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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체에 부여된 ‘꿈’이라는 축복

[궤도 밖의 과학] 우리가 매일 충분히 잠을 자야 하는 이유

  • 궤도 과학 커뮤니케이터 nasabolt@gmail.com

모든 생명체에 부여된 ‘꿈’이라는 축복

꿈의 뇌과학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 더 흥미롭다. [GETTYIMAGES]

꿈의 뇌과학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 더 흥미롭다. [GETTYIMAGES]

졸리면 꼭 잠을 자야 할까. 얼마나 오랫동안 잠을 자지 않고도 살아 있을 수 있을까. 과거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11일 동안 잠을 자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1964년 랜디 가드너라는 미국 고등학생은 과학자 윌리엄 디멘트와 함께 실험을 진행했다. 가드너는 약물이나 카페인 도움 없이 졸릴 때마다 친구들과 농구를 하며 잠을 자지 않았고, 디멘토는 가드너의 상태를 꼼꼼히 관찰해 기록으로 남겼다. 결국 그가 잠들지 않고 버틴 시간은 264시간이 넘었고, 세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잠을 자지 않은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다만 잠을 자지 않는 동안 가드너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실험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나자 조현병 증상과 함께 환각에 시달렸고, 근육을 충분히 제어할 수 없게 돼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었다.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기도 했는데, 간단히 주어진 뺄셈 문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자꾸 잊어버렸다. 눈동자와 손가락이 떨리는 증상이 점차 심해졌고,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누구도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다행히 실험을 마친 후 별다른 후유증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건강에 큰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위험성 때문에 기네스협회는 수면시간 부문 기록을 폐지했다.

잠자는 동안 뇌에 쌓인 노폐물 청소

아우구투스 케쿨레. [위키피디아]

아우구투스 케쿨레. [위키피디아]

과학자들은 계속 잠을 자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한 나머지 쥐로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잠들려 하면 전기충격을 주거나 물에 빠지게 해 늘 각성상태를 유지하게 했다. 수면을 제외한 물과 음식물 등 모든 생존 수단은 제공됐다. 결과는 참혹했다. 실험에 강제로 동원된 쥐들은 점점 말라가더니 결국 14일 만에 죽었다. 평상시와 똑같이 먹거나 더 많이 먹어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생존 기간은 음식물을 주지 않았을 때보다 짧았다. 잠들지 못하는 불면은 단식보다 위험하고, 멀쩡한 생명체에게 죽음을 안겨줄 수 있을 만큼 위험했다.

모든 생명체는 왜 자야 할까. 일반적으로 소중한 수명의 3분의 1은 죽은 듯이 누워 뻗어 있는 상태로 소비돼야 하는데, 80세까지 살 수 있다고 가정하면 26년이 넘는 세월이다. 다행히 우리는 지금 가만히 누워 있어도 안전한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흉포한 맹수들 탓에 보금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은 정글에 떨어져 있다면 잠자는 시간은 치명적인 위험 요소 중 하나가 된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얻기 위한 측면에서라면 차라리 자는 사이에 먹거나 다른 형태로 에너지를 얻는 편이 낫다. 그런데도 반드시 자야 하는 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일 텐데, 수면만이 가진 중요한 기능이 있다는 걸까.

사실 잠자는 시간은 정말 위험하다. 포식자로부터 도망치지 못할 뿐 아니라, 장래를 약속한 내 반쪽이 다른 경쟁자에게 눈을 돌려도 눈치채지 못한다. 생존과 더불어 번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래도 자야 한다. 바로 뇌 때문이다. 우리 몸 모든 세포는 활동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노폐물을 생성하고, 중요한 기관인 뇌도 마찬가지다. 단, 여느 세포와 달리 뇌는 안쪽까지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없어 이런 찌꺼기를 청소할 만한 장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13년 ‘사이언스’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낮에 활동하면서 뇌에 쌓인 노폐물이 잘 때 청소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잠을 자는 동안 우리 몸 다른 기관은 푹 쉬고 있지만, 뇌는 잠자고 있을 때 더 바빴다.



물론 잠을 자는 이유는 매우 다양해 오직 두뇌 청소만을 위한 행위라고 보긴 어렵다. 특히 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뇌의 기능은 바로 기억이다. 연구진은 쥐가 수면하는 동안 전날 배운 내용을 잘 기억할 수 있도록 저장하고, 쓸데없는 기억은 정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장기 기억을 위해서는 잠을 자야 한다는 연구 결과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기억을 저장하는 뇌 속 신경세포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잠자는 동안 기억을 또렷하게 만드는지를 밝혀낸 것이다. 우리 뇌는 수면 중에 불필요한 기억이 담긴 시냅스의 연결을 아예 끊어버리고, 특정 기억에 대한 시냅스는 유연하게 만들어 기억 회로를 강화한다. 일종의 기억 가지치기를 통해 중요한 건 살리고, 버릴 건 버리는 것이다.

그럴듯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수면 단계

반짝거리는 자그마한 은색 팽이가 비틀거리며 눈앞에서 돌아가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이곳은 현실일까, 아니면 꿈속일까 한참을 고민했다. 다행히 팽이가 멈추기 전 잠에서 깰 수 있었고,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을 꿈으로 꾼 것뿐이었다. 꿈속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건 흥미롭고, 사실 생각보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제한조차 즐겁다.

우리가 밤에 경험할 수 있는 수면 상태는 두 가지다. 렘(REM)수면과 비렘(non-REM)수면이다. 뇌 신경세포가 분비하는 화학물질 종류에 따라 두 수면 주기는 바뀌는데, 렘수면을 활성화하는 화학물질이 분비되면 렘수면에 진입하고, 렘수면을 억제하는 화학물질이 나오면 비렘수면 상태가 된다. 누워서 눈을 감고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가버린다고 전부 똑같은 잠은 아니다. 보통 잠을 잘 때 평균적으로 3단계에서 많게는 5단계를 거치는데, 각 단계는 신체 건강을 회복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장 먼저 진입하는 졸음 단계는 완전히 잠들지는 못했지만 호흡이 느려지고 근육이 완화되며 심박 수가 떨어진다. 이후 비렘수면 상태로 진입하는데, 얕은 잠 단계와 깊은 잠 단계로 구분된다. 얕은 잠 단계에서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깨어날 수 있지만, 깊은 잠 단계로 가면 몸이 마치 초절전 상태처럼 최소한의 활동만 하기에 외부 자극이 있어도 깨기 힘들다. 여기선 꿈을 꾸지 않는다.

깊은 잠에 빠진 후 다시 얕은 잠 단계로 잠시 되돌아갔다가 드디어 꿈을 꾸는 렘수면 상태로 간다. 급속 안구 운동(Rapid Eye Movement)의 줄임말인 렘수면 단계에서는 실제로 자면서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렘수면 중에는 기억의 연상 작용을 활발하게 하는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기 때문에 이때 잠에서 깨어나면 꿈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하지만 비렘수면 중에는 아세틸콜린 분비가 중단되고 주의집중을 유도하는 노르에피네프린이 분비된다. 그래서 꿈을 꾸지 않을뿐더러 깨고 나서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꿈 내용을 잘 되새겨보면 등장하는 인물이나 장소, 목적 등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뀐다. 논리적 인과관계를 찾아내기 굉장히 힘들다는 것인데, 이런 문제는 기억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고 조합하는 전전두엽이 꿈을 꾸는 도중에는 거의 작동하지 않기에 발생한다. 그런데도 아세틸콜린의 연상 작용으로 뒤죽박죽 떠오른 장면들이 어떻게든 연결되면서 뭔가 이해될 듯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깨고 나면 도대체 이게 무슨 개꿈인지 정신이 없지만, 깨기 직전까지도 꿈속에서는 그럴듯하다고 여기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잠자다 꿈에서 발견한 벤젠 구조식

나이들수록 잠잘 때 꿈을 덜 꾸는 것은 아니다. [GETTYIMAGES]

나이들수록 잠잘 때 꿈을 덜 꾸는 것은 아니다. [GETTYIMAGES]

지난 수십 년 동안 꿈꾸는 행위는 렘수면 단계에서 대부분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었다. 아쉽게도 나이가 들수록 전체 수면시간에서 렘수면의 비중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아 어릴 때보다 꿈을 꾸는 횟수는 줄어든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비렘수면 단계에서도 꿈꿀 때 발생하는 신호가 포착된 정황이 나타났다. 렘수면 단계에서만 꿈을 꾸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상반되는 여러 주장이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2017년 미국 위스콘신대 신경과학자들은 렘수면과 비렘수면 단계 모두에서 꿈을 꿀 수도 있고 꾸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단순히 어떤 수면 단계에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뇌 후두부에 있는 ‘핫 존(hot zone)’이 활성화되면 꿈을 꾼다는 주장이었다. 연구진은 잠든 사람의 고밀도 뇌파검사 결과를 분석해 꿈을 꾸고 있는지 아닌지를 매우 높은 정확도로 예측했다. 게다가 평상시 뇌와 꿈꾸는 뇌는 예상보다 훨씬 유사했다. 꿈속에서 남들과 이야기했던 사람은 뇌에서 언어와 관련된 영역의 뇌파 활동이 나타났고, 사람을 만나는 꿈을 꾼 사람은 이미지를 인식하는 영역이 활성화됐다. 앞으로 어쩌면 누군가 잠잘 때 꾸는 꿈을 외부에서 타인이 TV처럼 동시에 볼 수 있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꿈의 뇌과학은 여전히 밝혀진 부분이 많지 않지만, 모든 이에게 공통으로 흥미로운 분야다. 잠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잠자지 않는 사람은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렇지 않다. 자면서 꾸는 꿈 자체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아직 벤젠 구조가 밝혀지기 전인 1865년 겐트대 교수로 재직하던 독일 유기화학자 아우구스투스 케쿨레는 깜빡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원자들이 나왔는데, 서로 기다란 열을 이뤄 달라붙고 비틀어지더니 빙글빙글 돌면서 스스로 꼬리를 문 뱀처럼 움직였다. 잠에서 깬 케쿨레는 바로 필기도구를 찾아 꿈에서 본 뱀 모습을 그렸다. 육각형의 완벽한 고리 모양인 벤젠 구조식은 이렇게 탄생했다. 물론 꿈에도 나올 만큼 평소 주어진 문제를 푸는 데 몰입하고 있었기에 참신한 해결 방법을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충분히 자고 건강해지면, 오히려 더 많은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늘 새벽까지 깨어 있는 스스로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다.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주간동아 1306호 (p76~78)

궤도 과학 커뮤니케이터 nasabol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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