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최저임금 1만 원에 한 발짝 다가선 것이다.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16.4% 오른 7530원으로 확정됐다. 17년 만에 최대 인상 폭이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이 극심한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고 소득주도 경제성장을 견인해 사람 중심의 국민 성장 시대를 여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걱정 어린 말들이 나오고, 인터넷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임금인상을 견디지 못해 연이어 폐업이나 도산을 하고, 그 결과 일자리가 더욱 줄어든다는 것이 반대 의견의 주된 논리다. 반면 찬성 측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임금은 불가피하기에 당연한 결정이라고 얘기한다. 최저임금을 올려 근로자의 소득이 늘어나면 내수 활성화로 이어져 경제성장 및 일자리 증대의 선순환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다.
양쪽 다 맞는 말이다. 사람들의 고민이 바로 여기 있다.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 결과가 둘 다 가능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 혹은 사고방식에 따라 정반대의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마음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첫째, 이상주의(idealism) 대 현실주의(realism)다. 이상주의자는 말한다. 소득 불평등을 해소해 많은 사람이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누구나 다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그들은 이와 같은 열망이 실현되도록 노력을 기울이면서 즐거운 상상을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이상주의를 훼방한다고 인식하면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자고 나선다. 반대론자를 공격해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고 한다. 과정에서 이상주의는 이미 사라지고 이상주의적 결과만 고집하는 현실주의적 행동가로 바뀐다.
현실주의자는 말한다. 어차피 이상주의는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불평등이나 차별은 어느 정도 허용할 수밖에 없다고. 현 상태를 유지해야 그나마 많은 사람이 행복하고 사회가 안정될 것이라고. 또한 그들은 이상주의를 향한 변화가 시작되면 지금보다 못한 현실이 기다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니 불안하다. 불안이 쌓이면 그것이 미움과 분노로 바뀌어 이상주의적 정책을 내세우는 이들을 공격한다. 현실을 불만족스럽게 여기던 사람이 갑자기 현상 유지를 이상적 모습으로 여기는 현실적 이상주의자로 바뀐다. 이상주의자, 현실주의자 모두 자신의 이익과 관계된 일에는 더욱 열을 올린다.
현재 벌어지는 사회적 변화와 자기 이익의 관계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 평소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이득이 충돌한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는 오직 자신만이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마음속으로만 대답할 테고, 누군가 직접 질문한다면 대답하지 않거나 반대로 대답할 수도 있다.
둘째, 적극적 참여자(active participant) 대 방관자(bystander)다. 적극적 참여자는 평소 사회적 현상이나 정치에 관심이 많고, 의견을 활발하게 피력한다. 인터넷 기사에도 열심히 댓글을 달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노력도 자주 기울인다. 이들은 누군가를 통제하고 지배하고자 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높은 자리에 앉았을 때는 강력한, 혹은 고집불통의 지도자가 될 개연성이 있다. 낮은 자리에 있을 때는 개혁과 변화를 꿈꾸는 행동주의자요, 전복과 반란을 통해 높은 반열에 오르고자 하는 야심 찬 인물이 돼 있을 것이다.
방관자는 감정과 생각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친구들이 다툴 때 섣불리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고, 불의나 불공정을 목격해도 못 본 척 눈감곤 한다. 중립이야말로 살길이고, 마지막 선택은 최종 결과가 나온 다음에 내려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서도 여론과 사회적 분위기를 보고 어느 정도 분명한 결과가 나올 때 제목소리를 내려 한다. 이마저도 혼자가 아닌, 수많은 방관자가 한꺼번에 나설 때로 국한된다.
적극적 참여자는 때때로 방관자로 돌아서기도 한다. 갖은 노력에도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느끼거나 지지세력이 너무 적다고 판단될 때 후일을 기약하며 방관자로 돌아선다. 드물지만 좌절감에 빠져 아예 방관자로 주저앉기도 한다. 방관자 역시 때로는 적극적 참여자로 돌아설 수 있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감지하거나 너무 잘못된 사회 현상을 감내하기 힘든 경우에 그렇다.
최저임금 1만 원 시대의 도래는 나를 적극적 참여자로 만드는가, 아니면 방관자로 있게 하는가. 이 또한 자기 이익과 연관돼 있을 때 선택이 용이할 테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자기 이익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방관자가 더 많을 것이다.
셋째, 낙관주의(optimism) 대 비관주의(pessimism)다. 낙관주의자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예측한다. 특히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은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정권의 성공 및 나라의 발전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간주할 것이다.
비관주의자는 미래를 부정적으로 예측한다. 이와 같은 결정이 결국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 후퇴시킬 테고, 세금 폭탄 및 자영업자의 몰락 등으로 귀결돼 현 정부의 지지율이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대부분 현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지율 40%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80%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낙관주의는 비관주의보다 매력적이고 받아들이기에도 더 달콤하다. 따라서 지금은 낙관주의가 대세인 듯하다.
넷째, 즉각적인 만족(immediate gratification) 대 만족의 지연(delayed gratification)이다.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은 나중보다 지금 당장, 즉 미래보다 현재를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즉 최저임금 인상을 무척 반가워한다. 대개 아르바이트족이나 시간제 근로자 같은 사회적 약자다.
만족의 지연을 선택하는 사람은 현재의 만족을 참으면 훗날 더 큰 만족이 주어진다고 믿는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처럼 현재의 근로 조건보다 경험을 통한 배움과 깨달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이를 성공의 밑천으로 삼는다. 그들은 인내력과 자기 조절 능력이 뛰어나기에 결국 성공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간과하지 않아야 할 조건이 있다. 과연 우리 사회는 만족의 지연을 선택한 사람에게 더 큰 만족을 보상했는가. 혹시 만족의 지연을 내세우며 현재의 고통을 참으라고만 하지 않았는가. 더 큰 만족은 사회적 거짓말이며 신기루처럼 멀어지지 않았는가.
우리나라의 경제가 발전해야 복지 혜택과 일자리도 늘어난다는 믿음이 굳건하다면 많은 젊은이가 만족의 지연을 선택해 현실을 이겨나갈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20년 동안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미래를 믿지 못하겠으니 즉각적인 만족을 높이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이 현 상황에 녹아 있다.
대선공약인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을 점진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는 않다. 많은 국민이 현 정부를 지지하니 정책의 동력도 강력하다. 그러나 국민 마음의 동향을 늘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갈등과 대결도 가급적 최소화해야 한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는 비슷하게 존재하고, 적극적 참여자보다 방관자가 더 많으며, 낙관주의가 비관주의를 누르고 있고, 즉각적인 만족이 만족의 지연을 훨씬 더 앞서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