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7

2011.03.07

그래, 오리알은 절대 기죽지 않거든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박 상무

  • 김용희 소설가·평론가·평택대 교수 yhkim@ptu.ac.kr

    입력2011-03-07 12: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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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모자라지만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캐릭터가 있다. 조각 미남·미녀도, A급 스펙의 엄친아도 아닌데 왜 자꾸 눈길이 갈까. 평택대 김용희 교수가 현실과 매체 속에서 ‘뜨는’ 캐릭터를 찾아 그 면면을 분석한다. 첫 번째 인물은 골리앗 김주원에 맞서 버터 듬뿍 바른 발음으로 ‘쓰따~일’을 외치던 ‘시크릿 가든’의 박 상무다.

    그래, 오리알은 절대 기죽지 않거든
    ‘빈’ 돌림자 오빠들이 연타로 여심을 흔들고 있다. 영화 ‘아저씨’의 원빈에 이어 현빈이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 역을 맡은 현빈은 ‘현빈앓이’라는 신드롬을 일으키며 여자들 가슴에 ‘앙팡지게’ 불을 댕겼다. 이 방화범은 불을 지르고 해병대에 입대한다 하니, 그의 부재로 여자들의 ‘염통’은 더욱 ‘빠개지게’ 생겼다. 현재 상영 중인 ‘만추’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 신드롬에 힘입어 여성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쭉 뻗은 ‘기럭지’와 선명한 남성 실루엣, 비밀스러운 상처와 오만이 담긴 눈빛, 장난스러운 자유로움과 우수에 젖은 고독. 게다가 ‘사회지도층’의 서재는 단순한 졸부의 천박성을 뛰어넘어 지성과 교양과 매력으로 가득 차 있다.

    김주원은 백화점 사장에 골프장, 레저타운 그리고 엄청난 부동산을 소유한 재벌이다. 이런 김주원의 부하직원 박 상무(이병준 분)는 조카뻘 젊은 사장 앞에서 만날 고개 숙여 ‘긴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카리스마에 예술적·지적 교양미까지 갖춘 김 사장은 거침없이 박 상무를 구박한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하면서.

    박 상무는 급기야 생각한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 왜 나는 사장이 될 수 없는 거야?” 그러자 드라마 작가는 말한다. “그래,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거든.” 박 상무는 사장 김주원의 약점을 캐러 그의 주치의인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본분을 잊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의사 : 언제부터 그런 현상이 있었죠?



    박 상무 : 한 남자가 싫어지면서부터?

    의사 : 어떤 남자죠?

    박 상무 : 젊고, 돈 많고, 키 크고 잘생겼어요. 딱 하나 없는 게 있다면… 싸가…지죠! 뭘 하면 자꾸 최선이냐 그러고… 그럴 때마다 저는… 작아지는 저를 느낍니다.

    의사 : 싫은 감정뿐이에요?

    박 상무 : 예?

    의사 : 강한 동경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박 상무 : …… !!??(벙한 표정)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수백만 원짜리 명품 추리닝을 입고, ‘결혼’이야말로 ‘일생일대 최대의 인수합병’이라 생각하며, 임원회의에서 자신보다 나이 많은 임원들을 보기 좋게 망신 주는 ‘왕싸가지’ 젊은 사장에 비해 박 상무는 어떤 자인가. 고졸임에도 회사에 들어와 죽도록 ‘삽질’해 상무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젊은 사장을 내쫓고 사장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하지만, 자본계급 카스트제도는 귀족계급 사회처럼 공고하다. “서로, 섞지 마, 싸구려와 섞이면 변해”라고 오만하게 말하는 재벌 오스카 엄마 앞에서 박 상무는 위축된 채 김주원에게 말한다. “사장님은 행복하시겠습니다.”

    그래, 오리알은 절대 기죽지 않거든

    일러스트레이션·변지은

    ‘백조’가 되려고 발버둥 치던 박 상무는 결국 영원히 ‘오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김주원을 향한 완벽한 복종을 전제로 복직한다(박 상무는 김 사장을 해코지하다 회사에서 쫓겨났었다). 그러나 이 ‘이기적인 유전자’ 앞에서 우리의 박 상무는 오늘도 “쓰따~일”을 외친다. 백조들 앞에서 기죽지 않으려고. ‘뼈대 깊은’ 재벌 가문과 혈통과 재산과 교양에 기죽지 않으려고.

    “현빈만 대접하는 이 더~러운 세상. 그래도 나, 쓰따~일 구기지 않을 거야.” 매일같이 상사에게 ‘박 터지게’ 당하고, 가진 거라곤 눈치 9단과 아부가 전부고, 스타일, 스타일 외쳐도 스타일 살려본 적 없지만, 당당하게 가슴 펴고 백조들을 앞질러 오리가 간다. 우리의 박 상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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