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
요즘 대학생과 직장인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VR(가상현실)방’에 대한 얘기다. PC방에서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VR방에서 VR게임을 즐기는 이가 늘고 있다. 올 초부터 서울 홍대 앞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한 VR방은 현재 전국적으로 160개 업체가 성업 중이다.
10월 16일 오후 4시 무렵 기자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자리한 VR방 ‘더메이즈VR’를 찾았다. 원래 이곳은 ‘방탈출 카페’였는데 4월 VR방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현재 더메이즈VR는 홍대점을 비롯해 천호·노량진점을 운영 중이며 경남 김해, 경북 영덕, 전남 여수 등 지방에도 가맹점을 열었다.
30% 재방문, 한 달 순수익 1000만 원 이상
홍대점에는 12개 방이 마련돼 있다. 최대 4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인룸 1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방에서는 1명씩만 게임이 가능하다. 움직임이 많은 VR게임의 특성상 여러 사람이 이용할 경우 부딪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인룸에는 벽면 한쪽에 모니터가 부착돼 있어 게임을 하지 않을 때는 모니터로 일행의 게임 장면을 시청할 수 있다.이용객이 많지 않은 시간대여서인지 이날 홍대점에는 손님 3명이 각각 1인룸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 2명은 ‘과일 자르기’와 ‘도넛 줍기’ 게임을, 남자 1명은 ‘스키 타기’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VR 헤드셋을 끼고 허공에 손을 휘젓는 민망한 몸동작을 보니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특히 도넛 줍기 게임을 하고 있는 여성은 바닥에 넘어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도넛 줍기 게임은 20층 건물 옥상 난간에 놓인 외나무다리를 건너면서 도넛을 줍는 미션을 완수해야 한다. 만약 실제 상황이라면 다리가 오들오들 떨려 한 발짝도 내딛기 힘들 것이다. 방 밖에 설치된 모니터로 보니 방금 이 여성은 도넛을 주우려던 순간 가상의 인물이 등을 떠밀어 외나무다리에서 추락한 것이었다. 미션을 완수하려면 등이 떼밀리기 전 빠르게 도넛을 주워야 한다.
기자는 가장 많은 사람이 즐긴다는 ‘과일 자르기’에 도전했다. 정면으로 날아오는 수많은 과일을 일사불란하게 칼로 베어야 하는데 정확한 타이밍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보다 못한 VR방 직원이 “한 템포 빠르게 움직인다고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게임이 끝날 때까지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난생처음 도전해본 VR게임에서 점수를 많이 내진 못했지만 헤드셋을 벗는 순간 시작 전에 느꼈던 불안감은 싹 가시고 벌써 ‘또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VR게임에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는 얘기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실제로 이곳의 재방문객은 전체 이용자의 30%에 달한다. 황명하 점장은 “초등학생 단골도 있다. 아이가 VR게임을 좋아해 엄마 아빠까지 가족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다. 인당 이용 요금은 20분 6000원, 30분 9000원, 1시간 1만6000원이다. 다인룸은 1시간에 2만 원으로, 여러 명이 함께 올 때는 다인룸을 이용하는 게 경제적이다. 이곳은 방 하나를 정한 뒤 한 게임이 끝나면 새로운 게임을 선정해 계속 즐길 수 있다.
현재 VR방의 주요 이용객은 대학생과 직장인이다. 성수기는 방학 때고, 비수기는 시험 혹은 축제 기간이다. 최근에는 1인 방송을 운영하는 게임 전문 크리에이터의 방문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일부 방에는 크리에이터들이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을 할 때 편리하게끔 연두색 백스크린이 설치돼 있었다.
이곳의 월 매출액은 3000만~4000만 원이라고 한다. 임대료와 인건비, 운영비를 제외한 한 달 평균 순이익은 1000만 원 정도로 수익률도 꽤 높다. 황 점장은 “4월 오픈 이후 입소문이 많이 나기 시작했다. 인터넷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후기를 보고 찾아오는 손님도 많다. 대부분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며 좋아한다”고 말했다.
정부 규제 완화로 사업하기 편해져
최근 들어 정부 규제가 대폭 완화돼 과거에 비해 사업 환경도 좋아졌다. 현재 VR방은 PC방과 동일한 규제가 적용되는데,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8월 8일부터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했다. 당시 가장 큰 쟁점은 PC방 내 칸막이 설치 기준이었다. 기존 PC방은 개별 컴퓨터를 구분하는 칸막이 높이가 1.3m로 제한돼 있었는데, 이는 신체 움직임이 많은 VR방에는 합당치 않은 규제였다. 콘텐츠 기기 이용자의 안전을 위해 좀 더 높은 칸막이가 필요했던 것.
이에 문체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고글 형태의 HMD(Head Mount Display) 등을 이용하는 VR게임 중 몸동작이 필요한 게임물을 설치 및 운영할 때는 내부가 보이는 투명 유리창 등 칸막이를 1.3m보다 초과해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덕에 VR방은 각각의 방으로 구분된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 대신 밀폐된 공간은 아니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업시간도 조정됐다. PC방은 영업시간 제한이 없지만 이용자에게 음식(라면 등)을 제공하면 복합유통게임제공업에 해당돼 영업시간이 오전 9시~밤 12시로 제한돼 있었다. 하지만 개정안은 이러한 제한을 없애 24시간 영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한편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있다.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온 게임물 등급심의에 관한 문제다. 현재 PC방과 VR방은 대부분 국내 콘텐츠가 아닌 ‘스팀’ 등 해외 게임 플랫폼에서 유료로 게임 콘텐츠를 다운로드해 사용하는데, 이 중에는 게임물관리위원회 심의를 받지 않은 콘텐츠가 많다. VR방 사업자가 직접 각 게임의 인증을 받으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고, 무엇보다 해당 업체에 적절한 소통창구가 마련돼 있지 않아 연락조차 닿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군주 한국가상증강현실산업협회 수석연구원은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원칙을 명확하게 정할 필요가 있다. 해외에서 받은 등급을 국내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방법이 있고, 해외 법인들이 국내 로펌 등에 등급 심의 관련 업무를 대행하게끔 하는 방법도 있다. 합리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않은 채 규제만 하려 들면 자칫 갈등의 골만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