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시대 추석을 맞아 가족 모임을 줌(Zoom)으로 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GETTYIMAGES]
현모 부럽다…. 전 다음 주까지 일이 많아서 끝내고 봐야 할 거 같아요. ㅠㅠ
영대 설마 추석 연휴에도 일하는 건 아니죠?
현모 에이, 그때는 안 하겠죠. 민족 대명절이잖아요!
영대 대명절이긴 한데…. 전 지난해 한국에 온 이후로 계속 위드(with) 코로나 추석이네요.
현모 그죠. 코로나19 전에도 명절 풍경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였는데,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가속화된 거 같아요. 이제는 예전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기 어렵지 않을까요?
영대 네. 이젠 명절이 의미 없는 거 같아요. 그냥 휴일, 쉬는 날이죠, 뭐. 그런데 전 이맘때면 아버지랑 같이 동네 분들에게 선물을 돌리러 다녔던 기억이 나요.
현모 와, 진짜요? 그냥 이웃들한테요?
영대 저희 친가가 경기 파주인데, 여기에 율곡 이이의 생가도 있어서 유교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전통이 강하거든요. 집성촌이 많아 한두 다리 건너면 어떻게든 친척이기도 했고요. 게다가 저희가 종갓집이다 보니 아버지가 격식이나 체면을 중요시하신 거죠.
현모 우와 신기하다. 난 이사하고 떡도 안 돌렸는데….
영대 아버지가 항상 승용차 트렁크에 식용유 세트를 가득 싣고 장손인 저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나눠드렸어요. 중학생 때까지 그랬던 거 같아요.
현모 오, 아버님께서 식용유 회사에 다니셨어요?
영대 아뇨. ㅋㅋ 어느 집이나 유용하게 쓸 만한 생필품을 드린 거죠. 하긴 아버지가 당시 대기업 부장까지 지냈으니 그 나름 마을에서 성공한 분이기도 하셨거든요.
현모 와, 식용유는 쿠팡에서 주문하는 건데. ㅋㅋㅋ
영대 생각해보면 한복까지 차려입고 다녔어요. 제가 대님을 잘 못 매니까 아버지가 도와주셨던 기억도 생생하네요.
현모 키야, 제대로다~! 저는 결혼할 때 폐백을 안 했고, 웨딩 촬영할 때도 한복을 안 입었어요.
영대 그렇게 추억이 많은 파주에 지금 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해요.
현모 대를 이어 영대 님도 이번에 선물 돌리세요!! 고향 파주의 자랑으로서!
영대 (못 들은 척) 근데 저는 사실 파주보다 강경에 가는 걸 더 좋아했어요. 외갓집이 젓갈의 고장 충남 강경이었거든요. 옛날엔 명절이어도 외갓집에 아예 못 가거나 연휴 마지막에 겨우 들르곤 했는데, 확실히 강경에 가면 어머니 표정이 훨씬 밝아지셨어요. 파주에서는 계속 일하시느라 얼굴이 고생스러웠는데, 외가에서는 편안하셨던 거죠. 아버지도 외가에선 별말씀 없이 조용하셨고요. 그 차이를 자식들도 자연스레 알았던 거 같아요. 그러니 저도 강경만 가면 덩달아 기분이 좋았던 거죠(물론 외가댁에 도착하자마자 양념통닭을 내어주신 것도 영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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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대 정말 재미있는 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강경 집을 처분한 후로는 강경이라는 장소가 한순간에 완전히 무의미해졌다는 거예요. 이제 제사도 큰외삼촌이 계신 서울에서 지내고 더는 갈 일이 없다 보니까 강경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됐어요. 그래서 제가 깨달음을 얻었죠. 아, 고향은 어떤 장소나 지역을 뜻하는 게 아니구나, 고향은 엄마가 있는 곳이구나!
현모 오호, Home is where Mom is!
영대 맞아요! 그래서 시애틀에 살 때도 저에게 집, home은 아내와 딸들이 있는 시애틀이었지만 고향은 어머니가 계신 한국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저에게 현재 고향은 어머니가 살고 계신 서울 흑석동이에요.
현모 흠… 굉장히 공감하며 듣고 있어요. 저희도 원래는 오랫동안 외갓집이 있는 가락동이 가족 집합 장소였는데, 몇 년 전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외할머니께서 용산으로 거처를 옮기신 후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모두 용산으로 향하게 됐거든요. 엄마가 있는 곳이 언제나 기준! 그러니까 N극이 되는 거 같아요. 우리 마음속 나침반 바늘이 항상 가리키고 있는 곳이요.
영대 그죠. 설령 부모님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엉뚱한 곳으로 이사를 가신다 해도, 그 즉시 거기가 내 고향이 된다니까요.
현모 ‘Home is where the heart is’라는 말처럼 ‘home’은 물리적 공간을 뜻하는 개념이 아닌 거죠.
영대 사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저는 어려서 뭣도 몰랐지만, 명절 때마다 시댁에 이틀 전부터 가 맏며느리 노릇을 해야 했던 어머니는 엄청 힘드셨을 거예요. 전 부치고, 솔잎 깔아 송편 찌고, 성묘하고, 차례도 지내고. 그런 반면, 막상 명절 하면 떠오르는 제 머릿속 이미지는 뭔가 나른하고 조금 지루하달까!
현모 아하하하, 뭔지 너무 알 거 같아요!! ㅋㅋㅋ
영대 어른들은 안에서 무지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저는 마당에 앉아 한가롭게 개미들이나 관찰하고 있었거든요.
현모 동감이요. 저도 할머니댁에 가면 딱히 집안일에 도움이 안 되니까 꼭 현관 옆에 있는 손님방 같은 곳에서 애들끼리 모여 있었어요. 친척들이 하나 둘 도착하면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그게 전부였던 거 같아요. 그러다 가끔 누가 용돈을 주면서 아이스크림 사 먹고 오라고 하면 쫄래쫄래 언니, 오빠들을 따라가 아이스크림 사 먹고….
영대 ㅎㅎㅎ 그러니까요. TV를 내 맘대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현모 요즘 같으면 각자 모바일 기기가 있어 심심할 틈이 없지만, 지나고 보니 그때 그렇게 가만히 사색하는 시간을 보냈던 게 참 좋았어요. 그렇다고 완전한 적막 속에 있었던 게 아니라, 어른들이 왁자지껄 웃고 떠들고 농담하는 소리는 끊이질 않았거든요. 그 소음이 무의식 속 생각의 재료가 됐던 거 같고, 그 안에 담긴 여러 사람의 관계나 감정, 이야기에서 결국 많은 걸 얻고 배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영대 그러다 한 번씩 싸움도 나고 그러잖아요. ㅎㅎㅎ 저희 집도 양가 모두 대가족이었는데, 요샌 거의 핵가족이니 전혀 다르죠.
현모 이야, 우리 추석 맞이 ‘라떼’ 토크 한 사발이네요. ㅎㅎ
영대 맞다! 그때 신문에 나온 추석 연휴 TV 편성표도 가위로 오려두고 그랬어요.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건 동그라미 쳐놓고. ㅎㅎ
현모 ㅋㅋㅋㅋㅋ 아마 딱 제 또래까지만 기억할걸요? 외국인 노래자랑 같은 것도 단골로 방송했잖아요.
영대 그때만 해도 파란 눈의 외국인이 서투른 우리말로 노래 부르는 게 신기한 시절이었으니. ㅎㅎ
현모 어휴, 얘기하다 보니 즐거웠던 추억인데…. 이번에 나온 방역지침에 따르면 저희는 이번에도 또 줌(Zoom) 회의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지난달 어머니 칠순잔치도 도저히 모일 수 없어 가족들한테 사전에 시간을 공지해 줌으로 깜짝 파티를 해드렸거든요. 어머니께서 처음 해보는 거라 자꾸 ‘국제 화상회의’를 했다며 굉장히 좋아하긴 하셨지만요. 멀리 미국에 있는 언니랑 조카들을 못 본 지 한참 돼 서로 안타깝고 눈물도 나고요. ㅠㅠ
영대 그래도 내년엔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현모 그러길 간절히 희망하고 있어요. 가족들 백신 접종도 차차 완료해가고 있고요.
영대 우리 모두 희망을 갖고 해피 추석 해요! 내년 설을 기약하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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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