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버닝’(왼쪽). 4월 24일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스티븐 연, 전종서, 유아인 그리고 이창동 감독. [김진환 스포츠동아 기자]
올해 칸영화제는 5월 8~19일 열린다. 제71회로 새로운 10년의 시작점에 들어서서일까. 과거와 차별화된 시도가 몇몇 눈에 띈다. 인터넷과 디지털카메라 시대에 올드 미디어로서 영화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넷플릭스와 짧았던 열애, 그리고 결별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개막작 ‘에브리바디 노즈’. [사진 제공 · IMDB]
또 다른 변화는 일반시사 때 레드카펫에서 ‘셀카’ 일절 금지다. 레드카펫에 서는 배우나 감독은 물론, 그들을 보러 몰려온 팬들이 디지털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담지 못하게 한 것이다. 레드카펫에 선 영화인이야 그럴 수 있다지만 그들을 보려고 몰려온 팬들을 어떻게 자제시킬 수 있을까.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영화잡지 ‘스크린’과 인터뷰에서 “평소엔 셀카를 맘껏 찍어도 교회에선 안 그러지 않느냐”며 영화제의 신성함을 강조했다. 영화 팬들이 이런 엄숙함을 얼마나 존중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두 가지 변화는 이율배반적이다. 언론시사 선행 폐지가 영화제 운용의 민주화에 부응한다면 영화제 권위 강화를 꾀하는 셀카 금지는 그에 역행한다. 이런 분열성은 미국 온라인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와 스캔들이 2년째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스캔들은 칸영화제와 넷플릭스의 열애 때문이라면 올해는 둘의 결별 때문에 발생했다.
칸영화제는 지난해 넷플릭스가 제작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와 노아 바움백 감독의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를 경쟁부문 후보로 선정했다. 하지만 프랑스극장협회가 스트리밍 서비스 영화는 극장 스크린에서 상영되지 않기 때문에 영화라고 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넷플릭스는 이를 감안해 한국에서처럼 프랑스에서도 이들 영화의 극장 상영을 추진했다. 하지만 극장에 걸린 영화는 상영 후 3년이 지나야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프랑스 현행법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칸영화제는 결국 올해부터 스트리밍 영화는 경쟁부문에 진출할 수 없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그 대신 주목할 만한 시선 같은 비경쟁부문의 문호는 열어둔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이번엔 넷플릭스가 비경쟁부문에 출품하기로 했던 작품까지 칸영화제에 출품하지 않겠다고 전면 보이콧을 선언하고 나섰다. 넷플릭스에서 제작 중인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노르웨이’, 제러미 솔니에르 감독의 ‘홀드 더 다크’ 같은 화제작을 칸에서 볼 수 없게 된 것. 진짜 뼈아픈 일격은 올해 넷플릭스가 복원한 오슨 웰스의 미공개 유작 ‘바람의 저편’을 칸영화제에서 최초 공개하는 계획이 취소된 점이다.
이창동 감독의 수상 가능성
테리 길리엄 감독의 폐막작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사진 제공 · IMDB]
올해 경쟁부문 초청작 21편 가운데 한국 영화가 한 편 포함됐다. 칸영화제가 임권택, 홍상수 감독만큼 사랑하는 이창동(64) 감독의 ‘버닝’이다. 이 감독이 ‘시’(2010) 이후 8년 만에 발표한 작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에서 영감을 얻어 한국적 상황에 맞게 번안했다. 배우 유아인과 ‘옥자’에도 출연했던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 신예 전종서가 출연하는 스릴러다.
이 감독의 영화는 6편 가운데 5편이 칸에 초청됐다. 이 중 경쟁부문에 진출한 ‘밀양’(2007)과 ‘시’는 각각 여우주연상(전도연)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한마디로 타율이 엄청나다는 점에서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20년간 칸영화제에 참석한 영화평론가 전찬일 씨는 “이창동 감독이 워낙 과작이라 다음 작품은 10년 안팎의 세월을 기다려 할지 모르기 때문에 칸이 이번에도 큰 상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버닝’과 경쟁할 만한 영화로 어떤 작품이 있을까. 개막작 ‘에브리바디 노즈’와 터키 감독 누리 빌게 제일란의 ‘더 와일드 페어 트리(돌배나무)’, 프랑스 여성감독 에바 위송의 ‘걸스 오브 더 선(태양의 소년들)’, 그리고 레바논 출신의 여성감독 나딘 라바키의 ‘가버나움’이다.
칸영화제 개막작은 대부분 흥행을 고려해 미국 아니면 프랑스 유명 감독의 작품이 올라간다. ‘에브리바디 노즈’는 영어 제목을 쓰긴 했지만 실제 부부인 페넬로페 크루즈와 하비에르 바르뎀이 출연하는 스페인 영화다. 스페인 영화로 칸영화제 개막작에 오른 작품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나쁜 교육’(2004)에 이어 두 번째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감독이 스페인인이 아니라 이란의 아스가르 파르하디(46)라는 점이다. 파르하디 감독은 2011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2013년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2차례 수상(2012년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2017년 ‘세일즈맨’)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연극연출가 출신답게 탄탄한 각본과 예리한 감수성으로 유럽,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러브콜을 받고 있는 감독이다. 이번 작품은 아르헨티나에 사는 스페인 여성이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여행 왔다 겪는 심리 스릴러로 알려졌다.
파르하디 감독이 21세기 이란을 대표한다면 21세기 터키를 대표하는 감독이 누리 빌게 제일란(69)이다. 사진작가 출신으로 뒤늦게 영화감독이 됐는데, 데뷔작 ‘작은 마을’(1997)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칸영화제에선 ‘우작(Uzak)’(2002)으로 심사위원대상, ‘윈터슬립’(2014)으로 황금야자수상(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파르하디 감독의 영화가 치밀하면서도 울림이 크다면 제일란 감독의 영화는 몽환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그가 ‘윈터슬립’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돌배나무’는 책 출판 비용을 마련하고자 낙향한 작가가 절망적 상황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내용을 3시간 8분 분량에 담았다.
칸영화제에서 여성감독의 영화가 황금야자수상을 수상한 경우는 딱 1편이 존재한다. 호주 출신 제인 캠피언 감독의 ‘피아노’(1993)다. ‘미투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지만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21편 중 여성감독의 영화는 지난해와 같은 3편에 불과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페미니즘 주제의 여성감독 영화가 더 주목받고 있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이 페미니즘 영화에 자주 출연한 호주 출신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이란 점도 이런 기대를 뒷받침한다.
거장의 귀환과 화제의 SF영화
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 [사진 제공 · 칸영화제]
올해 칸영화제에서도 거장의 귀환은 어김없이 이뤄졌다. 경쟁부문에선 누벨바그의 영원한 기수 장 뤽 고다르(88)의 ‘이미지의 책’, 흑인인권의 기수 스파이크 리(61)의 ‘블랙 클랜스맨’, 이란 영화의 적장자로 불리는 자파르 파나히(58) 감독의 ‘스리 페이스(세 얼굴)’이 초청됐다. 비경쟁부문 초청작 중에는 덴마크를 대표하는 라스 폰 트리에(62) 감독의 스릴러 ‘더 하우스 댓 잭 빌트(잭이 지은 집)’와 폐막작으로 선정된 테리 길리엄(78)의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가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이번 칸영화제는 두 편의 SF영화 상영으로도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첫 번째 영화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새로운 스핀오프 ‘한 솔로 : 스타워즈 스토리’로, 스타워즈 원작에서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독불장군 캐릭터의 젊은 시절 모험담을 그린 작품이다. 스타워즈 주인공인 루크 스카이워커보다 더 인기 있는 캐릭터였다는 점에서 스타워즈 열혈팬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또 다른 작품은 올해로 발표 50주년을 맞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다. SF영화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가져온 이 영화는 ‘칸 클래식’ 코너를 통해 새롭게 상영된다. 영화 팬들을 더 흥분케 한 점은 ‘인터스텔라’(2014)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이 이 영화의 70mm 필름 판본을 소개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이 밖에 한국 영화로는 윤종빈 감독의 ‘공작’이 비경쟁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 상영된다. 남북을 오가는 이중 공작원 흑금성의 실화를 토대로 했다. 여기에 출연한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이 모두 레드카펫을 밟을 예정이다. 구상범 감독의 단편 ‘우체통’은 비경쟁 단편 부문에, 김철휘 감독의 단편 ‘모범시민’은 비평가주간 부문에 각각 초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