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현의 심중일언

“서울의 속살 맛볼 공간 계속 만들겠다"

세계 100대 호텔로 한국 유일 핸드픽트호텔 김성호 대표

  •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입력2018-07-24 1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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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영국 잡지 ‘모노클’은 올해 3월호 문재인 대통령 단독 인터뷰 기사로 국내에도 많이 알려졌다. 2007년 창간된 이 잡지는 ‘포린폴리시와 베니티 페어의 만남’이란 표현처럼 깊이 있는 국제기사를 세련된 디자인 감각으로 풀어내는 라이프스타일 잡지를 표방하며 흑자 수익구조를 만들어 인쇄매체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김성호 대표가 영국 라이프스타일 잡지 ‘모노클’의 세계 100대 호텔에 선정된 핸드픽트호텔 소개 페이지(오른쪽)를 보여주고 있다. [조영철 기자]

    김성호 대표가 영국 라이프스타일 잡지 ‘모노클’의 세계 100대 호텔에 선정된 핸드픽트호텔 소개 페이지(오른쪽)를 보여주고 있다. [조영철 기자]

    월간지지만 여름 휴가철과 겨울 휴가철에 통합본을 내 1년에 10차례 발행하는 이 잡지는 세계 각국의 여행정보를 함께 담아낸다. 이를 토대로 여행용 책자도 발행하는데 6월 ‘모노클 가이드 숙박시설’을 펴내면서 세계 100대 호텔을 선정했다. 미국 뉴욕의 그리니치와 하이라인, 영국 런던의 로즈우드, 프랑스 파리의 혹스턴, 일본 도쿄의 데이코쿠, 싱가포르의 래플스, 태국 방콕의 그랜드 하얏트 에라완…. 정직하고 매력적이며 흥미로운 호텔이란 추천 기준에 부응한 이들 호텔 가운데 한국 호텔은 딱 한 곳만 들어갔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핸드픽트호텔이다. 

    2016년 2월 상도동 주택가에 문을 연 이 호텔은 10층짜리로 객실도 43개밖에 되지 않는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화로운 사우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에 가면 꼭 찾아가볼 호텔로 꼽히게 됐을까. 

    호텔 하면 떠오르는 통념을 상당수 깨부순 호텔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월간 ‘신동아’ 11월호 ‘프리츠커 프로젝트’를 통해 소개된 이 호텔의 건축 프로젝트명은 ‘카무플라주(camouflage)’였다. 은폐나 위장이란 뜻의 이 프랑스어가 암시하듯 이 호텔은 웅장함으로 주변을 압도하기보다 동네 풍경 속으로 스며드는 전략을 취했다. 

    벽돌로 지은 주변 건물과 조화를 이루고자 붉은 벽돌로 박스를 치고 구로공단에서 많이 쓰는 철판이라고 해 ‘구로철판’이라 부르는 검은색 철판으로 외관을 장식했다. 호텔 뒤편 외벽과 전체 내벽은 노출콘크리트를 써 고풍스러운 근대 건축의 느낌을 부여했다. 보통 1층에 두는 로비를 9층으로 올린 이유 가운데 하나도 체크인/아웃하는 투숙객으로 1층이 붐비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또 지하 1층에 키즈룸과 꽃집, 카페, 레스토랑을 설치해 동네 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10층 꼭대기 연회장은 주로 동네 주민들의 돌잔치와 팔순잔치 공간으로 애용되고 있다. 



    게다가 이 호텔이 가장 자랑하는 경관은 상도동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오래된 주택단지다. 서울시에서 무분별한 고층아파트 건립을 막고자 지정한 근린재생사업단지 14곳 중 하나로 지금은 서울에서 거의 찾기 어려운 정겨운 골목길 풍경을 보여준다. 옛날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이 풍광에 외국인 관광객들은 “서울의 속살을 본 기분”이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고 한다.

    3대째 상도동 토박이

    이 호텔을 기획하고 짓고 운영하는 사람이 ‘모노클 가이드 숙박시설’에서 ‘3대째 살던 집에 호텔을 세운 션 킴’으로 소개된 김성호(44) 대표다. 호텔이 있는 공간은 할아버지 때부터 가업으로 운영하던 주유소 자리였다. 

    “제가 고3 때까지 주유소 2층 집에서 살다 인근 주택으로 이사를 갔고, 결혼하면서 흑석동으로 분가해 나갔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상도3동에 살고 계십니다. 1972년부터 할아버지가 주유소를 하셨고 제가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가 물려받아 운영하셨죠. 2014년 주유소 문을 닫고 그 자리에 호텔을 지은 겁니다. 처음엔 어머니가 걱정이 많으셨지만 지금은 아주 흡족해하십니다.” 

    상도동에서 태어나고 자라서인지 그는 상도동 향토사는 물론, 맛집과 노포의 역사까지 환히 꿰고 있었다. 호텔 총매니저도 맡고 있는 그는 투숙객들에게 상도동 투어링 산책정보를 제공하는 것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상도동은 고지대 산길에 자리해 높은 길이 지나는 동네라는 뜻의 상도동(上道洞)이라는 지명을 얻게 됐습니다. 정조가 화성행차 당시 이 길에서 잠시 쉴 때 숲이 우거지고 인적이 드물어 으스스하다면서 장승을 세우게 했는데 그게 지금의 장승배기가 된 겁니다. 그래서 저희 호텔 옥상에 가면 웬만한 서울 풍경이 눈에 다 들어옵니다. 여의도 서울세계불꽃축제를 보려고 우리 호텔에 투숙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떤 미국인 가족 손님은 제가 소개한 동네 순댓국밥집에 갔다 국밥집 앞에서 순대 삶는 모습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행복해했고, 어느 일본 손님은 우리 호텔 인근 대중탕에서 목욕한 뒤 동네 맛집을 순례하는 재미로 한국에 올 때마다 우리 호텔에 묵습니다.” 

    김 대표는 이런 핸드픽트호텔의 차별성을 ‘로컬커뮤니티 호텔’이라고 이름 붙였다. 관광지로서 서울이 아니라 진짜 서울의 삶을 체험하게 해주는 호텔을 짓고 싶었다는 것이다. 

    “중학생 때 할아버지를 따라 그랜드하얏트호텔에 갔다 호텔에 반했죠.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해 경영컨설턴트가 된 뒤 해외 출장을 가면 호텔 자체가 궁금해 3박 4일이면 3군데, 4박 5일이면 4군데 식으로 매일 호텔을 옮겨가면서 장단점을 비교했어요. 그러다 유명 호텔들의 컨설팅 작업을 하면서 ‘왜 우리나라엔 이런 호텔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외국에는 크고 좋은 호텔도 있지만 투숙객의 다양한 취향에 맞춰 호텔 선택지가 다양합니다. 반면 한국은 호텔 하면 무조건 크고 비싸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한데, 막상 호텔이 여행의 수단 이상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호텔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될 수 있는 호텔을 짓자고 생각했죠. 그중 하나가 관광이 아니라 서울 사람들의 실제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하게 해주는 로컬커뮤니티 호텔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잘 아는 상도동에 호텔을 지은 겁니다.”

    유커보다 산커가 찾는 호텔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물론 상도동을 호텔 대지로 정한 데는 서울을 찾는 관광객이 선호하는 강북 고궁과 홍대 앞, 여의도는 물론, 강남 신사동 가로수길과 한류스타거리가 있는 청담동의 중간지대라는 입지적 유리함도 고려했다. 실제 핸드픽트호텔에 묵는 투숙객은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단체관광객은 드물고 스스로 행선지를 찾아다니는 개별관광객이 많다. 

    “외국인 관광객의 경우 우리 호텔은 유럽이나 일본 손님이 많습니다. 중국인 관광객은 단체관광에 나서는 유커(游客)와 개별관광을 선호하는 산커(散客)로 나뉘는데, 우리 호텔을 찾는 중국인은 대부분 산커입니다. 한류를 좋아하는 분의 경우 해외 팬이 아닌 국내 팬을 위한 팬미팅에 참석하려고 한국을 찾아오죠. 의외로 내국인 투숙객도 많은데 대부분 혼자 휴식을 취하려는 분들이에요. 또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온 아이를 데려와 옛날 골목길 체험을 해주려는 부모들도 있고요.” 

    그럼 핸드픽트호텔이 벤치마킹한 호텔은 어디일까. 그 호텔들은 모노클 선정 100대 호텔에 들어갔을까. 

    “책에도 우리 호텔을 이야기하면서 언급한, 일본 도쿄 클라스카호텔이 있습니다. 상도동처럼 주택가에 들어선 크지 않은 호텔이지만, 지역주민들과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실제 도쿄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호텔에서 자전거를 빌려줘 도쿄 속살을 천천히 음미할 수도 있죠. 홍콩 코트야드 바이 메리어트호텔도 있습니다. 홍콩 주룽반도 달동네에 자리한 호텔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홍콩 서민의 삶을 느끼고 체험하게 해줘 각광받는 호텔이 됐죠. 그 호텔에 묵을 때 자정 무렵 호텔 식당이 문을 다 닫아 출출해 동네 과일가게에 갔는데, 백화점에서도 구경하지 못한 과일이 무척 많은 데다 싸고 맛도 있어서 그걸 사들고 나오며 정말 짜릿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정작 이 호텔들은 이번 선정에서 빠지고 우리 호텔만 들어갔더군요. 참고로 100대 호텔 가운데 아시아권은 일본 10곳, 홍콩 2곳, 싱가포르 2곳, 태국 방콕 1곳, 그리고 한국에선 핸드픽트호텔 이렇게 16곳이었습니다.” 

    호텔 이름을 핸드픽트로 삼은 이유는 호텔 곳곳에 김 대표가 손수 뽑은 인테리어 장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호텔 1층 입구를 장식한 사슴머리 예술품인 ‘헌팅 트로피(Hunting Trophy)’와 지하 1층 라운지에 있는 ‘노란목도리담비’는 폐플라스틱 의자를 잘라서 만든 김우진 작가의 친환경미술품이다. 9층 로비 리셉션 데스크 위에 붙어 있는 목조조각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규격 사이즈의 합판을 한 조각도 버리지 않고 의자 4개를 만들 수 있도록 한 문승지 작가의 합판도안을 작품화한 것이다. 또 그에 따라 조립된 것들은 지하 1층 라운지 의자로 쓰이고 있다. 

    핸드픽트호텔 뒤쪽 외벽과 옥상, 지하 1층의 그래피티는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적인 길거리 예술축제 ‘파우와우코리아’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이다. 핸드픽트호텔의 이런 독특한 개성을 해외에서 먼저 알아본 셈이다. 실제 이 호텔에 투숙했던 사람들의 재방문율이 지난해에만 49.5%에 이르렀다고 한다. 

    “통계를 뽑아보면 우리 호텔이 오픈하고 상도동에 7000~8000명의 외국인이 찾아왔더군요. 우리 호텔 때문에 상도동이란 숨겨진 공간이 관광자원으로 개발된 셈이라 더욱 뿌듯합니다. 우리 같은 로컬커뮤니티 호텔이 많아지면 지역경제에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호텔 뒤에 항아리를 파는 곳이 있는데 어린이 관광객이 거기서 산 작은 항아리를 신주단지처럼 품고 오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호텔 자체가 관광 목적이 되면 로컬경제에 더 큰 혜택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재밌는 공간을 계속 만들고 싶다”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지은 지 2년 된 호텔이 이처럼 각광받자 국내 호텔업계와 리조트업계에서도 벤치마킹에 나섰다. 호텔신라와 아난티 코리아, 한화리조트 같은 대기업은 물론, 로컬 호텔을 지으려는 사람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문의차 방문한 분들 가운데 협업을 제안해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중에서 서울 이태원에 들어서는 주상복합건물의 상층부를 핸드픽트호텔이라는 브랜드로 위탁경영하자는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태원 핸드픽트호텔은 상도동 핸드픽트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로컬커뮤니티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차별화 전략을 구상 중입니다. 또 핸드픽트호텔보다 작은 규모의 호텔 운영 제안도 여럿 들어와 서브브랜드 호텔 사업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어비앤비(Airbnb)에서도 가입 제의를 해와 정식으로 가입했습니다. 에어비앤비 관점에서 우리 호텔은 민박이란 하드코어로 가기 전 완충적 역할을 하는 ‘버퍼 존(buffer zone)’이라 할 수 있죠. 요즘 여행 트렌드가 관광이 아닌, 현지에서 살아보는 것으로 바뀌고 있어 우리 같은 로컬커뮤니티 호텔에서 지내며 현지 적응 여부를 맛본 뒤 장기 민박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호텔왕이 되는 거 아니냐는 농을 던졌다. 세계적 호텔체인이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호텔을 제외하고 여러 호텔을 운영하는 개인의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였다. 

    “엄밀히 따지면 저는 전통적인 호텔리어는 아닙니다. 실제 호텔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그런 분들은 호텔 소유에 관심이 많더군요. 저는 호텔을 많이 소유하는 호텔왕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가치 있고 기억에 남을 공간을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 실제 우리가 준비하는 프로젝트 가운데 제가 소유하는 것은 없습니다. 언제 돈 벌어 언제 땅 사서 언제 짓겠어요. 저는 그것보다 각자의 전문 분야 사람들과 손잡고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금융권에 계시는 분은 돈이 많으니까 자본을 대고, 상가개발 같은 일은 부동산개발 전문가가 맡고, 호텔은 제가 잘 아니까 제가 맡는 거죠. 그렇게 해서 로컬분이건 외국분이건 ‘아, 서울에서 거기 한번 가봤어?’라고 물어볼 만한 공간을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 서울을 그런 공간적 콘텐츠가 풍부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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