 슬로건은 ‘동네와 은행의 새로운 만남’. 공예 작품을 전시하는 방배서래지점, 독립서점 ‘북바이북’이 입점한 광화문역지점, 그리고 식물 크리에이터 그룹 ‘베리띵즈 스튜디오’와 함께 ‘도심 속 자연 아틀리에’를 선보인 잠실레이크팰리스지점이 컬처뱅크 1·2·3호점이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29cm가 입점하는 강남역지점이 컬처뱅크 4호점”이라며 “내년 1월경 서울지하철 1호선 천안역지점에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사랑방 콘셉트의 5호점을 낼 예정”이라고 전했다. 천안역지점은 이 일대에 많이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송금 등 금융업무 지원을 위해 주말에도 문을 여는데, 은행 점포에 이들의 휴식과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 및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컬처뱅크 프로젝트는 은행 공간을 지역 주민에게 환원해드리자는 취지”라며 “앞으로 지역별 특색에 맞는 컬처뱅크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도 말했다. 

    ‘책맥’(맥주 마시며 책을 읽음)을 유행시킨 북바이북이 입점한 광화문역지점도 점차 지역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2~3일 간격으로 열리는 저자 강연회에는 매회 50~70여 명이 참석한다. 한 달에 한 번은 KEB하나은행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 ‘하나은행×북바이북 워라밸 프로그램’을 여는데, 젊은 직원들 중심으로 반응이 매우 좋다고 한다. 김진양 북바이북 대표는 “인문학이나 마케팅 등 30, 40대 직장인이 관심 가질 만한 저자 강연회를 자주 기획하는데, 인근 직장인들의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서울 용산구 우리은행 동부이촌동지점은 커피향이 진하다. 은행 점포 안에 커피전문점 폴바셋이 입점해 있기 때문이다. 10월 10일 오전 9시 은행은 이제 막 영업을 개시했는데 1시간 전 문을 연 카페에서는 벌써 10여 명의 손님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유모차를 밀고 온 아기 엄마, 세탁소에 맡긴 옷을 찾아온 주부, 나이 지긋한 어르신, 노트북컴퓨터를 켜놓은 대학생 등 동네 사랑방 분위기다.



    카페 들이자 고객 20% 증가

    커피전문점 ‘폴바셋’을 영업점 내부에 들인 서울 용산구 우리은행 동부이촌동지점의 외부 전경. [박해윤 기자]

    커피전문점 ‘폴바셋’을 영업점 내부에 들인 서울 용산구 우리은행 동부이촌동지점의 외부 전경. [박해윤 기자]

    우리은행은 2016년 3월 ‘카페 인 브랜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폴바셋을 숍인숍(Shop-in-Shop) 형태로 동부이촌동지점에 입점시켰다. 카페 영업시간은 오전 8시부터 밤 10시로, 은행 영업시간보다 훨씬 길다. 은행 영업이 종료되면 은행 고객의 대기 구역까지 카페 공간으로 활용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은행 업무를 보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점을 고객들이 편하게 여긴다”며 “카페 입점 후 고객이 20% 이상 증가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영업점을 내면서 ‘아트뱅크’ 콘셉트를 선보였다. 제2여객터미널 동쪽 지하 1층에 자리한 185㎡(약 56평) 규모의 점포는 오픈형 천장을 도입해 실제 크기보다 훨씬 넓어 보인다. 자동 연주되는 그랜드 피아노, 우리은행 마스코트 ‘위비’를 트릭아트로 제작한 전시물 등 일반 은행 점포에선 볼 수 없는 요소도 갖췄다. 비즈니스 고객이 많은 점을 고려해 조용하게 전화통화를 할 수 있도록 독립된 전화 부스도 마련했다. 특히 벌꿀 항아리에서 금화가 떨어지는 모습을 그린 트릭아트 작품은 제2여객터미널에서 ‘인증샷’ 포인트로 통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특히 젊은 연인과 어린이들의 호응이 좋다”고 전했다. 

    KB국민은행은 40여 년간 은행 영업점으로 사용하던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 은행 건물을 리모델링해 복합문화공간 ‘KB락스타 청춘마루’로 탈바꿈시켰다. 외부에 노출된 노란 계단은 홍대거리 만남의 장소로 
애용된다. [사진 제공 · KB국민은행]

    KB국민은행은 40여 년간 은행 영업점으로 사용하던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 은행 건물을 리모델링해 복합문화공간 ‘KB락스타 청춘마루’로 탈바꿈시켰다. 외부에 노출된 노란 계단은 홍대거리 만남의 장소로 애용된다. [사진 제공 ·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이 서점, 카페, 편집숍 등을 숍인숍 형태로 은행 점포 안에 들였다면, KB국민은행은 아예 은행 점포에서 ‘은행’을 빼고 전체를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5월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오픈한 ‘KB락스타 청춘마루’는 1976년부터 최근까지 40여 년간 영업점으로 운영되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곳이다. 

    3층짜리 건물에서 ‘은행 요소’는 ATM(현금자동입출금기) 부스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카페, 갤러리, 세미나실, VR(가상현실) 체험실, 디지털 라이브러리 등으로 채웠다. KB국민은행의 간편뱅킹 애플리케이션(앱) ‘Liiv’에 회원가입한 사람이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전시, 강연, 공연 등 행사도 자주 열린다. 청춘마루는 특히 탁 트인 루프톱 공간이 매력적이다. 1층에는 청담동 카페 데바스테이트가 입점해 있는데, 커피 값이 청담동보다 저렴하다. 시그니처 메뉴인 플랫화이트와 넛라테가 청담동에선 6000원이지만, 이곳에서는 각각 3500원과 4500원이다. 요즘 같은 가을 저녁은 따뜻한 커피를 가지고 루프톱에 올라가 홍대거리 야경을 보며 담소를 나누기 딱 좋은 때다.


    홍대거리 명물 된 ‘노란 계단’

    KEB하나은행의 컬처뱅크 3호점으로 ‘도심 속 자연 아틀리에’를 표방하는 잠실레이크팰리스지점(왼쪽).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자리한 KB국민은행의 ‘청춘마루’에서는 다양한 공연과 강연이 펼쳐진다. [사진 제공 ·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의 컬처뱅크 3호점으로 ‘도심 속 자연 아틀리에’를 표방하는 잠실레이크팰리스지점(왼쪽).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자리한 KB국민은행의 ‘청춘마루’에서는 다양한 공연과 강연이 펼쳐진다. [사진 제공 · KB국민은행]

    상권 좋은 홍대거리에서 널찍한 공간을 무료로 ‘과감하게’ 개방하는 것에 대해 허인 KB국민은행장은 “홍대거리가 젊은이의 장소로 유명하지만, 정작 이들만을 위한 공간은 아직 부족하다. 이 지역에는 지점 하나를 더 두는 것보다, 청년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이들에게 더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취지를 살려 청춘마루는 걸터앉기에 충분히 널찍한 계단 공간을 외부에 노출해놓았다. 이 ‘노란 계단’은 홍대거리의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10월 8일 저녁 기자가 찾아갔을 때도 50명 넘는 사람이 계단에 걸터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미화 청춘마루 매니저는 “홍대 미대 학생들의 졸업 작품을 노란 계단에 전시하기로 해 준비 중”이라고 소개했다. 9월에는 토요일 저녁마다 인기 유튜버 창현의 ‘창현거리노래방 쏭카페’가 청춘마루 계단 앞에서 열려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한편 신한은행은 최근 홍대 안에 학생들의 편의를 도모한 젊고 감각적인 이미지의 점포를 선보였다. 홍문관 1층에 마련된 신한은행 홍익대지점은 상주하는 은행 직원이 없어도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셀프 뱅킹존 ‘유어 스마트 라운지(Your Smart Lounge)’를 도입했다. 여기서는 인터넷이나 상담원과 화상통화로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오후 4시까지 운영되는 보통의 영업점과 달리 오후 9시까지 이용 가능하다. 또한 ‘영원한 미소 라운지’라는 이름의 카페 공간에 책상과 의자, 전기 콘센트 등을 설치해 학생들이 편리하게 노트북컴퓨터 등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미대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디지털 갤러리 공간도 마련됐다. 

    지역 및 고객과 소통, 문화적 체험을 강조하는 은행의 변신은 인터넷뱅킹, 모바일뱅킹 등이 일반화하면서 기존 은행이 고객과 접점을 넓히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6월까지 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에서 판매된 상품의 61%가 비대면 거래로 이뤄졌다. 이에 따라 은행 점포 수 감소 추세 또한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6월 말 기준 전국 은행 점포는 6768개로 5년 전 대비 884개가 줄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 점포의 공간 일부를 고객이 선호하거나 해당 지역에 필요한 서비스에 할애하는 것이 은행 이미지를 제고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것이 모바일로 통하는 시대에 장기적으로는 고객을 확보하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며 “은행 점포가 각 지역사회로 스며드는 노력은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4월 홍익대학교 홍문관에서 위성호 신한은행장, 김영환 홍익대학교 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디지털'과 '공유' 컨셉의 신한은행 영업점 개점식이 열렸다.

    지난 4월 홍익대학교 홍문관에서 위성호 신한은행장, 김영환 홍익대학교 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디지털'과 '공유' 컨셉의 신한은행 영업점 개점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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