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대북특사단이 3월 5일 저녁 평양 조선노동당 본관에서 만찬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청와대]
이번 일은 북한과 우리의 관점, 그리고 미국의 관점에서 두루 살펴봐야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관점은 친(親)청와대와 그렇지 않은 관점으로 나눌 수도 있다. 먼저 북한의 관점이다. 북한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을 특사로 보냈고, 우리 특사단의 방북 때는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까지 나와 환대했다. 왜 그랬을까.
절대다수의 전문가는 미국의 압박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미국은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일본과 괌 등에 상당한 전략 자산을 전개하고 다양한 훈련을 해왔다. 미국은 한미연합사령관이 아니더라도 태평양사령관을 시켜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장 북한을 칠 듯 ‘미치광이 전술’을 구사했는데, 이것이 상당한 압박을 줬다.
트럼프로부터 압력 받는 남북한 지도자
경북 포항 해병대 훈련장에서 열린 한미연합 공지전투 훈련에 참가한 해병대 공병부대가 상륙돌격장갑차(KAAV)에서 미클릭(MICLIC)을 발사해 지뢰지대를 개척하고 있다. [뉴시스]
한미연합사령부에 대해서는 한국 대통령도 50%가량 통수권을 발휘할 수 있지만, 태평양사령부는 미국 대통령이 전적으로 통수권을 행사한다. 주한미군은 태평양사령부의 통제도 받는다. 주한미군은 전시가 돼야 한미연합사령부의 통제를 받는다. 미국은 이 차이를 정확히 활용했다. 지난해 12월 4~8일 태평양사령부는 한국 공군과 함께 ‘비질런트 에이스’ 훈련을 실시했다.
이 훈련에 스텔스기 F-22 6대와 F-35(A와 B) 18대, 전략폭격기 B-1B 등 230여 대의 한미 공군기가 참여했다. 그때만 해도 북한 6차 핵실험의 여운이 강력했으니 한국 공군도 당연히 참여한 것이다. 미군기는 괌과 일본, 한국에 있던 것들인데, 주목할 점은 참여한 공군기가 230여 대라는 사실이다. 전투기는 많으면 하루 여섯 번까지 이륙할 수 있다. 230여 대가 그렇게 했다면 1380번 출격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정도의 출격은 전쟁 시에나 볼 수 있다. 스텔스기 24대까지 그렇게 작전했으니 완전한 전면전 연습이었다. 미국 스텔스기들이 어디까지 들어갔다 나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관계자들은 북한이 그때부터 미국이 진짜 공습을 준비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본다. 이러한 미국의 행동이 여러 소문과 해석을 낳았다.
2월 말 북한 선봉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건조한 날씨 탓에 불은 일주일 가량 계속됐고 여러 위성이 이를 포착했다. 선봉항에는 러시아로부터 유조선으로 들여온 원유를 정유하는 승리화학이 있다. 관계자들은 ‘미국이 북한을 위협하려고 비밀리에 승리화학을 공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승리화학 가까이 있는 한 공장 인근에서 불이 났고 소방시설이 부족해 끄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해 중반부터 북한에서는 지표면에서 매우 가까운 곳을 진앙으로 한 규모 2의 약진이 여러 차례 감지됐다. 이러한 지진은 지표에서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미국 측이 북한의 미사일 시설이나 북한이 발사하려는 미사일을 몰래 공격했다는 분석이 쏟아졌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국은 한국 이상으로 추운 알래스카에서 여러 육군 부대를 동원해 침투 연습을 거듭했다. 이는 북한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끝내자마자 지상군을 투입해 대량살상무기(WMD)를 탈취하고 참수작전을 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전쟁 신호가 강력해진 것이다. 이에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는 문 대통령이 거듭 초청하자, 북한은 특사 파견으로 대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모라토리움이 시간 끌기가 되지 않으려면
미국 항공모함 3척이 참가한 동해상 한미연합훈련 사흘째인 지난해 10월 13일 로널드 레이건호(CVN 76) 갑판에서 해군들과 비행기들이 훈련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우리 측 수석대북특사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남북)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측은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 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명백히 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남북대화를 하는 동안에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동결하겠다는 조건부 ‘모라토리움’으로 이해됐다.
청와대는 비핵화를 뜻하는 완벽한 폐기(CVID)는 동결 다음에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북한은 비핵화 전제조건으로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원하는데, 미국은 비핵화를 먼저 해야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태도다. 이 간극은 너무 커 누구도 해결하기 어렵다.
따라서 청와대는 모처럼 열린 대화의 장을 즉시 미국으로 넘기려 한다. 문 대통령은 우리 측 특사가 돌아온 후 “북한 비핵화의 길이 열렸다”며 비핵화와 북·미 대화를 강조했는데, 이는 특사 교환과 3차 남북정상회담의 목표가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 마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충분한 신뢰가 없다.
김정은의 조건부 모라토리움 선언은 북한이 1차 핵실험 전에 했던 모라토리움을 연상케 한다. 1994년 서울 불바다 위협을 한 북한은 미국과 협상을 벌여 핵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경수로 2기를 지원받는다는 제네바합의를 도출했다. 그런데 이 합의에는 미사일 분야가 빠져 있었다. 이에 북한은 장거리 발사체 개발에 주력해 1998년 8월 대포동 1호를 발사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북한은 이듬해 1차 연평해전을 일으켜 긴장을 강화한 후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1차 남북정상회담을 갖는 ‘깜짝 쇼’를 벌였다. 그리고 미사일을 쏠 것 같은 위기를 조성하면서도 쏘지 않았다. 북한은 때리고 어르는 전술을 거듭해 실리를 챙긴 것이다. 이 회담 후 북한 경제가 좋아지자 이듬해 5월 스웨덴 총리를 만난 당시 김정일 총서기는 “2003년까지 시험발사를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제네바합의는 재처리에 의한 핵개발만 동결하기로 돼 있었다. 이에 북한은 농축에 의한 핵개발도 시도했는데, 2002년 이를 알아차린 미국이 제네바합의 폐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대북 군사제재는 가하지 않았기에 북한은 그해 2차 연평해전을 일으키는 것으로 맞받아쳤다. 하지만 그 후 북·일 정상회담에서는 일본으로부터의 지원을 받아내고자 모라토리움 연장을 밝혔다.
통미를 위한 통남
2007년 10월 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당시 노무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뉴시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며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고 선언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정리하면 그때까지 한미 양국은 시간을 끌면 북한이 자멸할 것이라 보고 기다렸는데, 북한이 핵을 완성할 시간만 줬다는 결론이 나왔기에 트럼프 정부는 군사옵션을 포함한 다른 방안의 모색에 들어간 것이다.
그때까지 북한이 위협해 지원을 받아낸 나라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었다. 트럼프 정부는 세 나라의 대북지원을 차단하고자 노력했다. 이것에 제일 먼저 호응한 나라는 한국과 똑같이 두 차례 북한과 정상회담을 한 일본이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한국도 개성공단 철수를 결정하는 등 재빨리 돌아섰다. 그러나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남북 교류를 재개하고자 한다.
중국 민간기업 중에는 북한에 하청을 줘 돌아가는 곳들이 있다. 이러한 기업들은 생계형이기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를 어겨가며 북한과 교류해왔다. 정보기관을 통해 이러한 접촉을 확인한 미국은 중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리고 통상 문제까지 거론하자 중국 당국은 차단에 나섰다. 통상 압박은 문재인 정부에도 상당한 스트레스가 됐기에 문 정부는 미국과 상의한 후 북한과 접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압박으로 북·미 접촉은 사실상 사라졌는데, 북한이 통미를 위한 통남으로 선회하고 성공적인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와 남북대화에 몰두한 문재인 정부가 움직임으로써 북·미 접촉 창구가 열렸다. 그러나 북한이 과거 모라토리움을 핵개발을 위한 시간 끌기용으로 활용한 선례가 있어 트럼프 정부는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대화에 나서겠다고 한 것은 미국의 강력한 군사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자화자찬하고 있어 대북압박을 풀 가능성은 적다. 미국의 압박이 없었으면 남북 특사 교환은 없었으리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평가는 부정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북·미 대화를 주선하려는 문 대통령의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답답함은 3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오찬회동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북한이 3차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한 것은 시간 끌기용이 아니냐”고 물으니 문 대통령이 “그러면 홍 대표께서는 다른 대안을 갖고 있느냐”라고 반문한 것에서 확인된다. 회담으로는 완벽한 비핵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지만 북·미 회담을 주선해야 하는 고민을 문 대통령은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준비한 군사작전을 펼치지 못하게 하면서 완벽한 비핵화를 이루는 길은 없을까. 있다면 그중 하나는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완벽한 비핵화를 위한 대화 창구로 김정은을 선택하면 그 체제를 붕괴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 모순을 푸는 방법은 무엇일까. 3월 초 열린 예비역 장성들 모임에서 A씨는 심리전과 공작 방안을 제시했다.
차도살인지계
김영철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통일선전부장)이 2월 25일 오전 경기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경하고 있다. [뉴시스]
정의용 수석대북특사(국가안보실장)가 3월 5일 오후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 위원장 뒤에 여동생 김여정이 서 있다. [뉴시스]
그는 그러한 관점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은 서울에서 열게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향후 회담이 셔틀식으로 열린다면 회담 장소를 서울로 바꿔 북한 요인들을 들어오게 해야 한다. 북한 대표단의 서울 방문이 잦아지면 우리 쪽에서는 남남(南南)갈등이 극대화되겠지만, 그러한 시위도 우리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니 괘념치 말고 김정은까지 서울에 오게 만들어야 한다. 그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기 어려워진다. 그 와중에 탈북하는 북한 요인이 나온다면 미국은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김정은은 담대한 것 같지만 트럼프의 위협에 눌려 대화를 선택하는 약한 성품도 갖고 있다. 그러한 김정은의 성품을 계속 활용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던 김정일과 우리 특사를 만난 김정은 사이에는 분명한 내공 차이가 발견된다.”
그는 “우리가 이러한 노력을 할 때 미국이 해상봉쇄를 포함한 대북 군사압박을 강화하고 중국을 상대로 통상압력을 가중한다면 김정은 정권이 비핵화의 길을 택할 수 있다”며 “모든 노력은 단단한 한미공조를 전제로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