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결정짓는 건 삶의 방식이다

[이윤현의 보건과 건강]

  • 이윤현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대한검역학회 회장)

    입력2026-02-10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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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직업을 가졌든 좋은 생활습관을 유지하면 장수할 수 있다. GETTYIMAGES

    어떤 직업을 가졌든 좋은 생활습관을 유지하면 장수할 수 있다. GETTYIMAGES

    신문 부고를 수십 년간 수집, 분석해 직업별 평균 수명을 비교한 연구가 있다. 그 결과를 보면 교수, 성직자, 예술가는 상대적으로 오래 사는 반면, 노동 강도가 높은 직업군의 수명은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내용이 알려지면서 “사람 수명은 직업에 좌우된다”는 통념이 강화됐다. 직관적이고 흥미로운 접근 방식의 연구였기에 대중의 관심도 컸다. 그러나 장수학과 보건학 시선에서 보면, 이 연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직업의 힘’이 아니라 ‘직업이 만들어내는 삶의 조건의 중요성’이다.

    유전 25%, 습관과 환경 75%

    우리 사회에는 “특정 직업을 가지면 오래 산다”는 믿음이 퍼져 있다. 공직자는 삶이 안정적이라서, 농부는 자연 속에 살아서, 전문직은 건강 정보를 잘 알아서 장수할 것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관련 연구가 축적될수록 이 믿음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직업은 수명을 결정하는 ‘원인’이 아니라, 생활습관과 건강행동을 매개하는 ‘경로’라는 사실이 확인돼서다.

    유럽 13개 코호트 연구 결과를 묶은 의학 학술지 ‘랜싯(Lancet)’의 메타분석에 따르면 직무 스트레스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관상동맥질환 발병 위험이 23% 높다. 즉 직업이 수명을 깎는 과정은 대개 스트레스를 통해 혈압과 염증 반응을 높이고 체내 인슐린 저항성을 흔드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는 만성 스트레스가 면역체계 약화, 고혈압, 심혈관질환, 소화기 불편 등 다수의 건강 문제와 깊게 관련돼 있다고 밝혔다. 일본 코호트 연구에서도 스트레스 수준이 지속적으로 높은 사람은 스트레스 수준이 낮은 사람에 비해 전체 암 발병 위험이 약 6~11%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즉 직업 종류와 관계없이 직무 스트레스가 높은 직업이 건강에 해로운 것이다.

    근무 형태도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23개 코호트 기반 330만 명 이상의 사례를 통합 분석한 최신 메타분석에 따르면 야간근무는 심혈관질환 발병 위험을 13%, 심혈관 사망 위험을 27% 각각 높였다. 또 야간근무 기간이 5년 늘 때마다 심혈관질환 발병 위험이 7% 상승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장수 관련 연구들은 유전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약 25% 수준으로 본다. 그 외 부분은 생활 습관과 환경 영향으로 결정된다는 의미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노화 결정 요인으로 생물학과 유전의 영향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생활환경과 사회적 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론은 단순하다. 직업이 수명을 직접 결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직업의 영향으로 제대로 못 자고, 균형 잡힌 식사를 못 하고, 자주 움직이지 않고, 스트레스를 만성화하면 수명이 짧아진다. 같은 직업군에 속할지라도 규칙적으로 자고 먹고 걷고,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의 삶은 오래 간다. 노동 현장의 리듬을 바꾸는 정책과 개인의 선택이 겹칠 때 직업에 따른 건강 격차는 줄고, 우리의 건강 수명은 길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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