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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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대 높던 다이슨 국내 업계 반격에 움찔

삼성 · LG 고성능 무선청소기 도전장… 1위 다이슨 가격 할인 반격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7-09-25 14: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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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선 진공청소기는 오랫동안 집 안 청소 때 효자 구실을 해왔다. 그러나 코드를 꽂고 사용하다 보면 본체 바퀴에 전선이 걸려 이동에 방해가 된다는 점에서 사용자들은 늘 불편을 느꼈다. 2000년대 각종 무선 진공청소기가 출시됐지만 흡입력이 약해 유선청소기를 보조하는 데 그쳤다. 몇 년 전까지 무선청소기로 집 안 전체를 청소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런 불편함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무선청소기가 2011년 나왔다. 영국 가전업체 다이슨(Dyson)의 무선 핸디스틱 청소기 ‘V2’이다. 우리나라에는 2012년 공식 출시된 이 청소기는 모터가 바닥 쪽이 아니라 손잡이 부근에 자리 잡은 새로운 형태의 ‘상중심(上中心)’ 디자인으로 화제가 됐다. 기존 무선청소기 제품의 무게중심이 아래로 쏠려 사용자의 팔에 힘이 더 들어가는 불편함을 개선한 것이다. 3시간 반 동안 충전해 15분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핸디형 청소기 가운데 가장 흡입력이 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다이슨은 2년마다 제품 성능을 높여 신제품을 출시했다. 초창기 65AW(에어와트)에 불과하던 흡입력은 지난해 출시한 ‘V8’에 이르러 115AW까지 올라갔다. 2014년에는 KBS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배우 송일국이 이 제품으로 집 안 청소를 하는 모습이 나와 주부들 사이에서 ‘송일국 청소기’로도 알려졌다.  




    ‘최초’ 타이틀 달고 가파른 성장세

    국내 가전업체들이 비슷한 청소기를 내놨지만 흡입력, 디자인 등에서 다이슨과 도리어 비교만 당할 뿐 기세를 꺾지 못했다. 다이슨 무선청소기는 국내 경쟁자가 없는 상황에서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제품 기능에 따라 가격 차이는 나지만 백화점 매장에서 80만~120만 원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가격에도 꽤 팔려나갔다. 주로 서울 강남권에서 구입 비율이 높았는데 가사도우미들이 “일하러 가기만 하면 다들 이걸 쓰더라”고 말할 정도였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한국보다 10만~20만 원 싸게 판매해 해외 직접구매(직구)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올해 초 다이슨 무선청소기 ‘V8 앱솔루트’를 영국 직구로 82만 원에 구매했다는 주부 김보라 씨는 “백화점에서 제품 가격을 확인했는데 110만 원이었다. 보증서도 확실하고 애프터서비스(AS)도 가능해 백화점에서 살까도 고민했지만 친구들이 직구가 더 싸다고 해 알아보니 20만 원 가까이 차이 났다”고 직구 과정을 설명했다.

    무선청소기 판매 성장세에 힘입어 다이슨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2015년 3%에서 지난해 10%까지 올라갔다. 가전업계에 따르면 연간 200만 대가 팔려나가는 국내 청소기 시장에서 무선청소기 점유율은 36%이다. 이 가운데 중저가 제품군이 강세인 스웨덴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가 35%로   1위를 달리고 있는데, 프리미엄 제품군만 떼놓고 보면 다이슨 점유율이 독보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LG전자와 삼성전자가 다이슨의 프리미엄 무선청소기 시장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먼저 LG전자가 6월 강한 흡입력으로 무장한 ‘코드제로 A9’을 내놓았고, 삼성전자도 9월 비슷한 형태의 ‘파워건’을 출시했다. 이 제품들은 기존에 나와 있던 무선청소기보다 흡입력을 높였고, 교체형 배터리를 택해 사용 시간이 짧다는 단점을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충전 시간 또한 5시간에서 3시간대로 줄였다(표 참조).



    삼성, LG의 반격

    LG전자는 프리미엄 무선청소기 출시에 몇 해 전부터 상당히 공을 들여왔다. 2014년 9월 독일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에 LG전자는 핸디스틱 청소기, 침구 청소기, 로봇 청소기 등과 함께 무선 진공청소기 ‘코드제로’를 선보였다. 직전까지 박람회에서 세탁기, 냉장고 등 대형가전에 주력했던 LG전자가 청소기를 전면에 내세운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LG전자는 세탁기 모터 기술을 무선청소기에 접목해 ‘스마트 인버터 모터’를 독자적으로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다이슨, 일렉트로룩스 등 유럽 업체들이 우위를 선점한 글로벌 청소기 시장에 LG전자가 도전장을 내민 것”이라고 평가했다.

    6월에 선보인 코드제로 시리즈는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장혜원 LG전자 홍보팀 책임은 “코드제로 A9은 2~3년 전부터 준비해온 제품”이라며 “독자 개발한  2중 터보 사이클론 기술을 접목해 제품 내부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해 흡입력이 더욱 오래 유지된다. 사용 편의성 측면에서도 AS 보장, 스탠드형 보관대, 4단계 길이 조절 등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도 9월 초 국제가전박람회에서 파워건을 선보였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 봤던 미래형 전투총을 연상케 하는 파워건은 흡입력을 업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또 5년간 사용해도 성능에 큰 변화가 없는 32.4V 고출력 배터리를 장착했고, 손목을 많이 쓰지 않아도 청소가 가능하도록 제품의 관절이 대신 꺾이게 설계했다. 또 충전 배터리를 교체하면 최대 80분까지 사용할 수 있다.

    파워건은 삼성전자가 처음 시장에 선보이는 프리미엄급 무선청소기다. 이진호 삼성전자 홍보팀 부장은 “삼성전자는 그동안 에어컨, 냉장고 등 대형가전 관련 모터 사업에서 축척한 기술력을 무선청소기 제작에 접목해 파워건을 출시했다. 또 삼성SDI가 보유한 배터리 기술력을 토대로 무선청소기의 사용 시간 단점을 극복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무선청소기 시장에 프리미엄급 제품을 내놓은 데 대해서는 “그동안 유선청소기가 청소기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메인이 무선청소기로 옮겨갈 것이라고 판단했다. 소비자 니즈가 강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제품 개발 및 기술 발전에 주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격대가 높다는 유일한 단점에도 시장 반응은 뜨겁다. LG전자 코드제로 A9은 판매 8주 만에 4만 대 이상 팔렸다. 삼성전자 파워건은 출시 초반이라 판매량이 아직 집계되지 않고 있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파워건의 성능을 궁금해하는 이가 많아 판매량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다이슨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다이슨은 신문 전면광고와 온라인 광고를 내고 9월 한 달 동안 무선청소기 보상판매를 진행한다. 다이슨 무선청소기를 구매한 뒤 기존에 쓰던 청소기를 가져가면 최대 15만 원을 할인해준다는 것. 그동안 국내에서 단 한 번도 무선청소기 보상판매를 진행한 적이 없던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이벤트다. 다이슨 홍보대행사인 함샤우트의 박지은 대리는 “본사에서 결정한 사안이라 이벤트 배경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LG전자와 삼성전자에서 잇달아 프리미엄 무선청소기 신제품을 선보인 직후 다이슨이 대대적인 할인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경쟁사들의 시장 진입을 의식한 행보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또 다이슨은 기존 제품의 업그레이드 제품을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며 언론홍보 시연행사를 열었다. 9월 12일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 행사에서 케빈 그랜트 다이슨 청소기사업부 수석 엔지니어는 “한국 소비자가 기술 발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1차 출시국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새로 나온 ‘V8 카본 파이버’는 기존 V8의 흡입력이 115AW였던 것을 155AW까지 30% 이상 끌어올려 청소 효율성을 높였다. 그러나 흡입력을 제외하고 충전 시간과 사용 시간은 각각 5시간, 40분으로 차이가 없다. 배터리가 내장형인 것도 그대로다. 이런 이유로 이번 신제품 출시는 국내시장에서 위기감을 느낀 다이슨이 서둘러 날짜를 잡은 것이란 평이 지배적이다.

    현재 무선청소기를 구입하려는 소비자에게 다이슨 제품이 매력적으로 다가가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흡입력을 개선하면서 업계 최고라고 홍보하지만 삼성전자 파워건의 흡입력이 150W, LG전자의 A9이 140W여서 압도적 우위를 보인다고 할 수 없다. 같은 제품이라도 영국과 국내 가격이 다르다는 것도 소비자의 불만 요소다. 해외 직구로 관세와 배송비까지 내도 한국 매장에 비해 10만~20만 원 이상 싼 점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할인 없던 다이슨, 보상판매 시작

    한국에 다이슨 지사가 없는 것도 문제다. 한국에서 판매는 유통사 ‘게이트비전’, 홍보는 대행사 ‘함샤우트’에 맡겼다. 이 때문에 제품 판매와 관리가 일원화되지 않아 소비자가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기 힘들다. 또 백화점과 가전제품 대리점 등 공식 판매처를 제외하고 수입사들이 물건을 가져와 팔다 보니 같은 제품이라도 어디에서 사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다이슨 청소기를 제값 주고 사는 것은 손해’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가장 원성이 높은 부분은 AS다. 제품 수리 시 영국에서 부품을 공수하는 데만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고객센터도 규모가 크지 않아 전국 소비자가 AS를 신청, 접수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한 인터넷 카페에는 ‘고객센터와 통화하는 데 이틀, 피드백을 받는 데 일주일, 제품을 수리하는 데 한 달 걸렸다’ ‘100만 원짜리 청소기의 AS가 이렇게 힘들 수 있나’ ‘한국 지사가 없으니 팔아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것 같다’ 등 불편함을 성토하는 글이 상당수 올라와 있다. 다이슨 고객센터 측은 “상담 직원이 많이 모자란 상황”이라며 “기존 AS 건부터 처리하고 있어 일단 접수한 뒤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성능 면에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 다이슨 무선청소기는 모터 내부로 빨려들어온 공기가 자체 필터를 통해 공기청정기 수준으로 걸러져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바람이 사용자의 얼굴 방향으로 쏟아져 나온다. 1년째 ‘V8’을 쓰고 있다는 직장인 최모 씨는 “키가 160cm 정도인 아내는 항상 얼굴에 바람이 닿아 숨을 참고 사용한다. 필터로 먼지가 걸러진다고 해도 청소기에서 나오는 바람이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다. 처음부터 설계를 체구가 큰 유럽인을 기준으로 해 그런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국 소비자 외면하는 외국 기업

    이 밖에 충전 거치대를 설치하려면 벽에 못을 박아야 한다는 점, 내장형 배터리가 방전되면 충전까지 5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 내장형 배터리 소모 시 교체를 위해 고객센터에 접수하고 물건을 기다리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 청소를 하는 내내 검지로 작동 버튼을 누르고 있어야 한다는 점, 스틱이 고정형이어서 길이 조절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불편사항으로 꼽힌다. 이러한 문제점은 다이슨이 점차 개선해가고 있지만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

    그동안 자동차, 휴대전화, 전자제품 등 여러 분야의 외국 기업이 한국 소비자를 무시하는 처사가 종종 있었다. 특히 애플은 아이폰 신제품을 출시할 때 한국을 1차 판매 대상국으로 선정한 적이 없고, AS 또한 국내 대행사를 지정해 진행하는 등 관리가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애플은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는 아이폰의 부분 수리를 진행했지만 한국에서는 중고부품을 활용해 재조립한 리퍼비시 제품으로 유상교환할 것을 소비자에게 강요했다. 액정화면 교체의 경우 10만 원 선에서 가능하지만 리퍼비시 제품으로 유상교환하면 30만 원 넘는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애플이 지정한 AS업체를 찾아가기보다 사설 수리업체를 찾는 쪽을 선택했다. 또 리퍼비시 제품으로 수리받을 경우 기존에 쓰던 제품을 돌려주지 않는 것도 소비자의 화를 돋웠다. 2014년 이러한 구조에 불만을 품은 국내 한 소비자가 애플을 상대로 수리를 맡긴 휴대전화를 돌려주지 않는 AS 방침에 문제가 있다고 소송을 걸었는데 광주지방법원은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현재 다이슨의 행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소비자는 다이슨 가전제품의 AS를 받을 때 공식업체의 문을 두드리기보다 정품을 수입해 수리해주는 사설업체로 간다. 그 편이 시간도 덜 걸리고 수리 완성도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내장형 배터리를 교환할 때도 사설업체의 제품이 쓸 만하다는 평이 많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일단 관련 접수가 들어와야 피해구제가 진행되는데 아직까지 다이슨 무선청소기에 대한 조사가 진행된 바 없다”고 말했다. 국내 경쟁업체의 선전으로 다이슨의 국내 판매·수리 정책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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